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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에 돈이 몰린다

착한 기업에 돈이 몰린다

최근 주가지수(KOSPI)가 2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상승세를 지속하자 고등학교 교사인 전승석씨도 더 늦기 전에 은행에 넣어뒀던 예금을 주식투자로 돌리기로 결심했다. 1997년에 이미 직접투자로 큰 낭패를 본 경험이 있던 터라 이번에는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택했다. 하지만 펀드는 너무 종류가 많고 복잡했다. 주식형, 채권형, 전환형, 엄브렐라, 적립식, 인덱스, 원자재 펀드… 수익은 적더라도 손실 위험이 적은 안정적 장기 투자를 원하는 전씨에게 증권사 직원은 SRI(사회책임투자) 펀드를 추천했다. 환경, 사회공헌 등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라는 설명이었다. 명분은 좋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CSR 활동이 과연 기업에 그리고 자신에게 돈을 벌어주느냐 하는 점이었다. 더 나아가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한때 반짝하다 사라지는 유행일지 모른다는 의심도 들었다. 근래 들어 가치를 중시하는 개인투자자와 공익성 강한 연금기금 투자가를 중심으로 SRI 펀드에 보이는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이 무려 3000억원의 투자를 이 분야에 집행하면서 시작된 변화다. 업계에서는 지난해를 사실상 SRI 펀드 투자 원년이라고 평가한다.


SRI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투자의사 결정 때 기업의 재무성과뿐만 아니라 경제·환경·사회적 위험이나 기회를 고려하는 투자방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과거에 고려하지 않던 위험 요인을 한 번 더 고려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더 좋을 뿐 아니라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효과도 있다. 초기에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비윤리적 기업, 예컨대 담배, 술, 도박, 무기제조업체 등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투자를 결정할 때 재무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 측면 등을 모두 고려하는 방식으로 확대됐다.
2005년 11월 SH자산운용의 ‘TOPS아름다운SRI주식’이 처음 설정된 이후 현재까지 SRI좋은세상만들기펀드(산은운용), 행복나눔SRI펀드(대신운용) 등 모두 7개 SRI 펀드가 국내에 출시됐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2007년 5월 SRI 펀드 규모가 국민연금의 3000억원을 제외하고도 2000억원 이상 더 투자됐지만 아직은 전체 성장형 펀드(30조원)의 2% 미만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SRI 펀드는 성격상 단기투자가 아닌 데다 특히 그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수익률을 따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SRI 펀드에 투자하려 할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장재하 팀장은 “30조원의 주식자산 중 1%를 시범적으로 SRI 펀드에 투입했다. 재무실적이 우량하면서도 사회공헌을 많이 하는 회사가 오랫동안 꾸준히 수익을 낸다고 판단했다. 장기적으로 공익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연금의 성격과도 맞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측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 사이 SRI 펀드에 넣은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실적은 KOSPI 지수보다 3.6% 높았다. 59개 위탁운용 펀드 전체와 비교해도 수익률이 0.6% 높았다. “지금까지는 운용사들이 잘해 준다. 연말에 가 봐야 알겠지만 실적만 좋으면 추가로 기금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기금운용본부 대외협력팀 김문수 팀장은 말했다. SRI 펀드가 주목 받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CSR 활동이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투자가들의 위험회피, 안전성 추구의 측면도 없지 않다. 한동안 이익 극대화 일변도의 시장자본주의가 위세를 떨치면서 기업활동에 많은 부작용이 따랐다. 세계적으로 자원고갈, 환경파괴, 빈부격차 확대가 심화됐다. 이제 기업에 이익만 챙기려 하지 말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비자와 지역사회, 종업원,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라는 압력이 나날이 커진다. 그리고 그런 요구를 묵살하다가 소비자와 투자가로부터 외면당하는 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재무실적을 도외시한 채 사회적 명분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기법으로 SRI 펀드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환경, 지배구조, 사회문제 등 기존에 등한시하던 위험을 미리 고려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구미의 사례에서 입증됐다”고 증권연구원의 노희진 연구위원은 말했다. “따라서 SRI는 국민연금 등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한 투자수단이며 물론 운용실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앞으로 기업연금 등 장기투자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자연스레 펀드 규모도 확대될 전망이다.” 물론 초창기 의욕이 너무 앞서 벌어진 시행착오도 있었다. 2004년 한 증권사에서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양성평등 테마의 펀드를 만들려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 종업원 수, 여성 간부 수를 기준으로 선정했더니 섬유회사, 여성 방문판매원이 많은 회사 등 특정 업종으로 한정됐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에만 너무 치우쳐 생긴 결과였다. SRI는 1920년대 미국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한 술, 담배, 도박, 총기 등 이른바 비윤리적 종목(sin stock)에는 투자하지 말자는 사회운동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 후 구미를 중심으로 발전해 오다가 특히 1990년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본격화되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2005년 말 현재 미국의 경우 전체 펀드 투자자금 중 SRI 펀드의 비율은 9.4%다. 10년 전의 6400억 달러에서 2.3배 증가했다. 유럽에서는 2000년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법이 통과된 후 본격적으로 성장했으며 SRI 투자규모는 2005년까지 6년간 2.2배 성장한 2413억 유로에 달했다. 일본은 1999년 ‘에코펀드’가 설정된 후 개인투자자의 높은 관심과 기업의 참여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며 2005년 현재 총 11개 펀드에 자산규모 1400억 엔을 넘어섰다. 전 세계의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약 4000조원에 이른다.


PRI
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금융기관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투자 대상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등을 고려하도록 하는 책임투자 원칙이다. 2004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주도 아래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FI)와 선진 금융기관,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개발하고 2006년 4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발표했다. 강제성은 없으며 ESG 이슈를 고려하는 투자의 실행 프로그램 제공이 목적이다. 전 세계 80여 금융기관이 이 원칙에 서명했다.
지속가능투자라고도 불리는 SRI는 기업의 재무 정보와 함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정보를 함께 평가한다. 하지만 환경보호나 사회발전 등의 실적은 일정한 척도나 통계가 없기 때문에 측정하기가 까다롭다. 따라서 전문적인 컨설팅사가 그런 기업들을 발굴해 평가하는 일을 대신한다. 현재 스위스의 SAM(Sustainable Asset Management), 영국의 EIRIS(Ethical Investment Research Service), 미국의 이노베스트(Innovest Strategic Value Advisors) 등이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를 평가하는 대표적 기관으로 손꼽힌다. 이들 컨설팅 업체는 자신들의 독자적 평가모델을 바탕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지수를 개발해 발표한다. 세계 최초의 지속가능성 지수는 1999년 스위스 SAM사가 다우존스와 공동으로 개발한 DJSI(다우존스지속가능성지수)다. DJGI(다우존스 글로벌 지수) 중 지속가능경영 수준 상위 10%(약 300개)만을 대상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서, 환경보고서, 사회보고서, 재무보고서, 연차 보고서와 언론 보도나 설문지 조사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1994년부터 2006년 8월까지 글로벌 펀드의 투자기준이 되는 MSCI World 지수보다 연 평균 7% 높은 실적을 올렸다. 2006년 현재 337개 종목이 편입됐으며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SDI와 포스코가 편입됐다. FTSE4Good 지수(Financial Times for Good Index)는 영국의 주가지수 전문기관인 FTSE 인터내셔널이 2001년 개발했으며 영국의 EIRIS가 평가 모형을 제공한다. 기존 FTSE 지수에 포함된 757개 기업을 대상으로 환경, 인권, 사회적 책임 세 가지 항목을 조사한다. 파이낸셜타임스 지수에 속한 기업 중 지속가능성의 특정 요건을 갖춘 기업으로 구성된 이 지수도 투자자들의 기준인 FTSE 100 지수보다 성장률이 높다. 한편 미국의 이노베스트는 2005년부터 매년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에서 글로벌 100(세계 지속가능 100대 기업)을 발표한다. 한국 실정에 맞는 종합적인 SRI 평가 모델은 아직 없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가 17년째 경제정의 기업 목록을 발표하지만 투자 목적이라기보다 공익성이 강하다. 기업의 환경대책이나 사회책임 정책을 투자자에게 알리는 지속가능 보고서 발표 기업이 아직 30~40개에 불과한 점도 한 가지 이유다. 비교적 규모가 큰 미래에셋이 자체 조사인력을 갖췄고 지속가능성 평가업체 에코프론티어가 미국 이노베스트의 평가모델에 기초해 국내 기업을 평가, 그 결과를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정도다. 그 밖에 서스틴베스트, 솔라빌리티 등의 지속가능경영 컨설팅 업체가 있으나 종합적인 평가등급을 제공하는 회사는 아직 없다.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GRI(지속가능보고서 가이드라인)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준으로 하되 산업·국가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가령 지배구조의 국제기준을 우리나라 기업 소유구조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우며 또 금융·통신과 정유업에 적용하는 환경평가 기준은 달라야 한다.” 하지만 좋은 평가모델을 개발한다 해도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기업이 적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개념은 원래 환경문제와 관련해 등장했으나 1987년 유엔 세계환경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에서 환경보전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발전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스스로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지속가능발전의 세 가지 핵심요소는 경제성장, 환경보전, 사회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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