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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온돌 세계 시장 ‘노크’

한국의 온돌 세계 시장 ‘노크’

안동대에서 민속학을 가르치는 임재해 교수가 한 강연에서 우리 민족과 온돌에 얽힌 웃지 못할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밀입국하는 조선인들이 많던 시절, 밀항자들과 숨바꼭질을 벌인 일본 경찰이 이들을 색출해내려고 묘안을 생각해냈다. 부둣가에 모닥불을 피워두고 불을 쬐려고 몰려드는 사람들 가운데 조선인들을 손쉽게 골라낸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랫동안 온돌방 생활을 하면서 등과 허리를 따뜻하게 해왔던 조선 사람들은 불을 쬐다가 은연중 불을 등지는 습성을 드러냈다. 이런 습성을 간파한 일본 경찰들이 이들을 조선인 밀항자라고 점 찍어 연행한 것이다. “온돌 문화는 일본에선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난방 양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임 교수는 설명했다. 한국 고유의 주거 문화로 평가 받는 온돌이 세계로부터 주목 받는 주거 아이콘으로 떠오른다.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사계절 국가뿐만 아니라 열사의 나라 중동 국가에서도 한국형 난방문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온돌을 시공한 한국형 아파트와 온돌이 접목된 황토 침대, 온돌 난방에 사용되는 보일러 설비사업이 호황을 누린 덕분이다. 온돌 난방의 강점을 꼽으라면 자연친화적인 난방이란 점을 들 수 있다. 서양 난방은 흔히 대류식 난방이어서 더운 공기가 위쪽으로 몰린다. 위가 따뜻하고 아래는 차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머리가 차고 발은 따뜻해야 혈액순환에 좋다고 본다. 집안에서 신발을 벗고 지내게 돼 청결함도 유지한다. “바닥 난방이 방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에너지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국제온돌학회 김준봉 회장(중국 베이징공업대학 건축과 교수)의 설명이다. 아시아 국가 말고도 서양에서도 한국형 난방 시스템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그는 “친환경 에너지 절감 기술을 강조하는 선진국에서는 온돌 원리를 이용한 바닥 난방 기술의 개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온돌 난방을 사업기회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난다. 해외 진출을 꺼리던 중견 업체들이 해외로 나선 것이다. 건설업계는 최근 몇 년간 해외에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2007년 해외 건설 수주액은 전년도 165억 달러의 두 배가 넘는 398억 달러에 달했다. 한국신용평가 노익호 연구위원은 지난달 발표한 ‘사상 최대 호황기의 해외 건설’보고서에서 올해는 높은 기술력과 운용 노하우가 필요한 1억 달러 이상의 대형 플랜트와 토목 공사 비중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플랜트나 토목 같은 대형 사업부서를 갖추지 못한 국내 중견업체는 잔치판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도 된다. 게다가 공사 대금을 미리 정해 놓은 플랜트, 토목사업과 달리 주택사업은 분양에 실패하면 해당 업체는 직격탄을 맞는다. 동일하이빌과 우림건설 같은 기업들은 여러 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주택 건설에 뛰어들었다. 부진에 빠진 국내 건설시장에 더는 머뭇거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 모두 카자흐스탄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었다가 재미를 봤다. 동일하이빌은 2004년 해외 진출을 앞두고 회사 고위층 간에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첫 사업지로 낙점한 카자흐스탄이 한국 기업들엔 불모지나 다름없는 데다 기술 수준이나 건축 기반 환경이 많이 뒤처졌기 때문이다. 장점이라던 싼 노동력도 생산성이 낮아 결국 한국에서 인력을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이른바 ‘한국형 아파트’로 욕실과 화장실을 전기로 가열하는 온돌을 놓고, 실내도 동양적 인테리어로 마감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일하이빌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 비중이 2006년 17%(438억/2440억)에서 지난해 37%(1745억/4715억)로 늘어났다. 동일하이빌 이준동 홍보실장은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권 주택 사업도 적극 추진하며 베트남 하노이와 일본에서의 리모델링 등으로 해외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림건설도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 3500여 가구의 아파트와 상가를 짓고 있다. 이 회사 역시 홍보 효과를 높이려고 아파트에 온돌식 난방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회사 해외공사지원실 최병준 이사는 “눈에 거슬리는 라디에이터 대신 실내가 깔끔한 온돌을 깔고 한국산 창호지로 바람을 막아 다른 아파트보다 따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우림건설은 올해 전체 매출 예상치 8500억원 중 2000억원가량을 해외사업으로 달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돌 문화를 건축 선진국 영국에 팔고 있는 업체도 있다. 한국의 건축사무소 ‘코다(CoDA)’는 오는 7월 착공 예정인 영국 웨일스 지역 아파트 424가구를 짓는데 온돌 난방을 적용했다. 2006년 9월 웨일스 정부의 주거 시설 신축 사업 1순위 업체로 지정된 뒤 1년간의 토지 매입 과정을 거쳐 지난해 9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사업비 1500억원의 80%는 영국은행에서 빌리고 나머지 20%는 한국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코다의 지호식 대표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온돌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주거 개념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현지업체들도 거실이나 욕실 등 주거공간 일부를 온돌로 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파트 전 세대의 실내 바닥에 온돌을 놓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지 대표는 내친 김에 미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 인근에 주상복합 아파트 1000가구 건설 제안서를 제출했다. 물론 100% 온돌이다. 국내 건설업체나 건축사무소가 미국 시장에 온돌 아파트 건설에 나선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 주택시장이 워낙 불경기라서 성사 여부는 내년 초 판가름 날 예정이다. 귀뚜라미 보일러는 1999년 중국에 진출하면서 한국식 난방법을 홍보하는 온돌 마케팅을 내세웠다. 중국인들이 새로운 난방 방식에 눈을 뜨면서 중국 매출을 1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귀뚜라미는 2012년까지 현재 6400억원 매출을 1조1000억원으로 두 배가량 끌어올리고 같은 기간 해외 매출도 2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와 유럽, 중동 진출도 서두른다. 상반기 중에 회사는 러시아 극동지방의 하바롭스크에 물류법인 설립 문제를 매듭짓는다. 또한 모스크바 인근에 생산기지를 만들어 러시아 전역에 보일러 공급망을 갖춘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유럽 등 선진국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춘 보일러 업체가 수두룩해 시장 개척이 수월치는 않다. 이들 업체는 중국, 러시아의 대부분 지역에 이미 탄탄한 영업망을 갖추고 인지도를 쌓아온 선발주자들이다. 40년 갓 넘은 귀뚜라미가 이들 기업을 대적하기가 버겁다. 한국 고유의 온돌 문화가 아니었다면 해외 진출을 더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온돌 문화가 보급되면서 온돌 기능을 갖춘 국산 침대들도 해외시장에서 관심을 끈다. 황토침대(흙침대)는 한국적인 주거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린 제품으로 국내외에서 인기다. 몸에 이로운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황토를 이용해 온돌침대를 만들어 전기 난방을 채택하는 방식이다. 국내 대표적인 흙침대 제작업체인 흙표흙침대는 지난해 미국, 중국, 일본 등에 50만 달러어치의 침대를 수출했다. 2010년에는 1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할 계획이다. 얼마 전엔 해외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LA에 해외지사도 설립했다. 10년여 동안 기술 개발을 통해 산소 발생 흙침대 등 신제품을 선보이는 등 제품의 완성도를 꾸준히 높여왔다. 비만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는 혈액순환을 돕는 온돌침대를 수출하면서 현지 TV와 신문 광고를 통해 제품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저가 한국 전통미를 한껏 살려 새 모습으로 거듭났다. 특히 각국의 귀빈들이 묶는 4층의 게스트룸은 전주 한지로 단장됐다. 기능성 한지 벽지와 한지 조명등, 한지 가구, 한지 침장류 등으로 내부를 꾸몄다. 게스트룸 단장은 전주시가 주관하고, 예원예술대 한지문화연구소가 실무를 맡았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주시는 지난 1월 미국 LA 한국문화원에서 ‘전주 한지 전시회’를 열어 한지 수출 산업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악취제거, 살균기능에다 원적외선 방출 기능까지 겸한 한지는 차가운 페인트 문화에 젖어 있는 서구인들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준다”고 예원예술대 한지문화연구소장으로 있는 차종순 교수는 말했다. 한지의 사업성을 간파한 미국 뉴저지의 한인 기업인 5, 6명은 한지판매점 개설 의향을 전해왔다고 한다. 한옥을 해외로 수출할 날이 올까? 서울 북촌의 한옥 복원 작업으로 잘 알려진 황두진 건축사는 2, 3년 내 미국에서 한옥 전시전을 여는 게 꿈이다. 나아가 미국인들에게 현대화된 한옥을 지어주고자 한다. 그는 그 가능성을 미국 일각에서 일고 있는 일본식 다실 건축 붐에서 찾았다. 한국 전통 건축의 독자성을 제대로 다듬어낸다면 현지인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그러자면 한옥 아파트와 같은 현대감각에 충실한 한옥이 한국인들로부터 먼저 사랑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먼저 그 가능성을 입증하는 게 숙제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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