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아이디어로 희망의 백신 개발한다
혁신적 아이디어로 희망의 백신 개발한다
의사, 금융인, 엔지니어, 과학자가 각각 전 세계 어린이 목숨 구하기에 팔 걷어붙였다 의학엔 세 가지 지식이 있다. 누가 보아도 당연한 지식, 그리 당연해 보이지 않는 지식, 그리고 에드워드 제너 박사가 1796년 발견한 부류의 지식이다. 잉글랜드의 시골 글루세스터셔에서 의사 생활을 하던 그는 이웃으로부터 우두에 걸린 사람은 보다 치명적인 천연두에 자주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곤 최초의 병이 두 번째 병에 맞서도록 인체의 방어를 촉발한다고 추론했다. 동료 의사들은 분명 그런 추론을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여겼을 법하다. 당시만 해도 ‘면역체계’니 ‘병원균’이니 하는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당연히 표현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너 박사는 자신의 추론을 믿었다. 그의 추론을 믿은 사람은 또 있다. 그해 봄 한 여성은 자신의 농장에서 우두가 발생하자 여덟 살 된 아들 제임스 핍스를 상대로 제너 박사가 시험을 실시하도록 허용했다. 제너는 우두에 감염된 젖 짜는 여성의 고름을 수거해 소년에게 주사한 뒤 기다렸다. 그러고 6주 후 소년에게 천연두균을 주사했다. 소년이 아프지 않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발표했다. 백신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제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당시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인습과 관습의 틀을 과감히 깨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다. 백신은 천연두를 박멸해 전 세계를 송두리째 바꿨으며 선진국에선 소아마비와 홍역을 거의 없앴다. 백신은 지난 2세기의 가장 중요한 의학적 혁신 중 하나지만 동시에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혁신이기도 하다. 백신이 질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다만 예방할 뿐이다. 그럼에도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100명에게 예방접종을 하면 그들의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수천 명의 감염을 막는다. 백신은 매년 수를 헤아리지 못할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다. 헤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서구에선 백신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백만 명이 아직도 백신을 맞지 못하는 현실은 더욱더 당혹스럽다. 예방접종 문제에서 개도국 다수는 아직도 18세기에 갇혀 산다.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의 드넓은 지역에선 아동들이 선진국에선 흔한 기본 백신 중 어느 하나도 맞지 못한다. 아동들의 사망 원인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매년 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에이즈 바이러스(HIV)·결핵·말라리아 등 주요 질병을 막아주는 정기적이고 효과적인 예방접종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병들에 잘 듣는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백신 과학은 힘들다. 의사들은 개도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임상시험을 실시하며, 생물학자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항상 이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백신의 개발 과정도 험난하다. 백신이 실험실을 벗어나 열악한 환경의 환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어려움으로 가득하다. 재정 지원도 어렵다. 백신은 비용에 비해 효과적이긴 하지만 빈곤국 대부분이 이용하기엔 너무 비싸다. 게다가 경험상 부유한 나라가 문제 해결에 돈을 지원해도 결실을 보기가 힘들다. 그런 장애 요인들을 고려하면 사람들이 접종을 받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다. 그럼에도 의사 제너가 첫 환자를 치료한 지 211년이 지나면서 그런 장애물도 서서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백신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백신의 기능도 똑같고, 백신을 통해 세계 최악의 질병들을 없앤다는 점에서 목표도 그대로다. 그러나 그 뭔가가 바뀌었다. 이제 제너에겐 새로운 대규모 ‘후계자’ 집단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종일관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기술 수준이 낮은 환경에서도 최첨단 과학을 보다 쉽게 이용하도록 하려고 애쓰는 의사, 23년간이나 HIV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했음에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생물학자, 그리고 흡입 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한 분말형 백신으로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가 가능하다고 믿는 엔지니어가 바로 그들이다. 또 한 명이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채권에 투자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빈곤층 주민들의 보건 개선에 앞장서는 금융업자다. 네 명 모두는 인습을 타파하는 혁신적 사고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들이 제너처럼 미친 사람이라면 좋은 일일지 모른다. 프레드 빈카(54) 박사는 얼마 전 아프리카 가나 중부의 한 병원 침대에 고이 잠든 생후 4개월 된 여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니퍼 만수아라는 아이였다. 아이는 그날 하루 대부분을 전기가 나간 킨탐포 보건연구센터의 어두운 병실에서 보냈다. 간호사들은 촛불을 켜고 아이에게 수혈했다. 모기가 들러붙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모기는 싸움에서 승리했다. 제니퍼가 말라리아에 걸렸기 때문이다. 제니퍼의 어머니 세실리아 나카부는 값비싼 병원을 찾지 않는 방식으로 딸을 치료하려 했다. 의사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 따뜻한 보살핌, 그리고 기도였다. 이제 제니퍼는 병세가 가라앉아 건강을 회복 중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딸 주위를 서성댔다. 그 사이 빈카 박사는 제니퍼뿐 아니라 수백만 명의 다른 아이를 구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는 “사회 전체가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말라리아를 예방할 백신만 개발된다면 1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질 텐데.” 빈카 박사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미경만 뚫어져라 보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아시아·아프리카·중미에 걸쳐 37개 연구센터를 갖춘 ‘인뎁스(INDEPTH)’의 사무국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뎁스는 역내 환자의 의료기록, 결혼,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엄청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중이다. 킨탐포 보건연구센터만 해도 14만 명을 추적한다. 그 데이터는 이 같은 환자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공식 기록이다. 가나 사람들은 정부에 출생이나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경우가 드물 뿐 아니라 주민증을 소지한 사람은 더욱 적다. 더러 자신의 나이도 모른다. “수천 명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생활하고, 은퇴하고, 죽지만 마을 밖에선 그들의 존재조차 모른다”고 빈카는 말했다. “이용할 만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임상시험은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기본적 자료가 없으면 개도국에선 최첨단 연구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들 나라를 위한 백신 시험은 반드시 현지에서 실시돼야 한다. 그래야만 피시험자들이 예방하고자 했던 질병들에 걸렸는지 여부를 의사들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카 박사가 확보한 종류의 데이터베이스는 개도국에서의 시험이 선진국 기준에 부합하도록 한다. 어떤 백신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시험이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세계적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현재 아프리카 전역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말라리아 백신을 시험 중이다. 초기 결과는 고무적이다. 따라서 그 공로는 상당 부분 GSK의 과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시험 센터의 인프라를 개선하려는 빈카 박사의 노력이 그 작업에 힘을 실어줬다. GSK의 과학자로 시험 백신 개발에 참여한 도운 리플리 발로는 “이번 시험은 미국과 똑같은 정밀 검증을 거친다”며 “직원을 뽑고, 훈련시키고, 혈액 배양·수송·인프라 수준을 높이는 작업이 모두 이뤄진다”고 말했다. 가나 의료보건 체계의 개선은 GSK 연구진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 지속된다. 이 같은 개선은 이번 백신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래 환자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빈카 박사는 적어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우선 그는 일관된 치료 효과를 원한다. 가령 제약회사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도 제대로 돌아가는 보건체계 말이다. 빈카는 “우리는 현지인들을 실험실 과학자로 키우고 싶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가나에서 효과가 좋은 시험을 실시하고 모든 과정이 끝나면 ‘자, 이젠 정부가 모든 일을 감당해도 된다’는 확신이 서야 한다.” 유망한 백신 개발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PATH 말라리아 백신 계획’에는 빈카를 돕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 단체에서 과학 책임자로 일하는 존 맥네일은 “서구의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중부에 들어와 일하다 훌쩍 떠나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프리카인들에게 공평하지도 못할뿐더러 이미 구축한 인프라도 잃게 된다. GSK의 새 백신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내년에도 빈카는 열심히 일할 듯하다. 오직 자신이 원해서다. 미국의 유명 제약회사 와이어스의 백신 개발을 감독하는 에밀리오 에미니(53)는 여러 가지 면에서 ‘큼직’하다. 190㎝를 훌쩍 넘는 키에 넓은 어깨를 가진 그는 사고의 폭도 넓다. 그런 만큼 과학적 명성도 대형 제약회사들 중 으뜸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도 개도국에 백신을 제공하는 도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 도전은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에미니는 독일의 세계적 제약회사인 머크에서 백신 개발자로 일하던 1983년 최초로 일생의 적을 만났다. 그는 말만 앞세우기보다는 수많은 새로운 주장과 사실, 그리고 복잡한 전문용어를 내놓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적은 인간이 아닌 바이러스다. 그것도 머크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해에 발견된 HIV 바이러스다. 당시만 해도 에미니는 자신이 향후 24년 간을 그 바이러스와 싸우며 보내게 될 줄 몰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에이즈는 희대의 역병이었다. 그러나 미 보건후생부의 마거릿 헤클러 장관은 HIV 백신 시험이 2년 내로 시작된다고 예언했다. 시험은 실제 실시됐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그 후 모든 시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과학자들이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는 HIV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활발하면 할수록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백신만큼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요인도 없다. 에미니는 “백신을 개발하는 우리의 목표는 HIV가 인체의 대응 기능을 역이용하기 전에 죽여 버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미니는 그 악질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최소한 불능화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90년대 중반 그는 머크사에서 일반 감기의 원인인 ‘아데노바이러스’에 HIV 유전자를 첨가하는 백신 개발을 진행했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시험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그러던 중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 들어가기 전인 2003년에 머크사를 떠나 ‘국제 에이즈 백신 계획’의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도 예전에 개발한 백신을 계속 시험했다. 많은 사람이 그랬다. 그 백신은 기존의 다른 어떤 백신보다도 큰 효과가 기대됐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미 옛날 이야기다. 머크사는 얼마 전 그 백신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 백신은 탁월하게 설계됐고,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는 듯했지만 앞서 실시된 수 차례의 시험에서처럼 효과가 없었다. HIV 연구자들에겐 가장 가혹한 좌절의 순간이었다. 몇몇 과학자가 HIV는 백신이 듣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에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고 그는 잘라 말했다. 현재 와이어스사에서 그가 이끄는 백신 개발팀은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실제로 과학자가 상상 가능한 모든 전술에 기초한 수십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대부분의 백신은 배양접시에서 자라지만 사노피-파스퇴르(사노피-아벤티스사의 백신사업 부문)가 개발한 백신은 임상시험에서 머크사보다 약간 앞섰다. 이런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성공 가능성을 확고히 믿는다. 만일 새로운 백신 중 어느 하나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너무도 행복할 것”이라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HIV 전문가 호세 에스파르자 박사는 말했다. “만일 효과가 40%인 백신을 개발한다면 샴페인을 터뜨릴 듯하다.” 그 사이 에미니에겐 할 일이 산적해 있다. 현재 그는 와이어스사에서 다른 백신을 개발 중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백신은 ‘프리브나르(Prevnar) 13’이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복잡한 생물학 제품”이라고 그는 말했다. 작동원리는 놀랍다. 기본적으로 13가지 백신을 하나로 합쳤기 때문이다. 기존 백신을 새롭게 변형시킨 이 백신은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 연쇄구균 박테리아의 13가지 변종을 공격한다. 그런 박테리아 중 일부는 주로 개도국에서 발견되며 시험은 현재 마무리 단계다. 폐렴 연쇄구균 백신을 개발 중인 제약회사들엔 ‘당근’도 주어진다. 소위 ‘시장 선점 보장(AMC)’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자금지원이다. 잘사는 나라들(대부분 유럽 국가)은 지난해 폐렴 백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약회사가 개도국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백신을 만들면 자신들이 구입해 개도국에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제약회사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개도국은 자신에게 필요한 약을 얻고, 유럽 정부는 자신의 지원금이 개도국의 열악한 보건 환경을 개선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AMC는 향후 말라리아·결핵·에이즈 백신 개발을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 HIV 백신 개발엔 수많은 성공 유인책이 제공된다. 노벨 의학상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좀 더 노력한다고 해서 해로울 일은 없다. 에미니가 익히 알 듯 HIV와의 싸움에는 세계가 제공 가능한 모든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에드워즈(46)는 그처럼 새로운 무기를 개발 중이다. 아직 HIV를 겨냥한 무기는 아니다. 하버드대의 생명공학자인 그는 말투가 부드럽고 빠르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으니 말은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의 연구가 현실화하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다. 그에게 칭찬을 건네면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은 그저 “기술과 과학을 결합하는 일”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동료이자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장인 배리 블룸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성격이다. 그는 에드워즈 박사가 보여준 최고의 혁신은 바로 “관습을 깨뜨리는 자세”라고 말했다. 에드워즈의 연구는 자신의 말버릇과 비슷하다. 정확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지금까지 백신 개발에서 불가능했던 과정을 본질적 수준에서 재검토해 타당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해왔다. ‘살포 건조법’으로 불리는 그 과정은 저온살균 우유를 생산할 때 쓰는 방법과 같다. 작업은 대개 과도한 열로 인해 말라버리는 부분을 보호하는 화학물질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그 화학물질을 살아 있는 박테리아에 적용하면 보호 기능이 사라질 뿐 아니라 오히려 치명적이다. 에드워즈 박사는 바로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그와 대학원생인 윤-링 웡은 그 화학물질을 제거한 뒤 물이 주성분인 보다 단순한 용액에 박테리아를 살포하고 건조시켰다. 그 결과 분말 형태의 결핵균이 만들어졌다(연구 결과는 지난 2월 발표됐다). 조만간 기존의 결핵 백신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환자는 그 가루를 흡입하기만 하면 된다. 이론적으로 이것은 엄청난 발전이다. 이 살포·건조 기술은 결핵뿐 아니라 어떤 질병에도 맞설 백신 개발을 가능케 한다. 분말은 제조가 쉽고, 신속하고, 값싸며 대부분의 기존 백신과 달리 상온 보관도 가능하다. 사실 기존 백신들은 냉동 보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덥고 기후가 자주 바뀌는 열대 국가에선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실용화될 경우 오늘날 개도국으로 백신을 수송할 때 이용되는 까다로운 과정이 불필요해진다. 에드워즈 박사는 “주사 바늘을 없앤 쾌거도 대단하지만 더 좋은 백신을 개발하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훌륭한 백신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그 분말에는 자기복제가 가능한 살아 있는 박테리아가 기존 백신보다 10배나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분말 형태는 오히려 문제가 되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러 거대한 결핵균 덩어리를 선뜻 들이마시는 행위를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분말에 함유된 유기체는 기능이 약화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폐처럼 미세한 기관에서 반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에이라스 세계 결핵백신 재단의 제럴드 사도프는 말했다. “물론 위험도 따르며 그런 위험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실험용 돼지에서만 위험성을 조사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의사 제너처럼 에드워즈 박사도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해야 한다. 그 일은 곧 일어날지 모른다. 엄청난 액수의 백신 연구비를 지원하는 게이츠 재단은 얼마 전 지원 대상 폭을 훨씬 더 넓혔다(이 분야에 관한 한 게이츠 재단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글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재단 측은 ‘에이라스 세계 결핵백신 재단’에 2억 달러를 지원해 분말 백신을 포함한 여섯 종류의 새로운 결핵 백신을 시험하도록 할 계획이다. 에드워즈 박사는 분말 백신을 더 대규모로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는 지난해 남아공 과학자들이 자체적인 살포·건조 시설을 지으려고 자신의 실험실을 다녀갔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그들이 전 세계의 연간 결핵 백신 공급량을 생산할지도 모른다고 에드워즈는 말했다(그 정도의 분량을 만들려면 50일이 걸린다). 단지 헛된 꿈에 불과할까. 만일 그렇게 느낀다면 심호흡을 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 크리스토퍼 이거튼-워버튼은 옥스퍼드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과학자도, 의사도, 엔지니어도 아니다. 학문 세계는 그에게 너무도 불확실하고 보상도 적었다. 그는 현재 금융인으로 일한다. 첫눈에도 전형적인 금융인의 모습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골드먼삭스의 런던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대규모 악질 은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별명이 “에지(Edge: 튀는 사람)”인 그는 벼슬이 달린 커프스링크를 착용하며 얼핏 세속적인 성공의 상징처럼 보인다. 실제로 골드먼삭스의 2003년 연례 보고서엔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의 사진이 실렸다. 흔히 골드먼삭스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아침식사로 아기도 먹어 치울 사람들”을 연상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그런 말에 신경을 쓰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매력적이면서도 집요하다. 일례로 그는 자선사업을 하다 보면 “동료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 때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지’는 자선의 의미를 안다. 얼마 전 영국 정부는 누가 봐도 인기 없는 백신 프로젝트에 관한 자문이 필요했다. 그 일은 결국 그에게 떨어졌다. 그가 맡은 일은 접종 사업을, 위험을 싫어하는 수십억 달러의 국제자본을 끌어들일 만큼 매력적이고 안전한 투자기회로 바꾸는 일이었다. 그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투자자 중엔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록그룹 U2의 리더 보노,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그리고 교황도 포함됐다. ‘에지’가 발족시킨 기구는 바로 ‘국제면역금융센터(IFFIm)’다. 그 일은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2002년 고든 브라운 당시 영국 재무장관은 골드먼삭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채권시장을 통해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정부의 혁신적 계획을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것도 두 달 안에 무료로 해줄 의향이 없느냐고 타진해 왔다. 결국 골드먼삭스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그 일은 ‘에지’에게 맡겨졌다. ‘에지’는 이제 겨우 20대를 벗어난 나이였지만 그는 이미 그 일에 적합한 이력이 있었다. 인종차별이 철폐된 남아공을 도우려는 목표로 이와 비슷한 채권 발행을 추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에지’는 백신 분야에서도 그 같은 사업이 실시되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그 일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런 일에는 자금조달 기술뿐 아니라 약간의 중재도 필요했다. 당초 그가 끌어들인 자금은 ‘백신과 접종을 위한 세계 연맹(GAVI)’의 예산으로 책정돼 있었다. GAVI는 시장지향적이며 신속한 결과를 원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단체는 여전히 비영리조직이며 사람들을 돕는 게 목표다. 따라서 대차대조표에 등장하는 손익 개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번은 협상이 장애에 부닥쳐다. 여러 유럽 정부는 IFFIm의 첫 채권 발행에 동의했으나 까다로운 자금 조달 규정 탓에 거액 조성이 불가능했다. 결국 ‘에지’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바로 지원 자금을 수혜국의 재정 건전도와 연계시키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공여국들의 거액 제공이 법률적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GAVI 측은 ‘에지’가 만든 그 조항이 불러올 역효과를 우려했다. 재정 상태가 형편없는 나라들이 실제로 원조가 가장 절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에지’는 다시 고심을 거듭한 뒤 돌파구를 찾아냈다. GAVI는 IFFIm에서 나온 자금이 아닐 경우 예산 중 일부를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나라들에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IFFIm이 공식 발족했다. 그 후 그 단체는 홍역· 소아마비·파상풍·황열병과 싸우는 노력에 자금을 지원했다. ‘에지’는 여전히 금융인이다. 지금은 RMB 인터내셔널사에서 일하는 그는 자신의 백신 프로젝트를 즐거운 마음으로 돌이켰다. 그러곤 그런 경험이 밤에 숙면을 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 프로젝트는 돈을 많이 벌면서도 선행을 실천하는 드문 기회였다. 그가 어떤 커프스링크를 착용하건 간에 그런 경험이 커프스링크의 빛을 바래게 하진 않을 듯하다. 2주 전 뉴욕에선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인도주의자들이 올해 최대 자선행사인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참가했다. 빈곤과 지구온난화 대책 기금 마련이 목표인 그 행사는 정책 브리핑과 음악을 통해 공감대를 높이는 행사가 뒤섞였다. 9월 26일에는 한 패널이 빈카, 에미니, 에드워즈 박사와 ‘에지’ 같은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를 토론했다. 그런 문제가 정확히 언제, 그리고 과연 해결될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전 세계인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지금은 해결책이 나올 전망도 더욱 밝아졌다는 점이다. 그날 패널 중에는 게이츠 재단의 ‘글로벌 헬스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야마다 다치 박사도 포함됐다. 그는 “사람들이 얼른 낚아채고 싶은 매우 고귀한 아이디어들”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말해 제너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려 했다. 이런 모임은 연중 내내 열린다. 클린턴 대통령이 주최한 회의 준비가 한창이던 때도 더 많은 혁신적인 과학자 집단이 MIT에서 다른 모임에 참가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 어느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하며 대개는 세계 보건 수준을 높이는 일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야마다 박사는 메시지는 그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다. 어디서든 간에 그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찾아 다닐 작정이기 때문이다. 가령 한 금융인에게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리라. 그 금융인이 예전엔 백신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도 관계 없다. 그의 말마따나 혁명은 그런 식으로 이뤄지니까 말이다. 만일 한 시골의사와 농촌 여성, 그리고 8세 소년도 그런 혁명이 가능하다며 우리 모두도 가능할지 모른다. With SCOTT JOHNSON in Kintampo, WILLIAM UNDERHILL in London and SARAH KL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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