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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막에 마천루를 세우는가

누가 사막에 마천루를 세우는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 한국의 경쟁력. 2005년 2월부터 시작한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버즈 두바이’ 공사가 끝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건설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해외건설 수주가 호황이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아직 규모 면에서는 세계 10위권 수준이지만 해외건설은 1970년대 값싼 노동력을 내세운 단순 하청 시공에서 기술력을 앞세운 고도화된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 최강을 꿈꾸는 한국 건설의 현장을 짚었다.
올들어 지난 2월까지 한국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따낸 공사 금액만 99억 달러다. 43개국에 진출한 97개 업체가 111개 사업을 통해 달성한 것이다. 불과 30년 전 한국 건설업체의 연간 해외 수주액은 82억 달러에 불과했다. 한물간 산업인 건설이 오일 붐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후반의 연간 수주 실적을 불과 두 달 만에 가볍게 넘겼다. 지난해 연간 390억 달러 정도를 수주한 한국의 해외건설 실적이 올해는 500억 달러를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1965년 한국 건설사가 태국에 처음 진출한 이후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을 헤쳐나온 끝에 지금 해외건설이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중동 아랍에미리트의 경제도시 두바이. 작은 혁신도시 곳곳에서 한국 건설사가 눈에 띈다. 현대건설은 제벨알리 컨테이너 부두를 개발해 두바이가 물류 중심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반도, 성원 등 중견 건설사들은 업무 특구 단지인 ‘비즈니스 베이’에 고급 주거시설을 짓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될 ‘버즈 두바이’는 삼성건설이 내년 완공할 계획이다.


숫자로 보는 한국 해외건설 40년사
80
개국 국내 업체가 현재 진출해 있는 국가
335
개사 현재 해외에 진출한 업체 수
800+αm
국내 건설업체가 수주한 최고층 건물인 버즈 두바이 높이(63빌딩 240m, 타워팰리스 267m, 붕괴 전 미국 세계무역센터 417m)
6563
명 현재 해외에 진출한 건설 인력
10,390,000,000
달러 국내 단일 건설업체 최대 수주액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1, 2단계 공사
두바이뿐 아니다. 중동은 아랍에미리트(UAE),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3개국을 중심으로 대형 플랜트 공사가 꾸준하다. 아시아는 싱가포르, 태국, 인도, 베트남 등의 건설 경기가 회복되면서 최근 수주율이 크게 늘었다. SK건설이 싱가포르 주롱섬에 플랜트 공사 중이고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경남기업이 랜드마크 타워를 세우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같은 신흥시장 진출은 최근 일이다. 아프리카는 앙골라,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 중심으로 플랜트, 인프라 시설 발주가 늘었고 러시아,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발달해 많은 건설 물량을 제공하고 있다. 중남미 지역은 워낙 멀어 전체 해외시장에서 점유율은 높지 않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캐나다 등에서 한국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을 벌이며 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경남기업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포스코건설이 남아메리카 엘살바도르에 최초로 진출한 것을 보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한국 건설사들의 ‘무한도전’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해외시장을 노린 결과 지난해 290개 업체가 76개국에서 수주총액 398억 달러를 기록했다. 2003년 37억 달러의 열 배가 넘는 규모다. 해마다 수주총액 신기록을 세우면서 올해는 400억 달러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 건설 전문지인 미국의 ‘ENR’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해외건설시장 점유율은 2.9%로 11위였지만 2~3년 안에 8%를 돌파해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전망이다. 지난해 해외건설 매출액은 200억 달러 정도다. 이를 산업별 수출액과 비교하면 석유제품(211억 달러, 7위), 철강(210억 달러, 8위)에 이어 10대 수출산업에 속하며, 수주총액 398억 달러는 우리나라 지난해 수출액의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해외건설은 조선·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과도 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됐다.

안은 너무 좁다, 밖으로 나가자
1970, 80년대 20만 명이 넘는 건설 역군들이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 정글에서 수로를 파고 건물을 지으며 외화벌이에 나섰다. 80년대 초 해외건설로 우리나라 수출액(219억 달러)의 절반이 넘는 133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전체 경제 성장에 26.4%나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 일꾼들은 등 떠밀리듯 가족과 헤어져야 했다. 세계적 건설강국을 꿈꾸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좌절과 성공을 반복한 역전사가 있는 것이다. 70, 80년대 중동의 오일 붐에 기대어 성장하던 해외건설은 80년대 중후반 유가가 떨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동남아시아로 주무대를 옮겼지만 97년 외환위기가 오자 또다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재무 건전성, 수익성을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중동, 동남아시아에 대형 공사 현장을 두고도 건설사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그때 김대중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부동산 붐을 조성했고, 건설업은 극적으로 회생할 수 있었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억제책에 건설사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위기는 반복됐지만 이번엔 건설사들의 대응이 달랐다. 얼어붙은 국내 건설시장이 녹길 기다리는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안에서 굶어 죽느니 차라리 밖에서 모험을 해보자는 심리였다. 유라시아의 건설강국 터키도 2001년 경제 위기 때 건설업을 세계화한 일이 있다. 병이 오히려 약이 된 셈이다. 2006년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해외시장 진출 이유로 ‘국내시장 축소로 인한 위기감’을 꼽았다. 되는 집안에는 가지나무에도 수박이 열린다. 다행히 해외 사정도 따라줬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중동, CIS(독립국가연합),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산유국의 플랜트·인프라 건설이 늘었고, 주택·전력 등 기반시설 물량도 따라서 쏟아졌다. 석유가 있다는 점을 빼곤 황무지에 가깝던 나라들이 갑자기 거대한 오일 머니를 쥐게 되면서 건설 수요가 늘었다.
지난 4~5년간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으로 부동산 개발이 붐을 이뤄 아시아 지역의 개발사업도 활황을 이어갔고, 이는 우리 건설업체에 일감으로 돌아왔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GlobalInsight’에 따르면 세계 건설시장 규모는 2011년까지 4.6%의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런 외부 요인과 국내 건설업체들의 경험, 노하우가 합쳐져 오히려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여기에 과거와 다른 한국 건설사의 경쟁력도 더해졌다. 70, 80년대 단순 토목, 건축이 주 사업이었다면 90년대 중반부터 플랜트가 수주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분야가 됐다. 2000년 이후부터는 부동산·신도시 개발 등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발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설업체는 해외시장에서 선진국과 비교해 가격은 많이 싸고 기술력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부동산·신도시 개발 노하우는 한국만의 블루오션을 만들 수 있는 경쟁력이다. 분당·일산·동탄 같은 신도시를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속전속결로 수차례 개발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아프리카의 알제리, 중앙아시아의 몽골,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등에서 한국식 도시개발이 유행이 될 정도로 주목 받고 있다. 정보통신(IT) 기술이 발전한 것도 강점이다. 이미 한국 건설사들은 한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IT기술을 적용해본 경험이 있다. 이 노하우를 현지에 적용해 유비쿼터스 도시(U-도시)로 품질의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다. U-도시는 전자산업을 동반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뛰어난 건설과 산업 기술을 함께 묶어 진출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도 강점으로 꼽힌다. 패키지 딜은 개발 업체가 진출한 국가에 철도, 도로, 항만, 공장 등 산업인프라를 건설하고 현지 정부가 현금 대신 자국이 보유한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콩고, 나이지리아 등 자원이 많고 자금은 없는 지역에서 이미 패키지 딜 방식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 고유의 그룹형 경영이 장점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껍데기만 만드는 ‘제조 마인드’ 버려야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이제 해외 건설시장에서 국내업체끼리의 과당경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 프로젝트를 놓고 국내업체끼리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과당경쟁으로 적자공사를 수주, 회사에 큰 부담을 지웠다. 하지만 기업구조가 개선되고, 주주경영이 중시되면서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주처에서 과당경쟁을 유도해도 국내업체가 말려들지 않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물량의 공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익을 못 내면서까지 수주하려는 업체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사의 활발한 해외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외 건설사업은 위험도(risk)가 큰 사업이다. 국내 경험이 많더라도 현지 정치·문화 상황에 따라 실패 가능성이 크고, 실패는 곧 기업의 존폐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해외 건설 경험이 많지 않은 업체들까지 해외에 진출해 위험도는 더 크다. 게다가 미국, 일본 등 건설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이 모자라고 중국, 인도, 터키 등 후발 개도국이 규모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치고 나와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팀장은 “과거와 같은 실패사를 또다시 쓰지 않으려면 해외 건설 경험이 있는 인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은 ‘People Business’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일은 지역·기술 다변화, 기술 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이 되는 작업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기술 수준을 보면 시공기술, 상세 설계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플랜트 사업에 꼭 필요한 EPC(설계·구매·시공)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업체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 공사의 틀을 짜는 기본설계 분야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기획 능력은 선진국 대비 59%, 설계는 63% 수준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제휴와 인수합병(M&A)으로 엔지니어링 등 원천기술을 갖춘 종합관리가 필요하다. 껍데기만 만들고 핵심 부품은 사오는 ‘제조 마인드’로는 70년대의 몸으로 때우는 ‘노가다 건설’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30년 전 밤을 새워 공사를 따내곤 했던 부지런함이 남아 있는지 우리나라 건설사는 공사 기간을 앞당기는 것으로 좋은 평을 받는다. 이런 ‘속도전’과 도시개발 경험으로 인한 창조적 개발 능력은 해외시장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현지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는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시장 다변화도 지속해야 한다. 김 팀장은 “중동에 의존하지 않고 신흥시장을 꾸준히 개발하고, 오일 머니에 따라 수주 물량이 결정되는 중동발 플랜트 외에 우리나라만의 특화된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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