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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뚱뚱한 당신 살 좀 빼자

너무 뚱뚱한 당신 살 좀 빼자

지난 2일과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삼청동 금융연수원을 오가는 이들은 모두 피곤해 보였다. 인수위 관계자들은 4~5시간만 자며 강행군을 하고 있다. 2일부터 시작된 업무보고로 삼청동을 찾은 공무원들도 녹초가 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삼삼오오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와 땅을 보고 걸어 나가는 이들은 공무원이고, 피곤해 보이지만 여유 있어 보이는 이들은 인수위 사람들로 보면 되요. 나머지는 기자고.” 인수위 관계자의 얘기다. 실제로 2일과 3일 인수위 업무보고를 마친 부처는 대부분 ‘박살’이 났다. 우연의 일치일까? 2일에는 교육부, 3일에는 국정홍보처·총리실·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업무보고를 마쳤다. ‘폐지-축소-재편’ 대상에 오른 부처들이다. 교육부는 인수위 업무보고를 통해 ‘10년간의 관치행정’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자백했다. 사실상 해체 수준이었다. ‘기자실 대못질’의 주역인 국정홍보처는 폐지가 거의 확실시됐다. 이는 이명박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다. 총리실도 뭇매를 맞았다. “제 기능을 못하고 부처 위에 군림해 왔다”는 인수위의 질타를 받았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중복 기능을 없애 대통령의 보좌기능을 수행하고 국무를 조정하는 곳으로 정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기능과 조직 축소 판정이다. 공무원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인사위원회도 ‘독립적으로 존치해야 하는가’에 대해 인수위가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 역시 “금융감독체계가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직이 기로에 선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이 ‘1순위 과제’
정부조직 개편은 인수위의 1순위 과제다. 인수위 구성을 마치고 가진 첫 전체회의(12월 31일)의 핵심 의제가 이것이었다. 결과는 대략 1월 10일께 나올 전망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아예 날짜를 못박았다는 후문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캠프 시절부터 청와대를 포함해 큰 폭의 개편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당선인은 정부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고도 했다. 이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바른정책연구원(BPI)에 참여했던 채희율 경기대 교수도 지난 12월 중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2~3개 팀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구체적으로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측은 대통령 취임 전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은 물론 부처별 직제 개편과 인력 재배치까지 끝낼 예정이다. 기본 방향은 ‘기능 위주의 재편 또는 통폐합’이다. 대부처대국(大部處大局) 체제의 큰 원칙에 따라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뚱뚱한 정부인 현행 ‘2원 18부 4처 18청 9위원회 4실’을 슬림화하겠다는 것이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지난 5년간 비대해진 정부 및 청와대 조직과 방만해진 기능을 조정해 군살을 빼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인수위 ‘정부혁신 및 규제개혁 TF팀’은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이 팀장을 맡고, 전문위원과 실무위원 등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한반도선진화포럼의 ‘1원 10부 2처’ 체계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제출한 ‘14부 3처’안을 포함해 3~4개 안이 검토되고 있다. ‘서울대 안’은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는 그대로 두면서, 재경부의 금융정책 부문을 금감위(금감원 포함)와 통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통일부+외교부’ ‘산업자원부+중소기업청’ ‘농림부+해양수산부’ 등의 부처별 통합 안도 담겨 있다. 반면 ‘선진화재단 안’은 국가전략위원회 신설이 가장 눈에 띈다. 기획예산처에 예산기능만 남겨놓고, 국가 기획 기능은 재경부와 통합한다는 내용이다. 부처 재편은 산자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치고,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 산업기능을 통합하면서 정통부 내 우정국은 민영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참여정부에서 늘려 놓은 공무원 수 때문이다. 조직이야 정부조직법 입법을 통해 추진하면 된다지만, 공무원 수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 감축’이 아닌 ‘동결’로 방향을 잡은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은 정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정부가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공무원도 따라 늘었다. 중앙인사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은 97만3000여 명이다. DJ정부 말보다 8만9000여 명이 늘었다. ‘옥상옥 위원회’로 불리는 정부 소속 위원회는 416개나 된다. 장관급은 DJ정부 때보다 7명 늘어 40명이고,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면서 차관급은 96명이나 된다. 참여정부는 매주 화요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정원을 늘렸다고 해서 ‘화요일의 정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2007년 52주 동안 34주나 공무원 증원안이 처리됐다. 8주 연속 공무원을 늘린 대기록(?)도 세웠다. 법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못질을 해놓은 셈이다. 인수위에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출한 한반도선진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공무원 정원을 25%까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쉽지가 않다. 결국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이 당선인이 공무원 수는 줄이지 않고 기능조정을 통해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겠다고 가이드라인을 말씀했는데 인수위 생각도 마찬가지”라며 공무원을 줄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대대적인 수술은 어렵다는 기류도 흐른다. 부처는 줄이면서 공무원 수를 그대로 두는 것 자체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 수위도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이미 인수위의 논조도 ‘자르지 않을 테니 공무원은 동요하지 말라’는 쪽으로 기운 상태다. 더욱이 큰 무리 없이 공무원을 감축할 수 있는 해법도 꺼내 들기 어렵게 됐다.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공무원 감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강제로 인력을 줄이는 것은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무원 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그래서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 감소분을 충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벽에 부닥치게 됐다. 지난 12월 14일 정부와 공무원노조가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 연장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합의대로라면 현재 57세인 6급 이하 공무원의 정원은 60세로 연장된다. 5급 이상 공무원은 현행대로 60세다.
‘오세훈식 퇴출제도’ 연구해야
결국, 정부 조직은 바뀌겠지만 공무원 수는 그대로인 상태로 이명박 정부는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별 다른 도리도 없다. 국민 통합 차원에서도 과감히 공무원을 줄이겠다는 카드는 출발부터 내놓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세훈식 방법’이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공무원 퇴출제를 놓고 하는 말이다. 이미 지난해 이 제도를 시행한 서울시는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2010년까지 1300명의 인력을 줄인다는 인력감축 계획을 지난해 11월 초 발표했다. 기능이 줄어든 조직의 인력을 감축·재배치하고, 민간 위탁이 효율적인 업무는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의 공약집에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서비스형으로 전환하고 민간이 잘하는 것은 민간에 과감히 이양하겠다”는 내용과 맥락이 같다. 공무원들이 긴장해야 하는 것은 정부조직 개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부처가 확 줄어 고위 보직이 줄면 현재 1400여 명이나 되는 1~3급 고위 공무원 중 상당수는 무보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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