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관리직도 철밥통?
EU 관리직도 철밥통?
폐쇄적 문화속에 특권 누렸으나 점차 변화 일어 올해 초 유럽 대륙에서 가장 탐나는 일자리를 노리는 구직자 1만2000명이 브뤼셀에 몰렸다. 다름 아닌 유럽연합(EU) 공무원 채용시험. 빈 자리는 125개뿐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유럽의 수재가 많이 모였다. 합격하려면 모국어 외에도 다른 두 개 이상의 유럽어에 능숙해야 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럽연합 정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선발되는 극소수 행운아라고 해서 반드시 자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미래의 일자리에 대비한 “대기자 명부”에 오를 뿐이다. 그렇다고 구시렁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봉이 4만8000유로로 제법 높고, 가외로 푸짐한 16%의 외국인 수당이 주어진다. 일자리는 대체로 평생직이다. 게다가 브뤼셀은 유럽에서도 삶의 질이 높은 편이다. 집세가 싸고, 유럽의 다른 수도에 비해 1인당 식당 수도 많다. 새로 단장한 룩셈부르크 광장의 노변 술집들은 밤마다 젊은 “유로크라트”(EU 공무원)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영화(榮華)의 시절은 저물어 간다. 규정을 만들어 온 50년 세월 끝에, EU가 시민들과 동떨어졌다는 비난 속에서 권력은 무책임한 관리들의 손을 떠난다. EU 지도자들이 이번 10월 합의한 새 개혁협정에 따라 선출직인 유럽의회에 더 많은 권한이 넘어가게 된다. 유럽인들에게 그것은 민주주의로의 진일보, 관료주의 통치의 탈피를 뜻한다. 사실 이것은 보통의 관료주의가 아니다. 현재 3만2000명에 이르는 엘리트 관리는 일반 공무원이 누리기 어려운 권력을 누린다. 사실상 다른 민주체제와는 달리 선거로 뽑힌 의원들이 아니라 그들만이 법안을 제안한다. 표면상 일반 여론에 무관심한 그들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복잡한 입법제도를 이용해 EU 창립자들이 약속한 “더욱 긴밀한 연합”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오로지 그 내부자들만이 “유효 다수결 투표”나 “공동 의사결정”의 복잡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한다. 까다로운 법안이 집행위원회, 의회, 각료이사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 뒤 법령집에 등재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 이 모든 일은 EU의 정책기구인 유럽집행위원회 본부가 있는 베를레이몽 건물에서 벌어진다. 가장 고위직이 높은 층을 차지하고 총 8만 명 정도가 일하는 사무공간인 EU 지구를 내려다본다. 로비스트 1만5000명, 수백 명의 언론인, 다수의 보좌관, 의원, 유럽 전역과 그 너머에서 온 외교관이 8만 명 안에 포함된다. 이런 폐쇄문화에서 브뤼셀의 영향력에 불만을 품는 외부인이 많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EU가 단일 경제시장을 구축하던 1980년대에 유로크라트들은 법을 만들기 좋아했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EU는 포장과 전문직종 자격에 관한 지침을 80개 이상 발령했다. 특히 영국 언론이 바나나의 만곡도나 잔디깎기 기계의 소음 수준을 규제하려는 지나친 관료주의의 실례를 (종종 뜬금없이) 들먹이기 좋아했다. EU 집행위원회 부의장 귄터 베르호이겐의 표현을 빌리면, “EU를 ‘브뤼셀의 네스호 괴물’로 보는 인식이 있다. 각국의 모든 차이점을 잘라내 유럽 수프에 넣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관료주의 괴물이라는 뜻이다.” 이에 맞서 EU는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우선 특권을 줄였다. 세 시간씩 즐기던 점심은 이제 브뤼셀 모든 사람의 추억으로 바뀌어 간다. EU 관가에는 3D라는 말이 나돈다. 민주주의(Democracy), 토론(Debate), 대화(Dialogue)다. 의사소통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공무원을 신규 채용하는 최근의 대대적 경쟁은 친시민적 EU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릴 미디어와 통신 전문가를 뽑는 데 목적이 있다. EU의 브뤼셀 정보센터에 산더미처럼 쌓인 새 팸플릿에는 지난 50년 동안의 EU 업적이 나열됐다. 유로화 출범, 배출가스 교환계획 등이 포함됐다. 정책입안자들은 많은 법안이 아니라 보다 나은 법안에 주안점을 둔다고 말했다. 2004년 새로 가입한 10개 국 역시 EU의 역할을 좀 더 실용적으로 보는 듯하다. 연합의 덩치가 커지면 일방적 명령으로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회원국이 27개나 되니 ‘어련히 알아서 시킬까’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EU의 한 고참 직원이 말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EU 헌법을 부결한 2005년 국민투표도 원대한 유럽의 이상을 위해 애쓰는 브뤼셀 관리들에게는 정신이 바짝 드는 찬바람이었다. “그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누구인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EU 관리로 일했으며 그 체험을 비판한 ‘유럽 관리의 생활’이라는 책을 낸 데르크-얀 에핀크가 말했다. “너무 많다”가 그 한 가지 답이 되겠다. 관료주의가 브뤼셀 관료들의 업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은 지도 사실 여러 해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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