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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기술] 새 무기로 거대한 적 기습공격

[역전의 기술] 새 무기로 거대한 적 기습공격

▶미국 홈디포 매장에서 고객들이 LG전자 스팀트롬을 살펴보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드럼세탁기는 LG전자의 트롬(TROMM)이다. 트롬은 미국 시장 진출 4년 만인 올해 1분기부터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1위를 지키고 있다. 점유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1분기 21%였던 점유율은 2분기 23%, 3분기엔 25%로 껑충 뛰었다. 판매량 기준 점유율도 20%까지 올라갔다. 드럼세탁기는 현재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36%까지 비중이 높아졌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용량인 데다 사용하기도 편하고, 에너지 효율도 높다는 장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드럼세탁기가 주도하는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LG전자는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져가고 있다. 트롬은 100년 가까이 미국 시장에 군림해 온 거대 가전 메이커 월풀(Whirlpool)을 제치고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월풀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가전 톱 브랜드다. 트롬은 어떻게 월풀을 이길 수 있었을까. 2003년 트롬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미국 세탁기 시장은 900만 대 수준이었다. 대부분 봉세탁기(톱 로드)였고, 드럼세탁기(프런트 로드)는 고작 60만 대 정도였다. 누구도 봉세탁기 시장이 대세인 이곳에 드럼세탁기를 들고 뛰어들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LG전자는 예상을 깼다. 이미 공급 포화상태에 이른 봉세탁기 시장이 아니라 드럼세탁기 시장을 개척해 승부를 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다. 봉세탁기로는 월풀 같은 터줏대감들을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럼세탁기, 그것도 프리미엄 제품으로 적게 팔아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시장 공략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륙은 했지만, 처음엔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 월풀을 비롯한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탁기 시장에서 ‘LG’ 브랜드는 존재감조차 없었다. 게다가 미국 시장에서 기존 가전업체들이 오랫동안 구축해 놓은 유통업체들과의 단단한 관계를 뚫고 들어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보이지 않는 고객 불만 찾아라
그렇다고 세계 최대 가전시장인 미국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LG전자는 미국 소비자가 정말로 봉세탁기에 만족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LG전자 영업사원들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됐다. 미국 소비자들이 세탁기를 구매하기까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려 동분서주했다. 심지어 친분이 있는 미국인 가정에 머물며 그들의 일상을 하나하나 관찰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찾아낸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소비자들이 청바지 같은 싼 옷을 여러 벌 사서 자주 갈아입고 한꺼번에 세탁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용량이 큰 세탁기를 선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세탁기의 디자인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탁기를 지하실 구석 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 놔두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미국 소비자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세탁기에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LG전자는 보이지 않는 불만에 주목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월풀 같은 세탁기에 만족했다기보다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개념의 세탁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큰 용량을 원하고 있다면 봉세탁기보다는 드럼세탁기를 선호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또 다용도실이나 지하실 구석이 아닌 집 안 거실에 두고 쓰게 한다면 세탁기 디자인의 가치도 알게 될 일이었다. 현지 소비자들이 기존 세탁기에 실증을 내고 있었는데도,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월풀 같은 가전업체들도 고객 불만이 표출되지 않는데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할 이유가 없었다. 트롬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고객을 이해하려는 치밀한 분석은 제품에 어떤 기술과 디자인을 접목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LG전자는 기존 세탁기 시장이 만족시킬 수 없던 것들을 하나 둘 찾아냈다. 현지 고객들이 사용하는 제품이 지니지 못한 품질부터 기능, 디자인, 편리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LG전자는 미국 소비자들의 특성을 반영한 드럼세탁기로 시장의 판도를 봉세탁기에서 드럼세탁기로 바꿔놓았다. 블루, 레드 등 파격적인 컬러를 적용해 세탁기를 지하실이나 다용도실이 아닌 거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집 안 곳곳에서 세탁 진행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원격점검 시스템까지 적용해 미국 주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세일즈맨이 제품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교육한 것도 한몫했다. 이들은 고객이 트롬을 선택했을 때 얻게 되는 이익을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이는 오랜 세월 전통적 세탁기에 익숙해져 있던 보수적인 소비성향을 가진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미국 소비자는 트롬에 반하기 시작했다. 스팀 트롬을 비롯해 세계 최대의 15kg 용량 세탁기, 컬러 트롬 등 고가 제품 판매가 상승세를 이어가며 최고급 세탁기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다.
신제품 개발 속도 더 높여라
제품 경쟁력과 프리미엄 브랜드 마케팅의 시너지 효과를 기반으로 트롬은 2003년 미국 메이저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에 입점한 후 2005년 홈디포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초, 시어즈에까지 들어가면서 북미 3대 메이저 가전 유통라인을 모두 타게 됐다. 트롬을 매장에 진열하지 않고서는 유통업체 매출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어즈는 북미 최대 유통업체로 91년간 월풀과 함께해 온 특수관계로 월풀의 경쟁사들에 대해 높은 진입장벽을 고수해 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어즈 유통망에서 월풀의 세탁기 점유율은 월풀이 공급하는 시어즈 자가브랜드(PB)인 켄모어를 포함해 93.7%에 달했다. 이 높은 장벽도 트롬의 인기에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트롬이 시어즈의 경쟁사인 베스트바이와 홈디포에서 판매 1년 만에 점유율 50%를 넘어서고, 15kg짜리 스팀트롬이 최고가인 1600달러에 판매되며 대표적인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매김하자 하이엔드 유통채널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어즈는 더 이상 월풀의 눈치만 보고 트롬 입점을 미룰 수는 없었다. 세계 세탁기 업계 3위(11.7%)를 달리는 LG전자는 시어즈 진출을 계기로 월풀(23%)과 일렉트로룩스(14.9%)를 동시에 따라잡는다는 전략이다. 파죽지세로 미 대륙을 강타하는 트롬의 공격에 경쟁사들은 당황했다. 말도 안 되는 소송을 걸며 실지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 브랜드는 믿을 수 없다” “트롬이 광고와는 달리 소음과 진동이 심하다”는 악성 루머까지 퍼뜨렸다. LG전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매장에서 트롬의 강점인 저소음 저진동을 부각시키기 위해 가동 중인 세탁기 위에 담배를 세워 놓거나 칵테일 잔을 피라미드로 쌓아 증명해 보였다. 트롬은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JD파워로부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탁기 부문 소비자 만족도 1위 브랜드로 선정됐다. 트롬은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을 앞세운 제품으로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월풀, 메이텍 등 기본 성능에만 충실한 미국 가전제품과 차별화했다. 북미에서 최고가를 유지하면서도 잘 팔리는 비결이다. 미국 바이어들조차 트롬을 ‘세탁기의 BMW’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현재 트롬은 또다시 획기적인 제품으로 북미 소비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고 있다.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 경쟁 브랜드가 따라오기 숨이 가쁠 지경이다. 블루오션의 가장 큰 단점은 시간이 지나면 레드오션으로 변색된다는 사실이다. 미국 시장에서 봉세탁기가 서서히 퇴조하고 드럼세탁기가 주류로 떠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시장이 붉어지면 드럼세탁기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LG전자도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트롬을 벤치마킹 한 후발업체들의 추격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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