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옷 궁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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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사업에 뛰어든 연예인들.(맨위 왼쪽부터 시곗바늘방향으로) 엄정화, 황신혜, 이혜영, 이현우, 이정재, 정우성. |
1995년 한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한 코미디언이 갑자기 “옷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지하철 광고와 신문, 잡지마다 양복 셔츠를 풀어헤친 그의 모습이 도배됐다. 언더팬츠만 입은 후속 광고로 호기심을 자극한 다음 약속대로 나체를 공개했다. 단 어릴 때 찍은 돌 사진이었다. 이 광고는 지금은 사업가로 변신한 주병진이 자신의 속옷 브랜드 ‘보디가드’출시를 알리기 위해 만든 티저 광고였다. CEO의 유명세를 이용한 재기 발랄한 마케팅 덕분에 보디가드는 속옷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그의 회사 는 연간 1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13년 전 스타 연예인의 속옷 사업 진출은 세간의 화젯거리가 됐지만 요즘은 연예인의 패션사업 진출은 일도 아니다. “패션은 대중의 유행을 선도하는 연예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할 수 있는 최적의 사업 분야”라고 연세대 의류과학연구소의 천종숙 교수는 말했다. 연예인과 패션사업은 불가분의 관계에 가깝다는 얘기다. 더욱이 인터넷 쇼핑몰과 홈쇼핑 등 연예인이 소비자에게 제품을 직접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이 늘면서 패션업계 진출이 홍수를 이룬다. 여자 연예인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건 패션 브랜드를 내놓는 게 유행이다. 특히 홈쇼핑 속옷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2004년 홈쇼핑에 속옷 브랜드‘엘리프리’를 출시한 황신혜를 필두로 현영(비바첼리), 변정수(엘라호야 이너웨어), 이혜영(미싱도로시 언더웨어) 등이 줄줄이 속옷 라인을 출시했다. 지난해 엄정화가 선보인‘코너 스윗’은 첫 방송에서 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홈쇼핑 속옷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중견 탤런트 박정수는 40∼50대 여성층을 대상으로 속옷 브랜드 ‘수안애’를 출시하기도 했다. 대부분 나이와 상관없이 아름다운 몸매로 이름난 연예인들이다. “최근 속옷도 패션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섹시함을 드러내는 스타들의 속옷에 소비자들이 열광한다”고 엠코르셋의 장성민 부장은 설명했다(2004년 캐주얼 의류로 출발한 이혜영의 미싱도로시는 지난해 속옷을 출시하면서 속옷 전문업체인 엠코르셋에 인수됐다).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해 전면에 내세우는 브랜드의‘얼굴’이라면, 남자 연예인들은 한발 물러서서 경영에 참여하는 ‘사업가’형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남성 정장 브랜드 ‘다반’의 영화배우 정우성과 이정재다. 이들은 지난해 패션업체 더베이직하우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40%의 지분(약 8억원)을 공동 출자했다. 가수 겸 배우 이현우는‘팻독’이라는 캐주얼 브랜드를 6년째 운영 중이다. 팻독도 전국에 2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다. 가수 토니안이 2005년 ‘스쿨룩’이라는 교복 사업을 시작해 첫해 1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둘 역시 연예인 활동과 사업 경영을 분리했다. 물론 그게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현우는 얼마 전 현대홈쇼핑과 손잡고 남성의류 ‘로렌 & 마일즈’를 출시하면서 직접 방송에 출연해 눈에 띄는 판매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홈쇼핑의 도석준 남성의류 책임MD는 “로렌 & 마일즈는 다른 연예인 홈쇼핑 브랜드보다 20∼30% 높은 매출을 기록한다. 남성 스타가 직접 출연해 진행하는 유일한 패션 브랜드라는 게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로렌 & 마일즈는 현재 방송 회당 5억원 가까운 매출을 낸다. 하지만 남녀 스타를 막론하고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인터넷 쇼핑몰 광풍이다. 정식 브랜드 출시 같은 부담도 없고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운영 중인 연예인 인터넷 쇼핑몰은 60개가 넘는다. 문제는 쉽게 뛰어든 만큼 쉽게 포기한다는 점이다. 안혜경, 서지영, 심은진, 정양 등은 모두 언론을 통해 의욕적으로 창업을 알렸지만 1년이 채 안 돼 조용히 쇼핑몰을 폐쇄했다. 인터넷조사기관 랭키닷컴에 따르면 장수하는 연예인 쇼핑몰은 대개 CEO가 연예 활동보다는 쇼핑몰 운영에 주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김준희의 ‘에바주니’나 쿨케이의 ‘로코모’가 그런 예다). 그래야 품질이 보장되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혜영의 경우 방송 스케줄을 제외하고 정상 출근하며 가방에 항상 디자인 북과 샘플을 넣고 다닌다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을 자주 이용하는 회사원 임바야(28)씨는 “호기심에 한두 번 가보긴 해도 제품이 개성이 없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라고 말했다. 스타라고 꼭 스타 CEO가 되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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