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기술] 새 무기로 거대한 적 기습공격
[역전의 기술] 새 무기로 거대한 적 기습공격
▶미국 홈디포 매장에서 고객들이 LG전자 스팀트롬을 살펴보고 있다. |
보이지 않는 고객 불만 찾아라 그렇다고 세계 최대 가전시장인 미국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LG전자는 미국 소비자가 정말로 봉세탁기에 만족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이때부터 LG전자 영업사원들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됐다. 미국 소비자들이 세탁기를 구매하기까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하려 동분서주했다. 심지어 친분이 있는 미국인 가정에 머물며 그들의 일상을 하나하나 관찰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찾아낸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소비자들이 청바지 같은 싼 옷을 여러 벌 사서 자주 갈아입고 한꺼번에 세탁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용량이 큰 세탁기를 선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세탁기의 디자인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탁기를 지하실 구석 같은 보이지 않는 곳에 놔두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미국 소비자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세탁기에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LG전자는 보이지 않는 불만에 주목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월풀 같은 세탁기에 만족했다기보다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개념의 세탁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큰 용량을 원하고 있다면 봉세탁기보다는 드럼세탁기를 선호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또 다용도실이나 지하실 구석이 아닌 집 안 거실에 두고 쓰게 한다면 세탁기 디자인의 가치도 알게 될 일이었다. 현지 소비자들이 기존 세탁기에 실증을 내고 있었는데도,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월풀 같은 가전업체들도 고객 불만이 표출되지 않는데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할 이유가 없었다. 트롬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고객을 이해하려는 치밀한 분석은 제품에 어떤 기술과 디자인을 접목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LG전자는 기존 세탁기 시장이 만족시킬 수 없던 것들을 하나 둘 찾아냈다. 현지 고객들이 사용하는 제품이 지니지 못한 품질부터 기능, 디자인, 편리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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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품 개발 속도 더 높여라 제품 경쟁력과 프리미엄 브랜드 마케팅의 시너지 효과를 기반으로 트롬은 2003년 미국 메이저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에 입점한 후 2005년 홈디포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초, 시어즈에까지 들어가면서 북미 3대 메이저 가전 유통라인을 모두 타게 됐다. 트롬을 매장에 진열하지 않고서는 유통업체 매출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시어즈는 북미 최대 유통업체로 91년간 월풀과 함께해 온 특수관계로 월풀의 경쟁사들에 대해 높은 진입장벽을 고수해 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어즈 유통망에서 월풀의 세탁기 점유율은 월풀이 공급하는 시어즈 자가브랜드(PB)인 켄모어를 포함해 93.7%에 달했다. 이 높은 장벽도 트롬의 인기에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트롬이 시어즈의 경쟁사인 베스트바이와 홈디포에서 판매 1년 만에 점유율 50%를 넘어서고, 15kg짜리 스팀트롬이 최고가인 1600달러에 판매되며 대표적인 프리미엄 제품으로 자리매김하자 하이엔드 유통채널의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어즈는 더 이상 월풀의 눈치만 보고 트롬 입점을 미룰 수는 없었다. 세계 세탁기 업계 3위(11.7%)를 달리는 LG전자는 시어즈 진출을 계기로 월풀(23%)과 일렉트로룩스(14.9%)를 동시에 따라잡는다는 전략이다. 파죽지세로 미 대륙을 강타하는 트롬의 공격에 경쟁사들은 당황했다. 말도 안 되는 소송을 걸며 실지를 회복하려 안간힘을 썼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 브랜드는 믿을 수 없다” “트롬이 광고와는 달리 소음과 진동이 심하다”는 악성 루머까지 퍼뜨렸다. LG전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매장에서 트롬의 강점인 저소음 저진동을 부각시키기 위해 가동 중인 세탁기 위에 담배를 세워 놓거나 칵테일 잔을 피라미드로 쌓아 증명해 보였다. 트롬은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JD파워로부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탁기 부문 소비자 만족도 1위 브랜드로 선정됐다. 트롬은 혁신적인 기술과 디자인을 앞세운 제품으로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월풀, 메이텍 등 기본 성능에만 충실한 미국 가전제품과 차별화했다. 북미에서 최고가를 유지하면서도 잘 팔리는 비결이다. 미국 바이어들조차 트롬을 ‘세탁기의 BMW’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현재 트롬은 또다시 획기적인 제품으로 북미 소비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고 있다.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 경쟁 브랜드가 따라오기 숨이 가쁠 지경이다. 블루오션의 가장 큰 단점은 시간이 지나면 레드오션으로 변색된다는 사실이다. 미국 시장에서 봉세탁기가 서서히 퇴조하고 드럼세탁기가 주류로 떠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시장이 붉어지면 드럼세탁기로 블루오션을 개척한 LG전자도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트롬을 벤치마킹 한 후발업체들의 추격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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