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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글로벌·혁신이 키워드

고객·글로벌·혁신이 키워드

지난해 초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1991년 이후 15년 동안 사용했던 슬로건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를 스스로 역사 속에 묻었다. 대신 ‘립 어헤드(Leap Ahead : 앞으로 도약한다)’라는 새 슬로건을 채택했다. 1년간의 고심 끝에 내놓은 작품이었다. 인텔이 슬로건을 바꾼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인텔의 사업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고, 실적 부진과 주가하락으로 대내외적 변화를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텔 인사이드’는 말 그대로 ‘인텔 제품이 컴퓨터 속에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텔은 CPU(중앙처리장치)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그 상징적인 표현이 슬로건 교체였다. 인텔의 경우처럼 ‘기업 슬로건’은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구호다. 기업의 비전을 담은 슬로건이건, 고객을 향한 기업 PR용 슬로건이건, 특정 브랜드 슬로건이건, 그 속에는 기업의 핵심가치가 녹아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의 슬로건은 어떨까? 최근 재계에서 새롭게 선보인 슬로건은 하이닉스반도체가 채택한 ‘굿 메모리(Good Memory)’, 삼성전기의 ‘인투 더 퓨처(Into the future)’, LG화학의 ‘솔루션 파트너(Solution Parter)’ 등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하이닉스반도체 측은 “좋은 메모리 반도체 제품으로 업계 최고의 반도체 전문회사로 도약함과 동시에 주주, 고객, 임직원, 협력업체 등에도 좋은 기억을 남긴다는 복합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을 기치로 내세웠던 삼성전기는 지난 1일 창립 34주년을 맞아 “급변하는 시장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기치 아래 ‘인투 더 퓨처’라는 새 슬로건을 내걸었다. LG화학이 올 하반기부터 내걸고 있는 ‘솔루션 파트너’는 ‘고객의 문제 해결과 성공을 도와주는 동반자’란 뜻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시장에서 매출 100위(2006년 말 기준, 외국계 포함) 안에 드는 기업의 슬로건을 조사했다(표 참조). 특별히 기업 슬로건이 정해지지 않은 기업은 ‘PR(광고)용 슬로건’으로 대신했다. 매출 100대 기업이 내건 슬로건의 주요 키워드는 ‘고객’ ‘글로벌’ ‘혁신’ ‘기술력’ ‘창의’ ‘미래’ ‘가치’ ‘동반자’ ‘친근함’ 등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것으로 ‘Global’ 6건, ‘World’ 4건, ‘세계’ 2건 등 총 15건이었다. 다음은 고객을 지칭하는 ‘You(9건)’ ‘고객(5건)’ 등으로 14건이다. ‘Good’류(‘좋은’ ‘Best’ ‘Better’ 등) 단어는 13건이었다. 다음으로 노출이 많은 단어는 ‘Life’로 8건이었다. ‘미래’는 6건(‘Future’ 3건), ‘Partner’ 5건, ‘가치’와 ‘Value’는 각 4건이었다. ‘혁신’류에 속하는 ‘Innovation(4건)’ ‘혁신(2건)’ ‘Creative(3건)’ 등도 많았다. 하지만 영어 슬로건을 내세운 기업들은 대부분 40여 개 단어 안팎에서 조합, 차별화를 보이진 못했다. 기술력이나 서비스, 제품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슬로건이 많았다는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예를 들어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포스코)’ ‘대한민국 1등을 넘어(국민은행)’ ‘Technology, You can see!(LG필립스LCD)’ ‘Excellence in Flight(대한항공)’ ‘건설 명가(현대건설)’ ‘Technology Driven Company(삼성SDI)’ ‘지구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두산중공업)’ ‘금융을 바꾸다(현대캐피탈)’ 등은 슬로건 자체에 기업의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예다. ‘고객과 함께’ ‘고객 행복’ ‘고객 감동’ 등을 담은 슬로건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고객 행복 OK! SK!(SK(주))’ ‘Always with you(롯데쇼핑)’ ‘나(I)를 맨 앞에 놓는 은행(중소기업은행)’ ‘Always by Your Side(효성)’ 등이다. 고객과 동반자,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슬로건도 눈에 띈다. 삼성전자의 오랜 마케팅 슬로건인 ‘또 하나의 가족’을 비롯해 ‘a Partner for Life(삼성생명보험)’ ‘성공의 동반자(한진해운)’ 등이다. 아예 기업과 고객의 삶을 ‘하나’로 묶는 슬로건도 있다. ‘My Life, My Pride(삼성카드)’ ‘Life’s Good (LG전자)’ ‘Life is Wonderful(KT)’이 좋은 예다. ‘글로벌’ ‘혁신’ ‘가치’ ‘미래’ 등 최근 기업의 주요 화두를 슬로건에 녹인 사례도 많다. 삼성물산의 ‘Global DNA’, STX팬오션의 ‘World Best STX’, 위아의 ‘World Industries ACE’ 등은 세계화에 초점을 맞춘 슬로건이다. 이와 함께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나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기업은 GM대우, 현대제철,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LS전선, 제일모직, 현대산업개발 등이다. 기업 브랜딩 전문가들은 기업 슬로건을 ‘자본주의의 시(詩)’라고까지 표현한다. 기업의 비즈니스와 문화, 이념, 비전이 응축되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기업의 목표이자 비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슬로건을 위한 슬로건’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 문화나 역사성, 목표를 명확히 담기보다는 좋은 말만 같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슬로건을 정할 때는 맹목적으로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50년, 100년 후를 내다보는 은은한 향기를 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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