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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동차의 화려한 외출

전기자동차의 화려한 외출

시애틀에서 사는 린다와 마이클 피어스 부부는 환경을 철저히 보호하는 운전을 하려 해도 집 앞의 오르막길이 문제였다. 이들 부부는 오래전부터 환경을 해치지 않고 시내를 오가려고 전기자동차에 눈독을 들여왔다. 하지만 평범한 3.2㎞ 거리의 비탈길 꼭대기에 있는 집까지 거뜬히 오를 만한 차가 필요했다. 두어 달 전까지 그 소형 전기자동차들 가운데 느림보 속도 이상으로 비탈을 오를 만한 차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여러 제조사가 더 강력한 주행 장치를 내놓았다. 덕택에 수십 년 동안 골프 카트와 지게차 등 수동 차량을 움직이던 느리고 약한 원동기를 대체하게 됐다. 이제는 피어스 부부가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 고민이다. 남편은 중국제 4도어형 마일즈가 마음에 들고 아내는 젠(‘배기와 소음 없다’는 뜻)이라는 캐나다제 소형 2인승을 좋아한다. “나는 힘 좋은 차가 좋은데 아내는 젠이 깜찍하다고 생각한다”고 마이클은 말했다. 1990년대 제너럴 모터스(GM)가 플러그인 전기자동차 모델들을 시범 제작(곧바로 폐기)한 후 전기자동차가 이만한 탄력을 받기는 처음이다. 당시에는 배기가스 없는 자동차를 둘러싸고 화제가 만발했다. 이번에는 업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조사들이 “기대치를 조절해 왔다.” 지난 몇 년 사이 무(無) 배기가스 모델 몇 종이 소리 없이 시장에 깔렸다. 자동차업계 음지의 친환경 틈새시장을 이루는 벤처기업들 덕분이었다. 지금까지 매출은 아주 미미하지만(수천 대에 불과) 올해부터 대량생산에 돌입한다. 도시 운전자용의 반(反)고속·반대형차라고 명명된 이 신모델들은 뚫린 고속도로보다 막힌 시내 도로에 적합하다. 도요타의 프리우스 하이브리드 차가 초대형 지프 같아 보일 정도로 연비 효율이 아주 뛰어나다. 이 저속 차량은 분명 멀리 또는 빨리 달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심리적인 장벽에 불과하다고 지지자들은 주장한다. 도시에서는 그렇게 운전할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내연기관들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단거리 주행에서 연비가 가장 떨어지지만 전기자동차는 오히려 유리하다. 실제로 오늘날의 플러그인 방식 전기자동차는 휘발유 자동차들처럼 정지상태에서의 가속이 가능하고 도시 주행 때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편의시설도 대부분 똑같이 갖췄다. 게다가 유지비가 시중에 나온 일반 차량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차는 시내 운전에 필요한 요소들을 갖췄다. 운전하기 쉽고 비용이 적게 든다”고 레바 전기자동차의 체탄 마이니 부회장은 말했다. 레바는 인도 벵갈루루에 소재한 선도적인 전기자동차 제조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타고 갈 만한 차는 아니다.” 그러나 대도시권이나 도쿄, 런던 또는 뭄바이 안에서는 아주 잘 달린다. 유럽에서는 중속 차량으로 알려졌다. 북미에서는 ‘지역 전기자동차’로 분류된다. 원래 1990년대 울타리가 쳐진 장소에서 골프카트 운행을 허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로주행 합법 차량들을 가리키는 항목이다. 이 중 최고 모델은 현재 최고 속도가 시속 64㎞며 1회 충전에 최대 64㎞를 달린다. 휘발유 ℓ당 106㎞에 해당하는 거리다. 최대 약점은 표준 충돌시험을 거치지 않으며 충격 흡수대(트렁크·엔진 등)와 에어백 같은 현대적인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제조사들은 아우토반에 맞게 만들어진 차량과 똑같은 기준을 도시 주행에 적용해서는 안 되며 안전유리와 안전띠를 설치했으니 현재의 속도로만 달리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전기자동차가 금시초문이라면 지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자. “주류 자동차산업은 아니다”고 토론토 소재 젠 모터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이언 클리퍼드는 말한다. “우리가 성공을 측정하는 숫자는 GM과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요즘에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소비자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런 숫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기자동차 제조사들은 2008년부터 선별적인 시범 시장 이외 지역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일례로 레바는 생산 개시 후 4년 동안 약 2500대를 생산했지만 올 중순께 벵갈루루의 새 공장이 들어서면 연간 생산능력이 3만 대로 커진다.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마일즈와 ZAP(‘제로 공기오염’)라는 벤처기업 경쟁사도 서둘러 시설을 늘린다. 제조사마다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방대한 잠재력을 가진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인다. 비용 측면에서 전기자동차는 일단 대량생산에 돌입하면 비용이 크게 준다. 평균 가격이 현재의 1만5000달러 안팎에서 1만 달러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 지도자들은 말한다. 이는 2010년 이후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출시하리라 예상되는 플러그인 방식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차는 고속도로의 속도로 주행하고 한없이 달릴 수 있다. 내연기관을 장착한 플러그인 방식의 전기 하이브리드이기 때문이다. 전기로 움직이지만 전기가 떨어지면 내연기관을 이용해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전지만 달랑 장착한 전기자동차가 아니라 하이브리드형이다. 그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면 “[중속 차량] 시장의 추정 판매대수는 세계적으로 1년에 50만 대 정도”라고 밴쿠버 소재 다이너스티 전기자동차사의 대니 엡 부장은 말했다. 현재 나와 있는 플러그인 방식 전기자동차는 겉만 그럴싸한 골프카트로부터 일반 편의장치를 모두 갖춘 ‘진짜’ 세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자동차 박람회에서 화제를 모으는 환경보호 컨셉트 카(테스틀라라는 시속 320㎞의 수퍼 전기자동차가 대표적)와는 달리 기존 기술을 차량에 적용해 지역 내 단거리 이동에 쓰인다. 이들의 표적 고객은 이미 재래식 차량을 보유하기 때문에 전기자동차의 일반적인 제약에 개의치 않는다. 구매 시 연료비와 배기가스를 고려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애초부터 우리는 저비용의 운전 초보자용 제품으로 환경보호 운전의 비용을 줄이자는 목표를 지향했다”고 런던 소재 고잉그린의 창업자 키스 존슨은 말했다. 이 회사는 배기가스 없는 자동차의 세계 최대 공급업체다. 기술발전도 전기자동차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지난해 AC 모터로 바뀌면서 현재의 플러그인 전기자동차가 언덕을 오를 만큼 강력해졌듯이 에너지 관리와 저장 방식을 개선하면 속도와 주행거리가 향상될 수 있다. 비교적 비용이 비싸지만 리튬-이온 전지를 이용하면 재충전 시간도 3~4시간으로 줄어든다(재래식 납 축전지 팩을 재충전하는 데는 보통 8~9시간 걸린다). 주행거리도 113~160㎞에 이른다. 현재의 중속 차량은 한 번 충전에 160여 ㎞를 주행하고 가끔 고속도로에 나가면 시속 97㎞까지 달릴 수 있는 자동차로 진화한다고 마이니는 전망한다. “모두 실현 가능하고 비용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전기자동차 친화적인 도시로 떠오른 사례에서 보듯 플러그인 방식 자동차의 인기는 공공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런던의 전기자동차 시장은 정부에서 도심의 상습정체 지역에 진입하는 차량에 교통혼잡비를 부과하면서 형성됐다. 하루 16달러를 부과하되 배기가스 제로 차량은 이를 면제해 줬다. 고잉그린은 발 빠르게 레바와 초기 모델 미니카 수입계약을 체결했다. G-위즈라고 불리는 이 차는 현재 런던에서 1만8000달러에 팔리지만 도시 통근자는 교통혼잡비, 세금, 보험료, 연료비에서 1년에 약 3000달러를 절약한다. 이뿐만 아니라 런던의 여러 지구에서 전기자동차에는 무료 또는 할인 주차를 제공하고 통근자가 주간에 이용 가능한 플러그인 자동차 재충전소를 설치했다. 런던은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고잉그린은 인터넷을 통해 런던 주민들에게 자동차를 직접 판매한다. 지금은 판매대수가 많아(1000대 이상)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에나 기대할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할 만큼 커졌다. G-위즈의 성공에 경쟁자들이 몰려들었다. 그중 나이스(‘No 내연기관’의 약자)라는 이름의 신생업체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제작된 통근용 전기자동차 한 종과 플러그인 방식 전기 트럭 두 종을 선보였다. 2010년에는 런던 거리를 달리는 전기자동차가 무려 1만 대에 달하리라는 전망이다. “런던은 민간 투자와 공공정책이 결합돼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고 존슨은 말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정책은 뒤죽박죽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나라마다 법이 다르다. 중국에서는 1999년에 전기자동차와 스쿠터가 거의 없었지만 그 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2007년 15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전기자동차 지지자들은 이 사례를 들어 자동차 시장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주장한다. 2개 전기자동차 메이커가 본사를 둔 캐나다의 경우 브리티시 컬럼비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공공도로에서 전기자동차 운행이 금지된다. 미국에서는 5개 주가 전면 금지하며 나머지도 2개 주(워싱턴과 몬태나) 이외에서는 모두 최고속도를 40㎞로 제한한다. 따라서 울타리 친 지역 외에는 팔기가 어렵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분다. 자동차뿐 아니라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선도적인 캘리포니아주는 15개 전기 자동차 제조사에 2012년까지 1년에 수천 대의 차를 시험 출시하도록 허용하는 시범 프로그램을 곧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 조사는 전기자동차 판매상, 환경운동가, 그리고 샌타모니카와 샌타바버라 같은 지역의 현지 행정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중속차량연구그룹이 실시한다. “우리의 목표는 배기가스 없는 차량의 대규모 실생활 시험을 실시하려는 것”이라고 그룹 조정담당 러셀 시드니는 말했다. “시속 56㎞의 고급형 전기자동차가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한다.” 시애틀 최대의 전기자동차 판매사 MC 일렉트릭의 판매·마케팅 책임자 스티브 마예다는 규제완화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작년 8월 워싱턴주는 그가 주장했던 법안을 승인했다. 플러그인 방식 전기자동차의 법정 최고속도를 시속 56㎞로 높인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 린다와 마이클 피어스 같은 고객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사업이 크게 번창했다. 작년 12월에만 30대가 팔렸다. “크리스마스 특수 덕을 봤다”고 마예다는 말했다. 그는 도시형 전기자동차의 부상이 임박했다고 확신한다. “이제 실현되기 시작했다. 보람을 느낀다.” 말할 필요도 없이 느린 속도로 푸르게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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