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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경제지도 다시 그려진다

한반도 경제지도 다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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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0년 한반도에서 겨울이 없어진다’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가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올여름 이상한 날씨는 그 전조다. 단순히 ‘날씨의 변덕’이 아니다. 기후의 변화다. 기후가 변하면 문화와 산업에 충격이 미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산업과 기업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나아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이코노미스트가 먼 미래 같지만 발등에 떨어진 기후변화를 경제적 시각에서 심층 취재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1980년대 국민가요로 불렸던 ‘아! 대한민국’ 가사의 일부다. 사계절이 뚜렷한 것은 지리적으로 내세울 게 많지 않던 우리나라가 오랜 세월 내세운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이제 그 자랑은 접어야 할 것 같다. 기후가 이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은 어느 때보다 이상함의 강도가 셌다. 한반도의 올 8월은 당황스러웠다. 7월 장마가 끝난 후, 잠깐 더위 뒤에 무려 10여 일 넘게 비가 내렸다. ‘장마’가 아니라 ‘우기’가 왔다는 얘기가 돌았다. 기상청에서도 명칭 변경을 두고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열대야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발생했다. 긴 비가 그치자, 폭염이 찾아왔다. 처서를 지나도 더위는 맹렬했다. 덥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날씨가 요동쳤다. ‘스콜’ 현상도 종종 나타났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대로 진입한다’는 경고를 대다수 국민이 또렷이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기상청은 때맞춰 ‘2090년이면 한반도에서 겨울이 사라진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겨울이 크리스마스가 지난 12월 26일에나 시작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너무 먼 얘기라고? 그렇지도 않다. 이미 한반도 생태계는 ‘아열대’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온은 지난 100년간 1.5도 상승했다. 그깟 1.5도라고 할 수 있지만 같은 기간 지구 평균기온 상승률(0.74도 상승)의 두 배다. 동해안 수온은 지구 평균 상승률보다 3배 정도 올라갔다.

우린 ‘기후 경영’ 연구 빵점 뜨거워지는 한반도. 생태계는 이를 거짓없이 증명하고 있다. 제주도의 겨울은 지난 30년간 24일이나 줄었다고 한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동해안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대신 서해안에서는 그간 안 잡히던 난류성 어종 오징어가 풍년이다. 전라남도 나주에서는 제주 특산물인 ‘한라봉’이 나고, 강원도 양구에서는 사과를,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아열대 과일인 구아바를 재배한다. 단순한 ‘날씨의 변덕’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기후의 변화’는 우리 경제와 산업,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후변화가 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말이다. 우선 이에 대한 연구는 태부족이다. 변변한 논문 하나, 보고서 하나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전문가들도 이를 인정한다. 삼성지구환경연구소 정예모 박사는 “날씨가 기업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확산됐지만, 기후 변화에 대비한 산업구조적 재편이나 기업의 변화에 대한 연구는 제로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이와 관련, 국내 대기업과 날씨에 민감한 업종의 대표기업들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모 대기업은 “기후변화를 전제로 중장기적 전략을 짜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다른 기업들 역시 “월별, 계절별로 날씨 변화 정도를 경영에 반영한다”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도 있다. 지난 8월 22일 청와대에서 ‘기후변화 대응 신(新)국가전략’에 대한 대통령 보고가 있었고, 올 초부터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세워나간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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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다. 현재 정부나 기업들이 세우고 있다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은 정확히 표현하면 ‘기후변화협약 대응 전략’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1997년 채택돼 내년부터 발효되는 ‘교토의정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다. ‘향후 어떻게 온실가스 감축 협상을 하고, 자발적으로 어떻게 온실가스를 감소시켜 나갈 것인가’가 고민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게 다여서는 곤란하다. 기후협약에 대한 면밀한 전략 수립도 중요하지만, ‘지구온난화’ 좁게는 ‘한반도 아열대화’ 등 기후변화 그 자체에 주목해 ‘어떤 비즈니스 전략을 세울 것인가’ ‘기후변화에 기업을 어떻게 적응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병욱(한국환경경영학회장) 세종대 교수는 “우리 정부나 기업이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 경제성장의 형태, 다시 말해 자원소비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는 기후변화와 자원고갈, 그리고 경제와 환경이 통합되는 제3의 산업혁명을 근거로 산업구조,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도 단순한 오염 저감형에서 시장 창출형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의 전략이나 정책은 사실상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업이 중장기 전략을 짜는 데 있어 수많은 변수 가운데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후변화 경제학’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100년 기업’을 준비한다면 기후변화는 가장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존 르웰린은 ‘지구온난화와 비즈니스’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구온난화는 세계 경제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은행인 UBS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발생하는 인플레이션 증가 원인은 기후와 연관된 전 세계적 식량공급의 감소로 인한 식품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진행되는 기후변화가 전 세계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지구온난화 회의’에 참석한 유명 의류업체 사장이 남긴 말은 국내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면서 이윤이 곤두박질친 한 의류회사 CEO는 “나는 기상청에 근무하지는 않지만 온도 상승은 매우 큰 경고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 회사는 습기 많은 여름과 추운 겨울에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는 가장 더운 여름이었고, 겨울은 따뜻하고 건조했다. 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세계의 기업들은 ‘기후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온실가스나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는 수동적 대응만은 아니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가는 것처럼, 신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폭염·폭우·황사 등 기상이변에서도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벤치마킹할 예는 충분히 많다. 지구온난화로 ‘물 부족 사태’를 예상한 프랑스의 수처리 기업은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탈염공장을 선점하며 이미 한 해 10% 이상씩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기온이 상승해 발생하는 열대성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 개발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스위스나 프랑스의 스키 사업자들은 겨울 매출이 줄자, 스키장 인근에 실내 테마파크를 짓거나 산악 골프장으로 업종을 서서히 변경하고 있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들은 전 세계 미개발 석유자원의 약 25%가 매장돼 있다는 북극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빙하가 녹을수록 개발은 더욱 쉬워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후변화 자체를 새로운 산업의 영역으로 해석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기후변화 펀드’를 선보인 도이치투자신탁운용은 펀드를 투자할 회사를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오염물질 배출을 감소하고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업, 또 하나는 기후변화가 일어날 것을 가정하고 미리 적응하는 기업이다. 전자는 최근 대부분의 기업이 신경 쓰는 분야다. 하지만 후자는 아직 불모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겨울은 지구온난화와 엘니뇨의 영향으로 1904년 근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다. 가스회사라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겨울철 판매되는 난방용이 연간 판매량의 70%를 차지하는 도시가스회사가 ‘올겨울뿐이겠지’라고 한다면 그 회사의 미래는 어둡다. 모피코트 업체라면 얇은 신소재 개발에 나서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따뜻한 겨울은 난방기 제조업체에 지속적인 매출 감소를 가져올 것이다. 지난해 겨울, 올여름 같은 ‘이상 날씨’라면 우산과 선글라스, 음료수, 아이스크림 공장은 호황이겠지만, 제설차 제조사는 ‘죽’을 쑤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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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은 ‘우기’와 ‘게릴라성 호우’로 공정이 늦어지고, 작업중단으로 인건비 부담은 늘어나고, 콘크리트 타설 비용은 급격이 증가할 것이다. 황사, 폭우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항공사들은 더 자주 결항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아열대화로 더 강력해진 태풍 피해에 대비해 선박 운송회사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들도 ‘기후 경영’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날씨 경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날씨 정보를 적극 활용한 한발 앞선 전략으로 매출을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는 사례도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장기적 안목에서 나온 경영전략이라기보다는 단기적 대응책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는 “기업 내에 기상 관련 위험을 관리하는 조직을 가동하고 책임소재까지 묻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주가, 환율, 금리 리스크를 관리하듯 날씨(기후)도 기업 경영의 리스크로 체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날씨가 지배한다』를 쓴 독일 사회학자 프린트 헬름은 “기업·정부·언론은 모두 기후 보호만 언급했지, 날씨에 대한 방어책,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에는 관심이 적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가 기업에 안겨줄 기회(신사업)는 널려 있다. 당신의 기업은 여전히 ‘기후변화’를 먼 얘기로 치부하고 있는가? 잠깐의 여름 날씨에 아열대 운운하며 호들갑을 떤다고 여기나? 기후는 문화를 바꾸고, 산업을 바꾼다. 강남 갔던 제비가 지난해 16일이나 일찍 홍도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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