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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아성에 도전하는 발리우드

할리우드 아성에 도전하는 발리우드


인도 재벌들의 엔터테인먼트사업 참여로 뒤떨어진 영화산업의 세계화에 도전 로니 스크루발라(45)는 발리우드(Bollywood: 인도판 할리우드, 인도 영화계를 가리킨다)의 잭 워너가 되려는 경쟁의 선두주자다(워너는 편협한 미국 영화계의 변화를 주도해 오늘날의 글로벌 형태로 키웠다). 그러나 스크루발라는 인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도 할리우드 실력자들은 그를 잘 안다. 인도 이민자를 소재로 한 참신한 히트작 ‘네임세이크(Namesake)’를 제작하고, 크리스 록의 코미디(‘아내를 사랑해(I Think I Love My Wife)’)를 공동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스크루발라는 ‘해프닝(The Happening)’의 공동 제작을 맡았다. 마크 월버그가 주연을 맡고 M 나이트 샤말란(‘식스 센스’)이 메가폰을 잡는 새로운 공상과학 스릴러물이다. 스크루발라는 이 영화를 계기로 큰물에 진출할 전망이다. 제작비가 5700만 달러로 인도 흥행영화 10편의 제작비에 맞먹으며, 발리우드의 신기원을 여는 영화다. “세계적 흥행기업이 되는 게 우리의 야심이다. 우리라고 대형 할리우드 영화를 못 만들 이유가 없다”고 스크루발라는 말했다. 그는 육중한 체구에 음성이 부드럽고 세련된 식민지시대 영어를 구사해 잭 워너의 악명 높은 고성과는 아주 딴판이다. 뭄바이에 본사가 있는 UTV 소프트웨어 통신은 그의 경영혁신 덕분에 급속히 세계 무대에 진출하면서 워너가 할리우드에서 그랬듯이 발리우드에서 영화사 효율경영의 현대적 기준이 됐다. 영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제작, 배급 분야까지 계열사를 거느린 복합미디어 재벌로, 인도 기업 중에서는 문어발식 워너브러더스에 가장 가까운 기업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스크루발라는 작품은 많이 만드나 혼란스러운 인도 영화산업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힌두어와 기타 방언으로 만드는 200편 남짓한 발리우드 영화를 비롯해 인도는 해마다 약 1000편의 영화를 만든다. 할리우드에 비해 열 배나 된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모든 발리우드 영화는 구멍가게 스타일의 제작자 겸 감독이 만드는 독립영화였다. 거래는 영화인들 간에 장부기록 없이 이뤄졌다. 마케팅은 극장 주인들이 알아서 했다. 작가는 촬영 당일 뻔한 공식대로 대본을 썼다. 태어나면서 헤어지는 형제, 탐욕스러운 지주에 반발하는 농민들, 또는 경찰과 강도의 대결 등이 단골 소재다. 그런 요소를 단순히 녹여, 예컨대 태어난 뒤 헤어진 형제가 착한 편과 악한 편으로 갈라져 자라지만 한바탕 노래와 춤과 울음 잔치를 벌인 뒤 마침내 힘을 합쳐 못된 지주에게 대항한다는 줄거리를 만들기만 해도 참신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전성기라 할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발리우드는 그런 영화로도 영화에 미친 그 나라의 극장을 관객들로 채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중산층 가정에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그런 뻔한 줄거리는 진부하게 여겨졌다. 1985~2000년 사이 영화계 수익은 사실상 연간 10억 달러 선에 머물렀다. 할리우드의 한 대형 영화사가 거두는 흥행수익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인도의 가난과 싼 입장료 때문에 외국시장이 더욱 탐스러워졌다. 그러나 발리우드는 세계적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이제 마침내 그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인도인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져간다. 젊은 세대는 연예오락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스크루발라 같은 혁신가들이 사업을 전문화하고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이며, 회계기준을 도입하고 새로운 줄거리로 영화 마케팅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스크루발라의 제작사는 종래의 3시간 30분짜리 영화를 90~120분으로 줄이고, 할리우드 대본작가를 기용해 줄거리를 좀 더 그럴 듯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 외국으로 직접 진출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제작하는 미라 네어 감독의 ‘네임세이크’(인도인들의 이민 문제를 다룬 줄거리)를 후원해 자신의 사업모델이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영화는 약 14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그중 95%가 미국에서 번 돈이며, 해외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인도 영화라는 기록을 세웠다. 인도 영화는 국내에서도 인상적인 인기를 누린다. 2006년 인도 영화계의 총 수입은 약 20억 달러로 2004년의 15억 달러보다 늘었다. 컨설팅 그룹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앞으로 5년 동안 그 수입이 40억 달러 이상으로 뛴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의 성장률은 할리우드보다 훨씬 높다. 다만 금액으로는 미국 영화계에 비해 한참 아래”라고 PWC(인도)의 미디어·연예 부문 책임자 티미 칸드하리가 말했다. 그러나 질주하는 인도 경제에 발맞춰 극장 입장료(현재는 평균 1달러 이하)가 오르면 그것도 바뀔 전망이다. 그런 발전을 예상한 국내외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디즈니는 2006년 1400만 달러를 내고 스크루발라가 소유한 UTV의 지분 15%를 사들였다. 올해 바이어컴은 인도 연예산업 재벌인 네트워크 18의 총수이자 미디어 거물로 떠오른 라그하브 발과 50대 50으로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했다. 바이어컴 18로 이름 지은 그 합작사는 텔레비전 쇼와 디지털 미디어를 제작해 배급하며, 종국에는 연간 10~12편의 영화도 만들 생각이다. 네트워크 18과 바이어컴이 지분을 소유한 인도영화사라는 제3의 법인은 3년 안으로 연 40~45편의 영화를 제작한다. 억만장자 아닐 암바니의 릴라이언스 ADAG 그룹은 9000만 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돈을 주고 애들랩스 필름스라는 큰 영화사의 지분 51%를 획득했다. 그 밖에 세 인도 영화사가 올해 런던에서 기업공개를 통해 총 2억2000만 달러를 조성했다. 얼마 전까지 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가 15만 달러 정도였던 나라에서 그건 큰돈이다. 이로써 인도 영화의 제작 편수와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와의 공동 제작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없을 듯하다. 대체로 할리우드에서 큰 도박을 기피하는 경쟁자들에 비해 스크루발라가 적어도 몇 해는 앞섰다. 스크루발라는 샤말란 감독의 ‘해프닝’ 제작비 5700만 달러 중 2700만 달러(인도 영화 히트작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많은 금액)를 댄다. 그러나 막대한 수익이 예상된다. 샤말란이 약 40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식스 센스’는 7억 달러 가까이 벌었다. 스크루발라는 여러 사업에 투자했다. UTV는 폭스서치라이트, 소니 영화사, 윌 스미스의 오버브룩 엔터테인먼트와도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할리우드는 끝없는 자금 유입이 필요하며 여러 해 전부터 독일 연금 수령인들과 사모펀드 등 많은 경로를 통해 외부 자금의 유입을 추진해왔다. 따라서 그런 계약이 반갑기만 하다. “이런 공동 제작이 점점 더 보편화되리라고 본다”고 샤말란 감독이 만드는 ‘해프닝’의 미국 측 공동 제작자 호세 L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스크루발라는 선두주자인 셈이다.” 스크루발라는 발리우드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는다. 얼마 전까지도 인도 영화산업은 몇몇 유력한 제작자 겸 감독들이 좌지우지해왔다. 야쉬 초프라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데 그는 변덕스러운 발리우드 스타들과의 혈연이나 개인적 친분 등 강력한 유대관계를 자랑한다. 스타들끼리도 그런 관계를 맺은 경우가 많다. 이런 “영화가족”의 우두머리들은 미리 제작비를 계산하는 법이 없고 손에 쥔 현찰 몇 푼만으로 촬영을 개시했다. 제작 준비래야 고작 20분짜리 회의였다. 작가는 영화를 찍어가면서 대사를 만들었다. 제작 일정이나 계약 따위는 없었다. 스타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영화에 출연하거나 그만두거나 했다. 수백 명의 현지 배급자와 수만 명의 극장 주인들이 상습적으로 흥행수입을 줄여 신고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이 사업을 손익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스크루발라는 말했다. “돈이 구르는 사업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어느 제작자 겸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500만 달러를 잃더라도 다음 영화 제작비로 500만 달러를 타내면 머릿속으로 타산을 맞췄다고 생각했다.” 대조적으로 UTV는 2005년 뭄바이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해 영화사로는 인도 최초의 상장기업이 되면서 현대 경영기법을 소개했다. 대본을 고르고 출연진, 예산, 배급계획을 결정하는 제작 준비에 무려 2년을 보냈다. UTV는 또 마케팅을 주도하고, 지출비용을 각 영화 제작비의 25%로 늘려 할리우드 평균치(약 50%)에 접근했다. UTV는 예산에 맞춰 3개월 동안 영화를 찍는다. 외국시장에서 거두는 수입을 늘릴 생각으로 영화의 해외 배급권을 팔지 않고 대신 미국·캐나다·영국·아랍에미리트 등지에 사무실을 차려 자체 배급망을 조직했다. 이제 이 회사는 발리우드 영화가 틈새시장을 구축한 20여 개의 다른 나라를 사업의 중대 요소로 전환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스크루발라는 필요에 의해 개혁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영화계의 이방인이었다. 스타나 감독들과 함께 자라지 않았다.” 사업가(부친은 화장품 회사를 경영하다가 은퇴했다)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영화인생을 걸을 운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역학 학위를 받고 뭄바이 대학을 졸업한 뒤 텔레비전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도에서 다채널 TV 사업을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 스크루발라다. 단일 국영방송만 존재하던 시절 뭄바이 아파트들의 주민 대표를 만나고 다니며 폐쇄회로 케이블 방송을 소개하느라 고생했다. 훗날 그의 회사는 인도 최초의 오후 일일연속극 ‘샨티(Shanti)’를 제작했다. 1996년 디즈니 영화를 인도어로 더빙하는 일을 하면서 스크루발라는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영화회사를 직접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자본도 없고 대스타를 끌어들이는 데 필요한 혈연도 없었기에 우선 업계의 변두리 공략에 나섰다. UTV는 1996년 영화 배급에 뛰어들고, 1997년에는 스크루발라가 전형적인 저예산 발리우드 연애영화 ‘딜 케 자로케 마인(마음의 창문 안에서)’을 만들었다. 그것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스크루발라는 기꺼이 실험에 나설 용의가 있는 신세대 배우, 감독, 작가들과 일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어 UTV는 발리우드 기준으로는 큰 제작비를 들이고 1급 스타들이 등장하는 영화 세 편을 공동 제작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세 편 모두 발리우드의 공식에서 벗어나면서 이 회사가 그 후 내놓게 되는 히트작들의 토대가 됐다. 그 히트작 중에는 델리의 청년들을 소재로 한 현실적인 영화 ‘랑 데바산티(Rang de Basanti)’도 있다. 혁신적 영화를 처음 만든 회사는 UTV가 아니었다. 감독 겸 제작자 람 고팔 바르마가 이 분야에서 스크루발라의 선배다. 최고 흥행작을 가장 많이 만드는 야쉬 라즈 영화사도 이내 UTV가 선보인 할리우드 영화사 스타일의 체제를 상당히 채택했다. 그러나 야쉬 라즈는 장르를 파괴하는 영화의 잠재력을 쉽게 깨닫지 못했고 올 들어서야 비로소 그런 영화를 처음 시도했다. 여자 필드하키 영화 ‘차크 데(Chak De)’였다. 그처럼 꾸물거린 덕분에 스크루발라는 경쟁자들보다 빠른 속도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새로운 법인구조에 접목시켰다. 그것이 할리우드의 주목을 끌었다. 윌 스미스와 함께 오버브루크 엔터테인먼트를 차린 제임스 래시터는 그와 스미스가 지난해 인도에서 스크루발라를 만나 크게 감명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와 마음이 통했다. 우리가 할리우드보다 더 야심적이듯 그는 발리우드의 다른 인사들보다 더욱 야심적이다. 머리도 좋고 취향도 뛰어나며 세계적인 시각을 갖췄다. 언젠가는 세계 영화시장의 거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스크루발라는 이미 많은 성과를 거뒀다. 순위 차트는 꾸준히 올라가, 여전히 연애영화나 큰 제작비를 들여 질펀한 노래와 춤 잔치 영화를 주로 만드는 야쉬 라즈에 이어 2위의 흥행기록을 수립했다. 이제 스크루발라는 인도 영화가족 출신의 어느 거물급 제작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상당수의 영화가족이 그의 기본 사업모델을 따르느라 바쁘다. 전에는 감으로 일하면서 1년에 영화 한두 편을 만들던 감독 겸 제작자가 수십 명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우수감독이 3대 영화사에 흡수됐고 이 영화사들이 연간 8~10편을 만든다. 최근의 기업공개와 기타 계약 덕분에 튼튼한 재력을 갖춘 다른 영화사 세 개가 내년에 작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발리우드의 다음 도전은 좀 더 폭넓은 미디어와 연예사업으로의 확장이다. 이 분야의 규모는 현재의 약 110억 달러에서 2011년에는 250억 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스크루발라는 UTV를 소위 전방위 미디어·연예 기업으로 키울 생각이다. 이미 애니메이션, 게임, TV 콘텐트 제작 분야에 계열사가 있으며, 8~10개의 TV 채널도 구상 중이다. UTV의 애니메이션 계열사는 올해 세계시장에 내놓을 장편영화 네 편을 만든다. 그중 하나는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고, 또 하나는 ‘아이스 에이지(Ice Age)’의 만화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시미 날라세스가 감독한다. UTV는 올해 초 이그니션 엔터테인먼트㈜라는 영국 비디오게임 회사를 인수했다. 이그니션은 2008년 소니 PS3용 고급 게임 ‘워데블(Wardevil)’을 출시할 계획이며, 그것이 멀티미디어 프랜차이즈의 핵심이 되기를 바란다. UTV는 또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코믹스와도 손잡고 인도 신화를 기반으로 한 초능력인간 시리즈 만화를 개발할 계획이다. UTV는 치열한 경쟁을 각오해야 한다. 인도의 많은 미디어 대기업들이 외국 파트너나 새 시장을 물색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18 역시 바이어컴의 후원과 마케팅력을 등에 업고 미디어·연예 제국 건설에 나섰다. 고속 성장하는 영화사업과는 별도로 인터넷 콘텐트와 TV 방송에서도 선두주자 가운데 하나인데, 이 분야에서는 바이어컴 외에도 NBC 유니버설, 타임워너와 제휴했다. TV 뉴스의 절대강자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인도판 워너브러더스라 할 UTV처럼 인도판 뉴스코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인도의 대재벌로서 자본이 두둑한 릴라이언스 ADAG는 위성방송에 진출하고, 라디오 방송국 45개를 세웠으며, 최근에는 애들랩스의 지배지분을 보완할 목적으로 두 번째 영화사 빅모션 픽처스를 차렸다. 이런 제휴 행진이 어디서 끝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화를 추진해온 할리우드는 이제 수입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번다. 인도 영화가 그처럼 넓은 해외시장을 개발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예측을 보면, 소득수준이 높아진 인도 중산층이 점점 더 국내에서 색다른 영화를 보러 가는 추세지만 외국에서 인도 영화의 흥행수익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세를 보인다. 한편 발리우드는 국내에서 제작되든 국외에서 제작되든 가리지 않고 세계적 상품의 돈줄과 마케팅 담당으로서의 발전을 계속할 생각인 듯하다. 스크루발라 같은 신흥 미디어 거인들의 힘이 커지면서 인도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귀에 친숙해질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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