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경색이 대선 좌우한다
신용경색이 대선 좌우한다
‘신용경색’이 일어났다는 호들갑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아직은 아니다. 신용경색은 원래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법이다. 대형 은행과 투자기관들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과 그와 관련된 증권에서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고 최고경영자들이 물러났다. 그러나 대출이 거의 중단된 주택부문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개인 소비자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번 사태가 3막극의 서막이냐 아니면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느냐는 점이다. 서막이라면 신용경색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차기 대통령의 당락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옛말마따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제 사정에 따라 투표를 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불행한 일이다. 양당 정치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로 미미한 편인데도 경제 실상에 따라 너무 많이 칭찬을 받거나 욕을 얻어먹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안에 표를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란 늘 합리적이거나 공평하지는 않다. 경기둔화는 이미 이라크 사태와 함께 대선까지 공화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듯하다. 신용경색이 더 심해지면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저명한 컨설팅 회사 글로벌 인사이트의 최신 경제예측을 살펴보자. 아직 경기후퇴를 예고하지는 않지만 2008년 선거철 중 상당 기간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 다음은 그 요지. ■ 주택 경기침체 계속. 주택 착공이 2005년의 210만 건에서 100만 건으로 감소한다. 2009년 초에는 주택가격이 최고점 대비 11% 하락한다. 22만 달러의 평균적인 주택의 경우 2만4000달러의 손실을 입는다. ■ 승용차와 경트럭 판매대수가 1570만 대로 줄어든다. 1998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2005년만 해도 1690만 대였다. ■ 실업률은 2007년 4.6%에서 평균 5%로 상승한다. ■ 세전 기업수익은 2001년 이후 처음 감소세로 돌아서 2.1% 줄어든다. 솔직히 말해 이 예측대로 된다면 재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경기둔화 예측이 경기후퇴로 발전할 가능성도 35%라고 글로벌 인사이트는 판단한다. 두 가지 위협이 대두된다. 하나는 석유다. 전망에서는 유가가 현재의 배럴당 90달러 선에서 2008년에는 76달러로 떨어진다고 전제한다. 그보다 10달러 높아질 때마다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19센트 오르고 1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고 추정된다. 두 번째 위협은 신용경색 심화다. 우리가 말하는 ‘경색’은 과거 신용 주기의 새로운 명칭일 뿐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차입자와 대출자가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사람들은 빚을 더 많이 얻어도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대출자들은 신용기준을 완화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과정이 반전된다. 과중한 부채 상환 부담이 차입자들을 짓누른다. 대출자들이 대출조건을 강화해 채무불이행이 늘어난다. 최근의 부동산 호황과 불황은 이런 각본에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다른 부문에서는 신용경색의 영향이 크지 않다. 기타 소비자 부채(신용카드, 자동차 융자, 개인 융자)는 연율 약 5%씩 증가한다고 이코노믹 어낼리시스의 수전 스턴은 말했다. 회사채 발행이 감소했지만 주로 합병, 인수, 사모인수의 감소만 초래한 듯하다. 이들은 자금을 조달할 때 채권에 크게 의존했다. 새로운 기계설비, 소프트웨어, 건물에 대한 기업 투자에는 지금까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하다. 대출 시장이 붕괴되지 않은 이유 한 가지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손실이 수십억 달러대로 크지만 금융체제의 전체 자본에는 아직도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점이다. 글로벌 인사이트 브라이언 베튠 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인 투자자들의 손실액은 지금까지 500억 달러. 반면 미국 은행들의 주주 지분만 해도 1조 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이번 경색은 1980년 이후 서서히 체계를 잡아온 새로운 금융체제로서는 최초의 대형 위기다. 과거에는 은행이 융자를 하고 관리도 했지만 지금은 갈수록 ‘증권화된다’. 쉽게 말해 채권 같은 금융상품 속에 포함돼 다른 투자자(연금기금, 뮤추얼 펀드, 보험회사, 헤지 펀드, 기타 은행)에게 재판매된다. 그에 따라 두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첫째, 은행을 비롯한 기타 ‘최초 대출기관’들이 융자를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그리고 증권화를 통해 소득을 얻기 때문에) 부주의하고 탐욕스러워졌다. 신용기준을 완화해 부실한 차입자들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내주고 기존 주택담보대출 외에 추가 대출을 받도록 무분별한 영업을 했다. 이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이 급증해 2005년 이후 약 75% 늘어났다. 둘째, 주택담보대출이 포함된 증권 중 일부는 너무 복잡해 이를 사고파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거래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이 증권의 가격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유가증권의 대손상각이 과대평가돼 주택담보대출 채무불이행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걱정거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막대한 규모의 자동차 융자, 신용카드 부채,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기계설비 장기임대도 증권화됐다.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증권화 모델의 신뢰가 흔들리고 투자자 손실이 증폭되면서 신용경색 우려가 현실로 바뀌게 될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배제해서도 안 된다. 이 모두가 정치로 귀결된다. 글로벌 인사이트가 보유한 많은 컴퓨터 모델 중 하나는 투표 행태를 경제 실적과 연결시킨다. 이 모델은 지난 15회의 대선 중 13번이나 당선자를 알아맞혔다(1968년과 1976년에 틀렸다). 현재 이라크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가 백중세다. 신용경색이 더 깊어지면 민주당이 유리해진다. 모든 후보가 소속 정당의 지명을 받으려 안간힘을 다할 동안 실상 미국의 금융시장이 조용히 최후의 승자를 저울질할지 모른다니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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