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리포트 받기 ‘하늘의 별 따기’
주식시장에서 펀드 등 기관투자가의 입김이 세지면서 중소형 상장회사들이 애널리스트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기관투자가의 입맛에 맞는 대형 상장회사 중심의 리포트 생산에만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이 심화할 경우 국내 증시는 물론 국가경쟁력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증권업계가 애널리스트 1000명 시대를 맞이했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회사에 종사하는 애널리스트는 지난 7월 말 1000명을 돌파한 데 이어 11월 28일 현재 1049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가 호황을 누리면서 애널리스트 숫자는 2005년 말에 비해 270명이나 증가했다. 게다가 증권사 간 인재 유치 경쟁으로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억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속출하고 있다. 가히 애널리스트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증시 호황으로 애널리스트 숫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회사 수는 1698개. 이 중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투자 리포트를 내놓는 곳은 몇 개나 될까? 이코노미스트가 증권정보 제공업체인 에프엔가이드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애널리스트의 연간 투자 리포트가 발표된 상장회사는 전체 27%인 461개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상장회사는 대부분 시가총액 1000억원을 넘는 회사였다. 2005년에는 420개사였다. 또 올해 한 번 이상 애널리스트 투자 리포트가 발표된 상장회사는 692개사에 그쳤다. 나머지 1006개 상장회사는 단 한 번도 투자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 현재 활동 중인 애널리스트 숫자를 감안하면 한 해 동안 1인당 1개 기업도 채 담당하지 않은 셈이 된다. 물론 애널리스트라고 해서 모두 투자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투자 리포트는 매우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기관투자가 입맛에 맞는 것만 이 같은 현상은 왜 벌어질까. 전문가들은 펀드 등 기관투자가의 주식투자 비중 증가를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이 증시 ‘큰손’인 기관투자가의 입맛에 맞는 상장회사들만 취급하면서 중소형 상장회사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실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개인들을 위한 투자 리포트를 내놓지 않은 지 오래됐다”며 “기관투자가, 특히 펀드의 주식투자 비중이 커지면서 대부분의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를 위한 투자 리포트를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저금리,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펀드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기관투자가가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주식시장 시가총액 비중은 2004년 17%에서 2005년 18.56%, 2006년 20.8%, 2007년 22%(10월 말 기준)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2004년 20.8%에서 2005년 22.59%까지 늘었지만 2006년 21.98%, 2007년 21%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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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기관투자가는 주가 변동성이 큰 중소형 종목보다는 규모(시가총액)가 있고, 주가도 꾸준한 대형주들을 선호한다. 자산운용과 포트폴리오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펀드가 대형화하면서 이 같은 대형주 선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강영선 알리안츠자산운용 부장은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중소형주를 여럿 보유하면 자산운용이나 관리가 힘들고 투자효과도 떨어진다”며 “펀드가 대형화될수록 대형주 투자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애널리스트의 위험 회피 현상도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에 한몫하고 있다. 자칫 주가 등락이 심한 중소형 종목에 대한 투자 리포트를 냈다가 낭패를 볼까 두려워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통상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기업 분석 대상 기준이 시가총액 1000억원 이상인 것도 이 때문이다. 28일 현재 시가총액이 1000억원을 넘는 상장회사는 전체 33% 수준인 564개사에 불과하다. 대형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2000년 IT버블 이후 시가총액 1000억원 미만의 중소형 종목에 대한 기업분석은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회사 차원에서 금지하고 있다”며 “대다수가 중소형 종목인 코스닥 시장 담당 애널리스트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전했다.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중소형 상장회사들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투자자 외면-주가 저평가-자금조달 애로-설비투자 부진-성장 둔화-주가 하락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증시는 급등했지만 대형주와 중소형주 간 주가 차별화는 오히려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 1000억원 미만인 종목이 대부분인 코스닥 시장의 경우 대형주(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는 올해 주가상승률이 55%가 넘었지만, 중형주는 29.77%, 소형주는 3.9% 오르는데 그쳤다. 김종선 코스닥상장협의회 부장은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으로 대형주에만 관심과 돈이 집중되면서 주가 차별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주가가 저평가되면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소형 상장회사들은 증자 등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형 상장사 자금조달 애먹어 주가가 낮으면 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시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중소형 상장회사들은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에 주력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0월 한 달간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공시한 중소형 상장회사만 50여 개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중소형 상장회사들을 중심으로 작전이나 테마가 판을 치는 것도 이 같은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투자판단을 위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닥발전위원회 고위관계자는 “전문적인 투자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기관투자가들은 물론 개인들마저 점점 코스닥 시장을 외면하고 있다”며 “코스닥 시장의 주가 변동성이 크고, 작전이나 테마에 흔들리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장회사 간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공개(IPO)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IPO를 통해 기업을 상장하는 데만 관심이 있지 상장 이후 사후관리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올해만 69개사가 신규 상장됐지만 주간사인 증권사가 상장 이후 해당 기업의 투자 리포트를 내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IPO제도 개선을 통해 상장 이후 주간사인 증권사가 해당기업에 대한 최소 1~2년 이상의 정기적인 투자 리포트를 생산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종선 부장은 “올 하반기에 상장한 기업은 대다수가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진 상태”라며 “주간사인 증권사가 상장회사에 대한 정확한 투자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중소형 상장회사에 대한 투자 리포트 생산을 위해 증권사가 리서치 부문 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산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는 “펀드가 대형화되면서 대형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펀드산업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라도 애널리스트들이 알짜 중소형 종목들을 많이 발굴할 수 있도록 증권사에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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