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terview] “예술 없는 의학은 살벌하지요”
[人terview] “예술 없는 의학은 살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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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여 명의 의사와 420여 명의 간호사, 600병실을 갖춘 일산 백병원은 킨텍스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주요 시설을 찾을 때 거명되는 표준건물의 중심이었다. 대형 건설사들이 빼놓지 않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 일산 서구의 아파트 값을 올려놓기도 한 대표적인 의료시설이다. 그러나 여러 병·의원 중에 무엇보다 일산 백병원을 높게 평가하는 핵심요소는 첨단시술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국내 최고의 심장학(심장맥관학: 관상동맥질환) 권위자인 이원로 박사가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국내 6개 지역의 전체 백병원을 총괄하는 의료원장이자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원장을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연륜을 짐작하기 어려운 동안(童顔)이었다.
-1994년 귀국하기 전까지 22년 동안 미국 조지타운 의대에서 심장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삼성병원이 개원되면서 심혈관센터 소장으로 부임하셨지요?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강의하다가 미국으로 떠났는데, 어차피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첨단 최신시술을 습득하면 귀국하겠다는 생각으로 갔으니까 돌아와야 한다는 건 분명한 내 각오였어요. 더구나 미국으로 떠났던 70년대만 해도 국내의 심장학 분야는 취약했습니다. 인체의 모든 장기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 분야 연구나 의료진이 취약했다는 것은 심장학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의료수준이 그랬다고 보면 되는 겁니다. 특히 협심증, 심근경색 같은 관상동맥질환 시술은 아주 초기단계였어요. 지금은 선진국가들과 거의 갭이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그런 현실을 보고 떠났는데, 미국에서 대우가 좋다고 안주하겠습니까? 의사는 답답한 곳이 보이면 가서 도와야 한다는 게 기본 이념이에요. 우리 집안이 할아버지 때부터 한의학을 해 3대째 내려오고 있으니까 정신적으로 이미 (미국에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자식 아닙니까? 하하. 하여간 귀국을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학생 때 스승이기도 하셨고 미국서 같이 지냈던 한용철 교수님이 삼성의료원 초대원장이 되시면서 ‘닥터리가 절대 필요하다’ 그 말씀에 애들을 남겨둔 채 귀국했지요.” 이 원장은 조지타운 의과대학에서 심장학 교수로 있으면서 이미 심장혈관질환에 관한 진료와 시술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심장맥관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Essentials of Clinical Cardiology』와 『임상심장학』을 펴내 세계심장병학회와 국제심혈관학회의 독보적 인물로 부상했다. 많은 논문 중 특히 ‘급성 관동맥증후군의 위험도 단층화’와 ‘관상동맥질환 치료의 중재술과 우회로 수술의 우수성 비교’는 아직도 세계 의학계가 주목하는 논문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이 학계의 전언이다.
-의술은 이론으로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완치가 증명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원장님이 집도하는 심장계통 환자들은 왜 백병원을 찾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백병원을 밖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어떤 환자가 오시느냐를 보면 압니다. 이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다른 과를 찾는 환자들도 같은 관점에서 찾아오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만 특히 심장계통, 혈관질환 문제는 백병원이 최종병원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심장계통의 대법원이다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오세요. 위험에 처한 환자를 상대로 병원이 상품 광고하듯이 과장광고를 하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를 말씀 드리는데, 백병원은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의료계에서 원장님의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백중앙의료원 전체 종사자들의 자세 변화를 촉구한 것입니까? “한마디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지요. 백병원은 무수한 제자를 길러내고 한국 현대의학의 개척자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백인제 박사님이 뿌리 아닙니까? 백병원 설립자시고. 비록 6·25 때 납북당하셨지만 그분은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전설적인 인물처럼 존경을 받고 있잖아요. 그러한 분을 생각하면 병실이 몇 개다, 의사가 몇 명이다, 어떤 최신 기기들이 있다, 그런 숫자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아요. 병원의 생명은 퀄리티예요. 이게 떨어지면 곧 FTA도 체결되겠지만 의료개방을 앞두고 밀려드는 여러 도전에 응전할 수도 없고 정상에 설 수도 없는 겁니다. 절실한 문제지요.”
-퀄리티(Quality)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퀄리티는 의사의 품질, 의술의 품질, 이해와 친절의 품질, 환경의 품질, 시스템의 품질이 모두 포함되는 겁니다. 의료계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모든 사안이 전부 퀄리티 문제에서 촉발되고 동시에 해결된다고 나는 보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병원은 환자가 있음으로 존재하는 건데, 환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의사와 병원이 노력을 해야지 환자한테 이해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환자들은 의지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건데 말이죠. 그래서 모든 걸 환자 입장이 돼서 생각을 해보자, 그러기 위해선 의사부터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고, 무엇보다 환자를 맞이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자. 늘 강조하는 게 환자들은 병원에 오기 전부터 의사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온다, 그러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오는 거다, 그런데 석기시대 지식 가지고 21세기 환자를 치료하겠느냐, 공부하자, 이게 퀄리티의 핵심입니다. 그 다음엔 열 번이라도 친절하게 이해를 시키고,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처처럼 분위기를 만들고, 일단 백병원의 문을 들어서면 일반 직원에서부터 원장까지 환자의 보조원이 되자, 이렇게만 하면 나는 반드시 백병원은 돋보이게 된다, 그 원천이 바로 높은 퀄리티에 있다고 믿는 겁니다. 명성은 우리가 얻고 싶다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찾아주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노력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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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료시스템, 국민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사회주의적인 접근입니다. 누구나 의무적으로 똑같이 가입하도록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건강보험은 필요하고 국민건강을 위해 기여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병행이 필요하다, 전체 의료 발전을 위해선 자유의료보험, 다시 말해 어느 병원이든 강제 가입을 하도록 하지 말고 민간보험도 포함시키는 다양한 의료보험 제도가 시행될 때가 됐다 그겁니다. 국회에서는 법적으로 통과됐지만 시행이 안 되고 있는데 이것도 결국은 불신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그래요. 내용적으로 들어가 보면 민간보험의 환자한테는 국민건강보험 환자보다 더 좋은 약제를 처방하고 의료기구도 더 좋은 걸 사용할 거 아니냐, 국민건강보험 환자는 홀대하고 민간보험 환자는 우대할 거 아니냐, 이거 참 기가 막힌 불신이지만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내 명예를 걸고 얘기할 수 있어요. 자유의료보험을 하면 국민건강보험자부터 혜택이 돌아갑니다. 병·의원이 달라져요. 처방전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의료계 전체가 업그레이드 되고 경쟁체제로 발전하는 겁니다. 설명을 다 하자면 약제 선택에서부터 구조적으로 굉장히 복잡한데, 좀 믿으세요, 하하.”
“한국 의료제도는 사회주의적 접근” 이 원장은 서울대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학창시절부터 낭만에 취해 비틀거리는 60년대를 보내면서 시를 썼다. 전쟁을 경험하고, 먹을 것이 없어 젖을 물린 채 쓰러져가는 한국의 어머니와 아기의 울음소리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적십자 활동,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 활동, 극빈자 가족과 지역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펴면서 무엇보다 결손가정의 어린이 건강 문제에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이 되어 첫 시집 『빛과 소리를 넘어』를 낸 것은 1992년 미국에서였다. 그 후 『모자이크』까지 6집을 선보였다.
-의사로 불리는 것이 좋습니까,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좋습니까? “하하, 의료 행위를 하고 있을 때는 시인으로 불러주면 좋고, 시를 쓰고 있을 때는 의사로 바라봐 주면 새로운 기분이 되겠지요. 의학은 과학(Science)과 예술(Art)이 합친 겁니다. 그렇게 가르치기도 해요. 예술 없는 의학은 살벌하고 과학 없는 예술은 공허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의료 행위를 하고 있을 때는 시인의 자세가 되려고 하지요. 지금도 여기(와이셔츠 포켓에서 메모지를 꺼내며)에 문득 문득 시상이 떠오르면 적어두곤 해요. 시를 쓴다는 건 결국 내 자신을 그 시점에 영원히 머물도록 하는 작업이니까 항상 겸손과 성숙의 계단을 올라가는 자세로 겸기(鉗忌)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애를 씁니다.” 원장실 한 모퉁이에는 환자가 주고 간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신의 시가 적혀 있어 쑥스러워 걸지 못한다고 했다. 사춘기 소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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