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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없으면 백 년 거래도 단칼에 끝

맛 없으면 백 년 거래도 단칼에 끝

▶잇포도의 매장 안 모습.

교토에는 오래된 차(茶) 가게가 많다. 우선 쓰엔(通圓)이라는 차 가게가 유서 깊다. 서기 1160년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9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다. 또 리큐인(一休園)이 1626년에 개업해 그 뒤를 따르고 있고, 잇포도(一保堂) 차포가 1717년 개업해 세 번째로 오래됐다. 잇포도 차포에 가 보니 우선 2층으로 지어진 목조가옥이 보인다. 전통과 관록이 여실히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 진열되어 있는 차 구경부터 했다. 차를 항아리에 넣어 두고 파는 점이 특이하다. 일본의 차 가게를 다니면서 이런 식으로 차를 파는 가게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실내에는 흰 무명 수건을 머리에 쓰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종업원 4~5명이 근무 중이다. 점장을 찾아 고개를 십여 번 숙이는 인사부터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첫인사가 길다. “잘 부탁합니다”로 시작해 용건을 얘기하면서 또 “잘 부탁합니다”라고 하고, 다시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또 한 번 “잘 부탁합니다”를 해야 한다. 우리 나라와 달리 첫인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상대를 최대한 공경하는 자세로 말문을 열지 않으면 비즈니스에 실패한다. 20년간 일본을 다니면서 얻은 교훈이다. 점장이 용건을 다 듣고 나서 담당자를 불렀다. 잇포도의 홍보를 담당하는 아시카가 분코 홍보팀장이 나왔다. 다시 아시카가에게 용건을 설명하면서 ‘잘 부탁합니다’를 연발한 후 본론을 꺼냈다.
일본의 ‘개성상인’ 오미상인이 창업


‘잇포도 차포(茶鋪)’만의 특징 . □ 50여 개 도매상이 경쟁입찰 □ 우지 산(産) 차 고집 □ 철저한 유기농 재배, 비료는 청어가루 □ 꼭 항아리에 넣어 최고급 질 유지 □ 인간관계 아닌 제품의 질만 보고 거래 □ 차맛 감정사의 까다로운 선별 기준
“300년 된 가게의 실력을 보여주십시오.” 우선 실력부터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시카가 팀장이 잠시 후 차 두 잔을 내왔다. 한 잔은 말차, 한 잔은 녹차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말차를 좋아한다 했더니, 접대 차원에서 말차 한 잔, 그리고 잇포도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녹차 한 잔이다. 말차 한 잔을 마시고 입을 어느 정도 헹군 후 녹차를 조금 마셨다. 그 순간 나는 녹차의 너무나 강력한 향 때문에 그만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다시 한 모금 더 마셨을 때 이번에는 그만 쓰러질 것만 같은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 녹차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그 어느 것에서도 이렇게 깊고 장대한 맛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소주잔만 한 차 한 잔을 간신히 네 번에 나눠 마시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내가 마신 차는 잇포도에서 파는 400종의 차 중 하나며, 차의 이름은 덴카잇치(天下一)로 옥로(玉露)차며, 한 단지 가격은 3만4500엔(32만원)이라는 것이다. 이 가게에서는 녹차를 흔한 종이포장에 담아 파는 것도 있지만 고급차의 경우 모두 작은 항아리에 넣어 판다고 했다. 항아리에 넣어 파는 이유는 항아리가 숨을 쉬기 때문에 습도 조절과 향의 보존에 탁월하기 때문이란다. 차 향은 400종이 모두 다르며 잇포도는 교토 인근에서 생산되는 우지차(宇治)만 전문적으로 판다고 했다. 창업은 1717년. 오미(近江) 출신의 이뵤에(伊兵衛)가 차와 다기를 가지고 교토에 올라와 가게를 열면서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다. 오미상인이라면 일본의 개성상인으로 짜기로 유명하며, 특히 남의 돈을 절대 빌리지 않는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하다. 도요타 자동차도 바로 오미상인의 후손들이 창업한 회사다. 도요타 역시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가게가 자리잡은 데라마치(寺町) 길은 그 유명한 혼노지(本能寺)가 근처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혼노지는 오다 노부나가가 그의 심복인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죽임을 당한 바로 그 절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얼마 안 있어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데라마치 부근에 상가를 조성했는데, 그 이후 잇포도도 문을 열었다고 한다. 가게 문을 처음 열 때의 상호는 고향의 이름을 따서 오미야(近江屋)라 하였으나, 1846년께 천황가의 친척인 야마시나 노미야(山階宮)가 차맛을 보고 극찬하면서 잇포도라는 이름을 하사, 상호가 바뀌게 된다. “천하 제일의 차맛을 지켜라” “차의 근본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이후 잇포도는 차의 명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오늘날까지 교토에서는 유서 깊은 차포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차는 동과 서가 확연히 다르다. 시즈오카가 일본의 동과 서를 나누는 분기점인데, 시즈오카 역시 일본 최고의 명차 산지로 불린다. 현재 일본 내 지역별 단위 생산량, 즉 차를 가장 많이 생산·판매하는 지역은 단연 시즈오카다. 연간 1만t 이상의 차를 생산하는데 일본 내에서 그만한 차를 생산하는 지방은 시즈오카와 규슈의 가고시마 두 곳뿐이다. 그 뒤를 이어 이세차, 야마도차, 우지차, 우레시노차 ,야메(八女)차 등이 유명하다. 이 차들은 생산지가 다른 만큼 차 맛이 다른데, 특히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의 차와 교토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차 맛은 확연히 구분된다. 도쿄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차인 시즈오카 차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마시는 녹차와 유사한 것으로 향이 부드럽고 기품이 있는데 반해, 우지차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차는 향이 깊고 장대한 맛이 특징이다. 그런 만큼 두 지역 사람들의 성격도 확연히 다르다. 도쿄 사람들이 부드럽고, 섬세하며 이지적인데 비해 관서 지역 사람들은 강하고, 선이 굵으며 감정적이다. 덴카잇치 차향이 이렇게 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비법이 있는가 물었다. 아시카가가 말하기를 모든 차가 다 강한 것은 아니지만, 덴카잇치의 경우 상품명 그대로 천하 제일이 되기 위해 제조 단계에서 특수한 비법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우지차를 재배하는 단계에서부터 다르다.

▶1 항아리 차 사진 2 잇포도 매장 3 우지차 밭 풍경


비료에 생선가루 넣는 유기농
덴카잇치의 경우 철저한 유기농과 무농약인데, 비료에 생선가루를 넣는다. 녹차를 생산하는 데 생선가루를 넣는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어서 어떤 생선가루를 넣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절대비밀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녀가 입술이 잠시 움직일 때 입 모양을 보니 ‘니신’이라는 것 같았다. 니신은 청어를 말한다. 과거 일본에서는 채소밭에 북해도 산 청어를 잡아 그 가루를 뿌리는 전통이 있다. 그래야 채소 향이 풍부해지고, 채소 자체의 영양가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녹차의 납품을 직접 차밭 농가에서 받는지 물었다. 그러나 잇포도는 농가와 직접 거래하지 않고 철저하게 도매상에서 납품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도매상이 농가를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우지차를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도매상은 교토 인근에 50여 개가 있는데 그들이 생산한 차를 가지고 오면 그 맛을 보고, 품목별로 얼마를 구입할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300년 된 차포여서 특정 도매상하고만 거래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50여 개의 도매상이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생산을 독려하고 골라온 녹차를 가지고 오면 그중에 가장 뛰어난 맛을 생산한 품목별로 구입한다는 것이었다. 우지차의 경우 우지시 한 곳에서만 녹차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나라현, 시즈오카현, 오미현 등 산악 경계지역에서 생산되는데 산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차이가 있고, 또 재배농가의 솜씨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한 재배농가 혹은 특정 도매상하고만 거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 잇포도에는 5명 전후의 차맛 감정사가 있는데 그들이 잇포도만의 미각기준을 가지고 선별하고 있다. 이것이 잇포도만의 노하우였다. 그들은 지난 300년간 자신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해 온 맛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 맛에 합격해야 납품이 가능하고, 그 맛에 미달될 때는 언제고 도매상을 교체한다. 오직 제품 그 자체가 거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잇포도가 지난 300년간 망하지 않고 성장해 온 비결은 그것이었다. 현재의 사장은 와타나베 고시(渡邊孝史), 종업원은 130명, 연간 매출은 28억 엔(250억원)이다. 잇포도 가게 안에는 이런 현액이 걸려 있다. ‘만고의 소나무 바람소리, 한 봉에 담아 바친다.’ 지난 300년간, 세월의 무게가 담긴 글귀이자 맛의 기준을 결정하는 함축적인 한 줄의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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