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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기 넣어야 미꾸라지 강해져

메기 넣어야 미꾸라지 강해져

LG전자 서울 가산동 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MC) 연구소. 이곳에서는 석·박사 출신의 외국인 연구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도나 유럽, 러시아 출신 연구원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들 지역에 수출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초콜릿폰은 유럽에서만 370만 대가 팔렸다. LG는 현재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 3000만 대 규모의 러시아 휴대전화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메뉴 하나를 만드는 데도 현지화가 중요해 언어나 문화를 잘 이해하는 연구원이 꼭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해외 우수인력과 교류는 기술력 발달에 큰 기여를 한다”는 게 LG전자 측의 설명이다. 때문에 올해만 200여 명의 첨단 연구개발 분야 석·박사 등 해외 우수인재를 채용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HR 시스템을 하나로 통합하고, 아파트를 공짜로 제공해 생활에 지장 없도록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한 명의 글로벌 인재가 1300명에 달하는 마케팅 인력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의 이른바 ‘메기론’은 해외 인재 영입으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해외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중을 담고 있다. ‘메기론’은 미꾸라지를 키울 때 메기를 넣어두면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미꾸라지들이 더 강해진다는 이론이다. 메기론은 1993년 이미 이건희 삼성 회장을 시작으로 제조업 분야에서는 널리 퍼져 각 기업들은 해외인재 영입에 힘써 왔다. 그러나 금융업은 제조업에 비해 해외인재 채용이 더딘 실정이다. 자본시장통합법에 대비하고,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외국인 인재 채용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국내 어느 지점에 가봐도 해외인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금융업 R&D에 해외인재 필수
문제는 자본시장통합법 가동 이후에는 각 금융기관의 상품기획 및 개발능력이 중요한데, 이 분야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이른바 금융업의 R&D 파트가 지금은 공란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해결책은 인재를 양성하거나 데려오는 것인데, 인재 양성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당장은 국내 인재보다 아무래도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해외인재가 비교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금융기법을 활용해 은행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사업을 다각화해 안정적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전담인력을 신속히 보충해야 한다. 해외 우수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삼성증권에서 골드먼삭스, 씨티뱅크, HSBC, 도이치증권 등에서 근무했던 IB, 채권전문가, 상품개발 및 애널리스트를 영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다수 국내 금융사가 해외인재 채용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1차적인 원인은 역시 급여 문제다. 국민은행 인사담당자는 “해외 금융 인재를 데려오려면 수억원의 연봉을 줘야 한다. 그것도 연봉제가 확립됐을 때 얘기다. 연봉제 전환은 노조와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삼성증권 인사담당자의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해외인재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춰주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보상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외국기업의 특징은 기본급은 높지 않은 대신 보너스나 인센티브를 많이 준다. 기본급의 2~3배까지도 거뜬히 준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해외인재의 이전 연봉 수준에 맞춰주려면 기본급을 많이 올려줘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 해도 당장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등 어려움도 있을 텐데 기본급부터 올려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기존 직장만큼 대우해 주지 않으면 데려올 수도 없으니 쉽지 않은 문제다.” 높은 연봉을 준비하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완전 성과보수 제도의 도입으로 보인다. 자칫 불명확한 기준으로 해외인재라 해서 수억원씩 떼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은행 인사담당자는 “해외에서 인력을 데려와도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 투자금융부도 있고 파생상품 영업부도 있긴 한데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인력 커버 자체가 제대로 안 된다. 그나마 성과 측정이 비교적 쉬운 M&A부서면 모를까. 외국에 비해 그 기준도 명쾌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재 유치 위한 환경 만들어야
그러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기업문화의 차이다. 우리투자증권 인사담당자는 “해외인재는 국내 금융기관의 계급·직급 체계가 강할 것이라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다”고 말했다. 한 증권회사 직원은 “회의 시간에 앉는 자리부터 직급에 따라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외국인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환경의 차이도 외국인 채용을 어렵게 하는 한 측면이다. 한국투자증권 인사담당자는 “생활환경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생활근거지를 바꿔야 하는 기본적인 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6년 Invest Korea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기업 생활환경 만족도는 2004년 27.4%에서 2006년 37.4%로 좋아졌지만 아직 낮은 편이다. 10월 21일 한국을 방문한 존 스튜터드 런던 금융 클러스터 ‘the city’의 시장은 “런던은 뉴욕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금융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풍부한 인재풀이 있기 때문이다. 인재유치를 위해 런던시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부 금융허브 기획과의 주홍민 행정사무관은 “이런 인프라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해외인재를 채용하기 힘들다면 협력관계를 맺어 해외의 선진 금융기술을 들여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은행과 매쿼리는 2003년부터 협력관계를 맺어 왔다. 우리은행은 매쿼리은행으로부터 주식파생금융상품 매매거래시스템과 리스크 관리시스템을 이전받고, 상품개발과 판매 관련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당시 이에 참여했던 러스 그레고리 매쿼리 주식시장 그룹 대표는 “협력 결과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서 우리은행이 선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이미 해외에서는 일반화돼 있던 시장”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인재론


될성부른 사람엔 백지수표도 ‘OK’
외국인 금융 인재 채용에 가장 적극적인 국내 금융기관을 뽑자면 바로 미래에셋이다. 2003년부터 해외진출에 사활을 걸었던 박현주 회장은 “해외는 외국인 전문가로 잡는다”는 전략 아래 외국인 금융 인재들을 직접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해외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백지수표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2006년 말 미래에셋홍콩자산운용 리서치본부장으로 취임한 제임스 로버트 호럭스, 올해 6월 아시아·태평양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선임된 윌프레드 시트, 1998~2002년 중국 최고 펀드매니저로 선정된 리총 등이다. 이들은 각각 슈로더운용, 인베스코 등 선진 운용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이렇게 늘어난 미래에셋의 해외 운용인력은 올해 들어서만 25명. 웬만한 소형 운용사들이 5~6명의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로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용사를 5개 정도 더 차릴 수 있는 인력이다. 박 회장의 외국인 금융 인재 채용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들 외국인 금융 인재들은 미래에셋 해외 자산운용사들의 현지화는 물론, 미래에셋의 글로벌 브랜드 구축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운용사 해외진출 1호인 미래에셋홍콩자산운용은 설립 3년여 만에 중견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운용자산 규모는 14조3000억원, 운용 중인 펀드는 35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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