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의 인생 3막] “나는 다혈질이라 못 참아”
[이정숙의 인생 3막] “나는 다혈질이라 못 참아”
제법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서 “나는 다혈질이라서 못 참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성급하게 판단하고 감정에 휘둘려 팔팔하게 뛰고 흥분하는 것은 젊은이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나이 든 다음에는 웬만한 일쯤은 무심히 넘길 여유를 보여야 멋있다. 직위가 높아도 나이 든 상사가 촐싹대며 뭐든지 앞장서면 부하들이 “나잇값을 못해”라며 무시한다. 당신이 자주 “부하 직원들이 말을 안 들어 못해 먹겠어”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다혈질은 아닌지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이 들며 숱하게 겪는 인생의 다양한 경험은 어떤 때 참아야 하고 어떤 때 나서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들면 그런 체험이 녹아 들어 웬만한 일에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여유가 묻어 나와야 나잇값이 빛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태어날 때 남다른 용모를 가졌어도 그보다 못한 용모의 젊은 사람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천하장사였던 사람도 젊고 나약한 사람보다 기운이 더 세기 힘들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이들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관대한 마음의 여유뿐이다. ‘젊은 시절 숨가쁜 경쟁을 다 뛰어넘고 보니 별것 아니더라’ 정도의 여유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이 들면서 더 성마른 성격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이 든 다음의 여유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자신을 달구고 연마해야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드는 것을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나이 들수록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어”라는 강박관념이 생겨 더욱 완고하고, 편협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40대 후반 이후 세대는 사회적 상황 때문에 대부분 성공 일변도로 빠르게 달려와 나이 든 다음에 한 템포 늦추는 자기 연마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나이 든 다혈질이 돼 스스로 고립돼 간다. 프랑스 폴 발레리대 교수 출신 피에르 상소는 그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지금 정신 없이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현실 속 그들은 영원히 뭔가 결핍된 듯한 갈증 속에서 끝없이 바쁘게 살아갈 것이다”고 못 박는다. 그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자신도 대학 교수 직을 그만두고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이 프랑스 작은 도시 나르본에서 살면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한가하게 길거리를 걸어보거나 잠시 향수에 빠져보는 여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면 나이가 주는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은퇴를 앞둔 고위직 직장인은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영리하지만 게으른 상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은퇴를 했거나 자기 사업을 한다면 가능한 한 ‘벌써?’라는 생각이 들 때부터 매사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전체를 조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즉각 의사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노력해야 나이가 주는 관용과 여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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