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의 위험한 반미 야망
차베스의 위험한 반미 야망
베네수엘라의 국부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는 약 200년 전 자신의 조국이 자유로운 주권국가라고 선언했다. 더 나아가 남미의 다른 네 나라를 스페인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시켰다. 볼리바르는 파나마해협부터 고원지대 국가인 볼리비아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에 안데스 공화국 연방을 창설하자는 꿈을 제창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의 비전에 고무된 사람이 있었다. 20대 말의 젊은 육군 장교였던 우고 차베스와 몇몇 동료 장교가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에서 열린 볼리바르 서거 기념식장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차베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하늘에 볼리바르의 유령이 떠돈다. 경계심과 불만에 가득 찬 모습으로 … 그가 미완성으로 남겨둔 과제가 지금까지도 미완인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차베스는 그 과제를 완수하려 노력해 왔다. 베네수엘라 작가들인 크리스티나 마르카노와 알베르토 바레라 티스즈카의 비판적인 전기에 따르면, 차베스는 이미 “중남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원수”가 됐다. 그의 정신적 스승은 항상 볼리바르였다. 전성기 시절 볼리바르의 영향력은 베네수엘라의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들에까지 미쳤다. 1819년 그는 베네수엘라를 콜롬비아 · 에콰도르와 합병해 ‘그란(大) 콜롬비아 공화국’을 건설했다. 나중에는 새로 독립한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가원수로도 임명됐다. 베네수엘라가 보다 큰 연방의 일부가 될 경우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리라고 그는 믿었다. 1813년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베네수엘라는 뉴 그라나다[오늘날의 콜롬비아]와 통합할 경우에만 다른 나라들로부터 더욱 합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차베스도 1999년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국가의 명칭을 ‘볼리바르 베네수엘라 공화국’으로 바꿨다. 또 베네수엘라를 중남미의 강대국으로 성장시켜 외세(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려 시도했다. 최근의 정부 문서에 따르면, 차베스의 목표는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를 포함하는 좌익 동맹 세력의 “통합”이다. 아울러 양키의 “지배”로부터 “중미와 멕시코를 이탈시키는 데 목표를 둔 대안적 운동”의 강화다. 그런 목표 달성에 차베스는 반미주의와 석유달러를 활용하고, 이웃나라들의 정치와 경제에 간섭해 왔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해오는 방식과 상당히 비슷하다. 2007년 초부터 8개월 동안 차베스는 중남미 10여 개 나라에 88억 달러 상당의 재정·원조·에너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차베스만의 독특한 방법도 있었다. 중남미 지역에 다양한 국제 기구와 단체를 설립하려 시도한 점이다. 예컨대 24시간 뉴스 채널인 텔레수르는 “문화 제국주의”(차베스가 임명한 텔레수르 방송사 사장의 표현)에 대항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지역개발 은행인 뱅크 오브 더 사우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지역 국가들에 차관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르식 대안’(ALBA)으로 불리는 무역 블록 구상도 있다. 차베스는 중남미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는 미국의 집요한 노력을 무력화하는 데 ALBA가 기여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영웅인 볼리바르처럼 차베스 역시 다른 나라들의 정치에 개입해 왔다. 2006년 니카라과 대통령선거 기간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산다니스타 계열의 니카라과 지자체 단체장 연합과 협정을 맺었다. 베네수엘라산 석유 1000만 배럴을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한다는 내용의 협정이다. 그해 말 실시된 대선에서 니카라과 유권자들은 다니엘 오르테가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줌으로써 차베스의 호의에 보답했다. 차베스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국민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의 국민적 지지도 강화됐다. ]지난해 10월 차베스는 쿠바의 대통령 직무대행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양국의 경제 관계를 더욱 긴밀히 결합시키자고 촉구했다. 차베스는 쿠바 수도 아바나를 방문해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가까운 장래에 완벽한 국가연합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하나 속의 두 나라”라는 표현으로 볼리바르의 비전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볼리바르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하나로 묶으려 노력했지만 절대다수의 중남미인으로부터 진심 어린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고 믿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존 린치가 집필한 그의 전기에 따르면, 볼리바르는 1823년 9월 콜롬비아인 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페루 국민에게 나는 늘 외국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늘 질투와 불신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6년 뒤 그가 에콰도르에서 보낸 속달 공문서에도 불편한 심기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단지 태생적 특성 때문에, 즉 백인이고 베네수엘라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항상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통치하기가 불가능하다.” 차베스의 별 역시 점차 그 빛을 잃어가는 듯하다. 2006년 실시된 멕시코와 페루의 대선에서 펠리페 칼데론과 알란 가르시아는 최대 경쟁자들을 낭비벽이 심한 차베스와 비슷한 인물로 매도함으로써 승리했다. 칼데론과 가르시아는 경쟁자들이 국가를 파산 상태로 몰아갈 우려가 있다고 공격했다. 또 브라질 상원의 야당 의원들은 차베스의 독재 성향을 부각시키며 남미 무역 블록인 메르코수르에 가입하려던 베네수엘라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좀 더 최근인 지난해 8월에는 아르헨티나 당국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공항에서 베네수엘라계 미국인 사업가를 검거했다. 그의 여행가방 속에는 차베스의 측근들이 보냈다고 추정되는 현금 80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선에 출마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지원하려는 선거자금으로 짐작됐다(페르난데스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차베스의 대중적 인기도 분명히 약화돼 간다. 여론조사 기관인 라티노바로메트로가 2006년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18개국 국민 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는 차베스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견줄 만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봤다. 최근 역사에서 부시는 가장 욕을 많이 먹는 대통령에 속한다. 또 지난해 6월 발표된 퓨 글로벌 애티튜드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칠레·브라질·페루·멕시코인들의 압도적 다수는 국제 문제에서 차베스가 “올바른 일”을 한다고 거의 혹은 전혀 믿지 않았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심지어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대중의 신뢰를 거의 얻지 못한다. 그는 널리 알려졌지만 동시에 널리 불신 받는다”고 퓨 여론조사는 결론지었다. 사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각종 지역 기구들을 창설하려 시도하지만 그 진척도는 매우 낮다. 텔레수르 프로젝트에는 극소수 국가만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또 많은 나라가 과연 뱅크 오브 더 사우스가 개발지향적인 금융기관으로 제대로 작동할지에 회의적이다. 오히려 차베스의 외교정책를 지원하는 또 다른 선전도구가 되지 않을까 의심하는 판국이다. 이 은행은 남미 7개국의 공식적인 인가를 받았지만, 페루와 칠레는 콜롬비아처럼 이 은행을 멀리한다. 뱅크 오브 더 사우스의 설립 자본금은 대부분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에서 제공하리라 예상된다. ALBA 무역 블록 형성을 논의하는 6차 정상회담은 지난해 12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연기됐다. 그러나 사전에 참석 계획을 세웠던 국가원수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니카라과의 오르테가 등 두 명뿐이었다. 이들 두 나라는 중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한편 이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3개국인 콜롬비아·페루·파나마는 ALBA 계획을 무시하고, 그 대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차베스가 다른 나라 정치에 개입하는 행동도 이웃나라들의 분노를 샀다. 이 때문에 지역통합을 더욱 촉진하려는 그의 노력도 좌절을 겪는다. 지난주 차베스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 소속 게릴라들에게 납치된 인질 3명을 석방시키는 데 실패해 큰 망신을 당했다. 지나치게 선동적인 그의 언사(그는 많은 세계 지도자를 악마니 파시스트니 하고 비난했다)는 언론의 관심을 끌지만 존경을 받지는 못한다. 워싱턴 소재 정책연구 집단인 인터-아메리칸 다이얼로그의 마이클 시프터는 “최근 차베스는 너무도 많은 사례에서 선을 넘어갔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중남미 지역에서도 곤경에 처했다”면서 “이 지역 국가 중 차베스의 통 큰 지원을 마다할 나라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그의 각종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만약 역사가 어떤 지침이 된다면, 차베스의 곤경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 유권자들은 차베스의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할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로 부결시켰다. ‘해방자’로 불렸던 볼리바르도 종신 대통령제 도입에 관심을 보였었다. 그런 시도는 그가 해방시킨 이웃나라들의 정치 엘리트들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야기했다. 통합된 그란 콜롬비아를 유지하려는 그의 고집은 베네수엘라 정계의 실력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들은 그 연방에서 탈퇴하고, 생애의 말년을 조국에서 보내려던 볼리바르의 귀국을 불허했다. 결국 그는 콜롬비아의 항구도시 산타마르타에서 외로운 망명생활을 하다가 47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사망 직전 옛 전우에게 보낸 편지에는 볼리바르가 평생 터득한 교훈들이 열거됐다. 첫 번째 교훈은 “우리에게 아메리카는 통치하기 불가능한 지역이다”였다. 그 교훈은 차베스에게도 적용될 듯하다. 그가 어떤 계획을 내놓고 어떤 수사를 동원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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