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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올해의 CEO] “한발 앞선 준비로 호황 누려”

[2007 올해의 CEO] “한발 앞선 준비로 호황 누려”

미래 예측은 직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회장은 해운업 호황을 남보다 먼저 정확히 짚고 착실히 준비했다. 그 결과 그가 “올해 특별히 고민거리가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실적과 주가가 눈부시게 좋아졌다.
“주가가 너무 올라 부담입니다.” 11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대한해운 집무실에서 만난 대한해운의 이진방 회장은 “사업이나 주가나 산이 깊으면 골도 깊은데 조심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한해운의 주가는 올 들어 무섭게 올랐다. 1월 2일 4만7,550원(종가 기준)이었던 이 회사 주가는 11월 16일 22만4,000원으로 뛰었다. 지분 4.94%를 가진 이 회장의 주식 평가액도 덩달아 늘었다. 상장사 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지분 가치를 분석한 ‘재벌닷컴’에 따르면 이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1월 2일 62억원에서 10월 2일 1,354억원으로 2,066%나 늘어나 증가율로 따지면 조사 대상 가운데 1위였다. 그렇다고 이 회사 주가가 아무 이유 없이 오른 건 아니다. 이 회장이 “올해 특별히 고민거리가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눈부신 실적이 뒷받침 됐다. 이 회사의 3분기 누적 실적은 매출액 1조3,659억원, 당기순이익 3,16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6%와 433%가 늘었다. 이 기간의 영업이익도 2,20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34억원)보다 대폭 늘었다. 특히 대한해운은 지난해 내놓은 미래 비전에서 2010년에 매출액 2조원,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올 3분기까지 실적만으로 3년 뒤 영업이익 목표를 이뤘다. 대한해운이 벌이는 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포스코·한국가스공사 등과 장기 운송 계약을 맺은 전용선, 곡물·원당·시멘트 등을 실어 나르는 건화물, 석유 등을 옮기는 유조선(탱크) 사업이다. 이 회사의 매출액과 이익이 급증한 이유는 중국 경제의 활황으로 해상 운송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주에서 실어오던 화물을 브라질에서 나르는 등 원거리 수송도 많아졌다. 사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모든 회사의 실적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기회도 준비된 자가 잡는 법 아닌가. 이 회장은 “1990년대 중반에 LNG선 사업에 뛰어들었고, 2002년부터 건화물 사업에 필요한 배를 많이 확보한 전략이 먹혀 들었다”고 말했다. “아시아 선주 포럼이나 세계 선주 상호보험조약 이사회 등에서 해운업 동향을 파악합니다. 최종 결정 땐 직관이 중요하죠. 대개 필(feel)이 옵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 독불장군처럼 결정하진 않습니다. 투자 문제까지 영업부서와 기획팀에 많이 맡겨 둬 미주알 고주알 간섭하진 않아요.” 대한해운은 68년 창립 이래 안정적인 전용선 사업에 치중해왔다. 삼성물산·삼성코닝에서 일하던 이 회장이 부친의 권유로 92년에 대한해운에 들어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그는 부정기선을 조금씩 늘렸다. 그러던 96년 사단이 생겼다. 그가 선박 기름값 등을 결제하기 위해 이자가 싼 달러로 돈을 빌렸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97년 외환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리금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이 회장은 자식 같은 선박 네 척과 분당신도시에 사옥을 지으려던 땅을 팔았다. 인력도 얼마간 정리했다. 그런 덕에 겨우 위기를 넘겼다. 이 회장은 “지금껏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 후 이 회장은 보수적인 경영을 했다. 해운 경기도 좋지 않았다. 회사는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좀처럼 성장 계기를 잡지 못했다. 그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02년부터 건화물 사업에 필요한 부정기선을 다시 늘렸다. 해운 경기가 바닥을 다졌다는 판단에 따라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베팅했다. 다행히 2003년부터 중국 수요가 늘면서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시황 사이클을 절묘하게 잘 탄 셈이다. 예컨대 대한해운은 해상 운송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미리 배를 많이 빌려놨다. 이와 달리 STX 측은 배가 아닌 곡물·원당·시멘트 등 화물 계약에 치중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대한해운의 판단이 옳았다. STX 측은 지난해부터야 배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미 배를 빌리는 비용이 크게 불어난 뒤였다. 이에 따라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STX 측이 2.5배 정도 많았지만, STX 측의 영업이익(2,900억원)은 대한해운과 700억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대한해운은 지금도 계속 배를 잡고 있다. 2008년 70%, 2009년 40%의 물량을 확보해놨다(헤지를 해놨지만 배 수요가 줄어들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대한해운의 예측대로 호황이 이어질까? 이 회장은 “2010년까지는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적인 철강회사들이 제철소 설비를 증설하고 있고 중국과 인도가 화력 발전소를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물동량이 늘어나 2010~2012년까지는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이런 호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올 상반기에 벌크선 10척, 유조선 1척 등의 구매에 6,3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유조선은 중고선이어서 지난 6월에 들어왔다. 벌크선은 2009~2010년에 인수한다. 그는 또 건화물 사업 비중이 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올해 유조선 사업도 시작했다. 다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주력인 콘테이너선 사업에 뛰어들 계획은 없다.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말 합니다. 잘나갈 때 자만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해야죠. 지금은 해운 시황이 꺾일 때도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거리를 찾는 게 최대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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