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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따먹기 아닌 기술로 승부

인건비 따먹기 아닌 기술로 승부

▶1976년 현대건설이 ‘20세기 최대의 공사’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따냈다(왼쪽). 2000년대 현장 근무자는 주로 기술자, 현장감독 같은 고부가가치 인력이다.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이 두각을 나타낸 계기는 현대건설의 최초 해외공사였던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다. 한국 최초의 해외건설 사업으로 평가되는 이 공사에서 이 대통령은 현장 인부들의 위협에도 금고를 지켜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명박이란 사람은 그저 한 직장인으로 묻혀 있을 수도 있다. 당시 태국 고속도로 공사는 이명박이란 영웅을 만들고 결국 엄청난 적자로 끝을 냈다. 그나마 약속한 기간 내 공사를 마친 덕분에 현대건설은 명성을 얻어 베트남의 캄란만 준설공사, 알래스카 협곡 교량 공사 등 해외공사를 잇따라 수주했다. 또 국내에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그룹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한국의 해외 건설은 세계 건설사에 이름을 올릴 만한 굵직한 공사를 많이 따냈다. 리비아의 대수로,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 싱가포르의 래플스 시티, 말레이시아 페낭 대교,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 등이 한국 건설업체의 손을 거친 것들이다. 이런 공사의 결과물들은 모두 그 나라의 랜드마크가 됐고, 현지인의 생활을 확 바꿔 놓았다. 하지만 한국 건설사가 이런 대형 공사로 큰돈을 번 것은 아니다. 70~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건설사들의 해외건설은 포트폴리오 형성을 위한 실적 쌓기 측면이 강했다. 한 대형 건설사의 전직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해외 건설은 주로 달러벌이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수익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 건설을 통해 기업 실적이 커지면 은행 융자나 국내 세제 혜택 면에서 이점이 있었다. 정부에서도 해외 건설 실적이 많은 기업들에 정부 공사 물량을 우선 배정하는 등 정책상 배려도 해줬다. 이런 이유로 당시 해외 건설은 그 자체로 수익을 내기보다 실적을 바탕으로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당시 한국 건설회사의 일감은 주로 토목이나 건축 등 단순 시공이 많았다. 기술보다는 노동력 중심의 산업 구조였다. 사우디에 나가 있는 열사의 전사들을 위해 연예인이 대거 위문공연도 갔다. 그 당시 외화벌이는 건설사를 통해 생기는 것보다 건설 근로자를 통해 송금되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후 위기를 맞았던 건설사들은 수익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97년 이후 한국 기업의 최대 명제는 바로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김종현 해외건설협회 기획관리실장은 “이제 수익이 안 남는 공사에 무리하게 입찰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마진이 남는 물량을 다루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최근 한국의 해외 공사 수주액 중 플랜트 관련 물량이 70% 이상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토목이나 건축에 비해 기술집약적인 플랜트는 상대적으로 이익이 크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 건설업체는 주력 제품을 플랜트로 업그레이드 했다.
기술 중심으로 가다 보니 수주금액은 열 배 가까이 늘었으나 해외 건설현장의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398억 달러 수주를 기록하면서도 해외근무 건설인력은 5000명 내외에 불과하다. 70년대 말, 80년대 초에는 해외 건설인력이 10만 명을 넘었다. 단순 건축이나 토목 현장에서도 한국인은 기술자나 현장 감독 외엔 찾아볼 수 없다. 해외 건설사업이 고부가가치로 전환된 셈이다. 해외 건설 현장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 중동과 동남아에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아프리카, 남미, 러시아/CIS, 북미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업 방식도 토목·건축은 물론 플랜트, 부동산 개발 등 고부가가치로 전환되고 있다. 이처럼 해외건설은 70년대 이후 제2의 붐을 이루고 있지만 과거와 똑같은 양상이 아니다. 건설도 하기에 따라선 첨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외 건설 국가 경제 기여 알아주길”


인터뷰 강교식 해외건설협회 부회장
해외건설협회는 해외건설 정보를 수집·분석해 해외건설 활동을 지원하는 단체다. 대부분의 협회가 이런 좋은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원은 크지 않다. 하지만 해외건설협회는 인터넷 사이트(www.icak.or.kr)만으로도 설립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이트가 홈페이지 첫 메뉴가 ‘협회소개’인 데 비해 해외건설협회 사이트는 ‘해외건설 DB(Data Base)’가 먼저 눈에 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이 사이트는 해외 건설을 준비하는 기업이나 해외 건설 현황을 알고 싶은 연구자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협회의 강교식 상근부회장을 만나 향후 해외 건설의 전망과 문제점을 들어봤다.  

-지난해 398억 달러를 수주했다. 올해는 전망이 어떤가? “올해 400억 달러는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상반기에 두바이와 쿠웨이트에서 각각 110억 달러, 150억 달러짜리 공사가 나오는데 한국 업체가 최소한 절반씩은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2월까지 이미 99억 달러 수주가 완료됐고, 다른 수주까지 합친다면 상반기 내 200억 달러는 쉽게 넘을 것 같다.”  

-갑자기 왜 이렇게 해외 건설시장이 팽창하나? “우선 고유가 덕분이다. 산유국들도 고유가 때 자기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걸 깨우쳤다. 덕분에 공사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요즘은 10억 달러 이상 프로젝트가 많다. 여기에 한국 업체들도 공격적으로 나가고 있다.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 업체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특히 중동에 강한 것 같다. “70, 80년대 토목공사 때부터 다져온 인맥이 만만치 않다. 중동 쪽은 아무래도 인맥이 중요하다. 여기에 한국 업체들이 기술적으로도 성장했다. 특히 몇몇 대형 업체는 주특기가 있다. 발전설비, 담수설비, 원유 정제설비 등 중동에 필요한 기술을 특화해 이미 명성을 얻었다.”  

-플랜트 수주가 특히 늘었다. “중동이나 산유국들이 원하는 것이 특히 플랜트다. 여기엔 한국의 산업화 경험도 도움이 되고 있다. 발전소, 석유화학 설비 등을 한국에서 충분히 해봤기 때문이다. 플랜트 수주가 늘면서 한국의 기계, 장치 기업들의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산업 연관 효과가 커지고 있다.”  

-70, 80년대 해외 건설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예전엔 우리 노동력으로 이룬 성과다. 지금은 기술로 이룬 성과다. 80년대에 비해 3~5배나 많은 수주를 하지만 인력은 확 줄었다. 10만 명 이상 나갔던 인력이 지금은 5000여 명만 나간다. 주종목이 토목에서 플랜트로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또 국내 업체 간 과당경쟁이 줄었다. 밑지고 공사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수익’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협회 차원에서 정부에 정책적인 건의를 한다면? “지난해 398억 달러의 수주를 매출액으로 계산하면 180억 달러 정도 된다. 국내 수출 산업 규모로 10위권이다. 해외 건설의 국가 경제 기여도를 알아줬으면 한다. 전문인력 개발과 세제상의 혜택이 시급하다. 일례로 80년대 해외 건설근로자의 면세점은 1인당 월 3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월 100만원이다. 고부가가치 인력인 점, 그간의 물가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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