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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버버리 핸드백 우리가 만들죠”

[파워중견기업] “버버리 핸드백 우리가 만들죠”

▶ 1955년생 1978년 연세대 졸업 1980년 청산 수출부 1987년 시몬느 회장

박은관 시몬느 회장 방에는 가죽 냄새 대신 난향이 가득했다. 가죽 냄새를 예상한 것은 시몬느가 핸드백 제조업체이기 때문이고, 예상이 빗나간 이유는 박 회장이 업무 환경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호텔이 연상되는 로비와 화장실, 언제든 나무와 물을 접할 수 있는 쉼터 등이 잘 갖춰진 곳에서 22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1년에 6개월은 외국에 있는데 미국, 유럽에 다녀보면 정말 멋진 사무실이 많아요. 샌프란시스코의 에스프리는 건축가인 오너가 바닷가 창고를 개조해 직원들을 위한 카페테리아, 운동 시설로 이용합니다. 나이키, 아베크롬비피치도 자연에 둘러싸인 곳에 건물을 짓고 자전거용 도로를 설치했지요.” 박 회장 뒤쪽 창밖에 안양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업무 환경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직원들의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다. 시몬느는 버버리, 코치,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등 서른 곳의 명품 브랜드 회사에 핸드백을 공급한다. 단순 생산에 그치지 않고 소재, 디자인을 제안하고 시장 트렌드, 가격 결정에도 참여한다. 가령 도나 카렌에서 부드러운 가죽에 700~1000달러짜리 핸드백을 팔고 싶다고 주문하면 양가죽을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스타일 기획, 마케팅까지 시몬느가 담당하는 식이다. 그래서 해외 바이어들은 시몬느를 팩토리(Factory)가 아닌 풀 서비스 컴퍼니(Full Service Company)라 부른다. 해외 명품 의류 브랜드 회사가 아시아에서 핸드백을 론칭할 때 시몬느의 조언을 구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시몬느는 이런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연간 2억 달러 이상을 수출한다. 거짓말 같지만 이 회사는 2억 달러 매출을 올리기까지 위기를 모르고 성장해왔다. 미리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평소 인력을 잘 관리한 덕분이다. 직원들의 열정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래서 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최대한 편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몬느의 직원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여느 회사보다 1시간 30분 더 일하는 셈이다. 직원들에게 불만이 없느냐고 물었다.

“일하는 만큼 돈을 더 주는걸요.” 농담 섞인 대답이었지만 직원들 모두 회사 시스템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기획실의 이민수 차장은 “돈보다 끊임없는 동기 부여가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고 알려줬다. 시몬느 직원들은 해외 출장이 잦다. 해외 영업 담당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사원에게 해외 시장을 체험할 기회를 준다. 박 회장은 “미국식 표현으로 ‘자기 발을 남의 신발에 넣고 신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사장, 임원뿐 아니라 하위 직원, 중간 관리자들까지 바이어들의 시각에서 생각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CEO 모임에 가면 직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쫓아오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사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과 꼭 같진 않더라도 서로 차이를 줄일 수 있도록 품고 이끌어 주는 것도 사장이 할 일이라고 봐요. 1년에 핸드백 시즌이 다섯 번 바뀌는데 간부들이 출장 다녀와서 ‘이것 고쳐라’ 일일이 지시할 시간이 있습니까. 실무자들이 해외 시장에서 우리 제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스스로 개선하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실천율도 높고요.”
비용이 부담되진 않을까. “예를 들어 직원들 해외 출장 보내느라 1년에 5억원을 더 쓴다고 해요. 생산할 때 사고율을 5%만 줄이면 오히려 두세 배가 남아요. 그동안 수고했으니까 바람이나 쐬고 오라는 차원의 출장이 아닙니다. 우리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잘못된 것 바로잡으면 장기적으로 득입니다.” 박 회장이 자재 개발실부터 생산 라인까지 직급을 따지지 않고 부지런히 직원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이유다. 시몬느에 ‘안주’란 없다. 오래 일한 직원일수록 박 회장의 ‘자기 발전 동기 부여’의 강도가 세지기 때문이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창업 멤버들이 회사를 떠나는 중소기업들이 있다. 신입사원들은 1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기 일쑤다. 시몬느는 다르다. 현재 직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직원이 10년 이상 근무했고, 매년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같은 인력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박 회장의 인력 관리 핵심이다. 이는 시몬느의 경쟁력과도 일맥상통한다. 시몬느에서 생산한 핸드백은 같은 소재와 컨셉트라도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하는 것. “시몬느는 좁은 의미에서 가격 경쟁력은 없지만 시장 경쟁력이 있다고들 합디다. 시몬느가 국내 다른 업체나 홍콩 업체보다 10% 정도 비싸요. 그런데도 시장 경쟁력을 인정받는 이유는 해외 브랜드 회사가 자체적으로 전문 인력을 조직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지요. 또 반품이 적고, 배달 사고가 없어요. 그러니 핸드백 한 개당 가격 경쟁력은 없지만 시장 경쟁력이 있는 셈이지요. 10% 더 비싸게 받은 돈은 직원 교육에 투자합니다. 10% 다 쓰지는 않고 5% 투자하고 5% 남기지요.”(웃음)

10년 넘은 직원이 절반 이상 시장에서 항상 새로운 이슈를 선점한 것도 시몬느의 경쟁력이다. 시몬느의 경력 앞에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붙는다. 1980년대 후반 300달러가 넘는 고급 핸드백을 ‘처음’ 생산했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의 핸드백 라인을 직접 기획·개발, 론칭했고, 8년 전 유러피안 럭셔리 브랜드를 ‘처음’ 제조했다. 중국에서는 중국, 인도네시아에 4개 공장을 가진 시몬느를 ‘따거(큰형님)’라 칭한다. 내년 11월에는 베트남 공장을 완공, 중국의 제조환경 변화에 대처할 계획이다. ODM 방식을 도입한 것도 80년대 후반 핸드백 업계에서는 획기적 사건이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 우리나라는 중저가 물량 위주의 경공업이 발달했다. 박 회장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스페인, 프랑스에서 고급 핸드백이 잘되는 것을 보고 ‘이거다’싶었다”고 창업 당시를 떠올렸다.


시몬느(SIMONE)는…

설 립 : 1987년 6월

대 표 : 박은관

자본금 : 10억원

매 출 : 3000억원

주요 생산 제품 : 핸드백

주요 거래처 : 코치, 마이클 코어스, 마크 제이콥스, 버버리, DKNY 등

해외 공장 : 중국 광저우·칭다오·라이저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임직원 수 : 220명(현지 직원 1만2000명)
“이탈리아 공장엘 갔는데 서른다섯 살 아래 기능자가 없더군요. 언젠가 아시아 쪽으로 고급 제품 생산 기지를 옮겨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캘빈 클라인, 도나 카렌 등 의류 브랜드가 토털 패션을 지향하리라는 예상도 적중했고요. 그때부터 의류 브랜드 회사의 전문성을 채워줄 수 있는 인력을 조직했습니다.” 회사를 차리기 전 8년 동안 중소 핸드백 제조업체에서 해외 영업을 담당한 것이 도움이 됐다. 로즈마리 버버리 회장 등 그때 알고 지내던 담당자들이 지금은 ‘결정권’을 가진 위치에 올랐다. 그렇다 해도 30개의 유명 브랜드 회사를 고객으로 두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박 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력이고, 다음이 브랜드들 간 정보 보안과 독점성을 지켜주는 일”이라며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브랜드들이지만 단 한 번도 ‘교통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핸드백 업계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면서 승승장구해 온 것은 실패를 몰라서가 아니라 실패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 회장은 자체 브랜드 개발에 신중하다. “국제적 명품 브랜드 개발은 제품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국가 고유의 문화를 담아야 해요. 5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성공은 가능합니다.” 박 회장이 말하는 ‘패션 주민등록증’을 가진 시몬느만의 브랜드가 언제 탄생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지정했다는 ‘세문로(世門路·시몬느의 거리)’가 중국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도 뻗을 날을 위해 시몬느의 직원들은 오늘도 7시까지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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