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달러 송금에 ‘100만원 내놔’
10만 달러 송금에 ‘100만원 내놔’
시중은행의 각종 수수료 담합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외환송금 수수료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원자재 값 인상, 물류비용 상승 등으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무역업체들이 시중은행의 외환송금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 이코노미스트와 중소기업청이 조사한 결과, 국내 은행들의 외환송금 수수료는 해외에 비해 최고 9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장설비 부품을 수출하는 무역업체 L사장. 그는 얼마 전 관련업체 모임에 나갔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다른 업체 사장들은 은행에서 수출입 대금을 송금할 때 매매기준환율(달러당)에 2~3원 정도만 더 낸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송금 수수료도 물지 않는다고 했다. L사장은 그동안 은행이 고시하는 전신환매매율(매매기준환율+9.6원) 그대로 송금 비용을 지급했고 별도로 수수료까지 내왔다. 억울한 마음에 L사장은 다음 날 곧바로 은행을 찾아가 따졌다. “왜 우리 회사만 더 많은 외화송금 비용을 물어야 하느냐고 따졌더니 거래실적이 적어 우대환율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우대환율을 적용해주겠다는 거지 뭐예요. 그동안 지급했던 수수료를 생각하면 은행 간판만 봐도 분통이 터집니다.” 최근 중소 무역업체들 사이에 은행의 외환송금 수수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 경영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적용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국내 은행의 외환송금 수수료는 거의 폭리 수준”이라며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중소 무역업체가 많다”고 전했다. 무역업체들이 은행을 통해 수출입 대금을 해외에 송금할 경우(또는 송금 받을 경우)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은행이 고시하는 전신환매매율에 따라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전신환매매율은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전신환매매율은 매도율(해외로 송금할 경우)과 매입률(해외에서 송금 받을 경우) 각각 0.90~0.99%(달러 기준) 정도다. 예컨대 한 무역업체가 원자재 수출 대금 10만 달러를 해외에서 송금 받을 경우 전신환매입률에 따라 최저 90만원에서 최고 99만원을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수입 대금 10만 달러를 해외에 송금할 때도 전신환매도율에 따라 90만~99만원을 내야 한다. 또 이와는 별도로 송금 수수료도 내야 한다. 이 역시 은행마다 천차만별이다. 통상 해외로 송금할 경우(당발송금) 송금액에 따라 최저 5000원에서 최고 3만원가량의 수수료를 내야 하고, 해외에서 송금 받을 경우(타발송금)는 건당 1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무역업체가 수출입대금 10만 달러를 송금하거나, 받는 데 드는 총 비용은 최고 100만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식품무역업체 한 재무담당 임원은 “원자재 값 상승 등으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 비용까지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국내 무역업체들의 마진율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챙기는 외환송금 수수료는 터무니없이 높은 편”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무역업체(수출+내수업체)들의 평균 마진율은 8% 정도였다. 연간 100만 달러 (1달러 1000원, 10억원)어치의 제품을 수출할 경우 8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내는 것이다. 현재 은행들의 전신환매매율과 송금 수수료를 감안할 경우 100만 달러 송금에 드는 비용은 최고 1000만원 정도까지 나온다. 즉 순이익의 12%가량을 외환송금 수수료로 내는 셈이 된다. 중소 무역업체들 사이에서 폭리라는 말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한 주류 수입업체 사장은 “제품 원가에 외환송금 수수료 등 금융 비용을 반영하는 무역업체는 아마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며 “영세 무역업체들에 은행은 여전히 ‘갑’이기 때문에 불만을 표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외환송금 수수료 폭리 주장에 대해 은행들은 ‘절대 폭리가 아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에 우대환율(전신환매매율 인하)을 적용해 주고 있고, 일부 우량기업의 경우 우대환율로 역마진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한다. K은행 관계자는 “은행 간 기업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경우 노마진으로 외환송금을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고, 웬만한 기업들도 우대환율을 적용해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중소기업의 경우 처음부터 우대환율을 적용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밝혀 중소 무역업체 모두가 우대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님을 시사했다. 은행들의 우대환율 적용 기준도 모호하다. 대부분의 은행은 기업 고객 유치를 명목으로 우대환율 적용 권한을 지점장에게 맡기고 있다. 실제 N은행의 경우 전신환매매율의 최대 90%까지 지점장 전결로 인하해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점 성과 또는 지점장과의 친분 등 상황에 따라 고무줄 잣대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A무역업체 이모 사장은 “주변 사정을 잘 모르는 중소 무역업체들은 은행에서 달라는 대로 주는 것이 현실”이라며 “정작 금융 지원이 필요한 중소 무역업체들은 제대로 혜택을 못 받고 대기업이나 우량기업만 노마진 수준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외환송금 수수료와 관련해 은행들은 폭리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원가공개에 대해서는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다. 원가 산정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해명이다. 시중은행 외환서비스 담당자는 “외환송금 수수료에는 전산시스템 및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포함된 것으로 ‘정확히 얼마다’라고 말하기 힘들다”며 원가공개를 꺼렸다.
전신환매매율 10년간 ‘그대로’ 은행들의 원가공개 거부로 이코노미스트는 중소기업청과 함께 세계 각국의 전신환매매율을 조사했다. 세계 각국과 비교해 국내 은행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조사 대상 국가는 독일, 일본, 싱가포르, 인도,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 베트남 등 8개 국가였으며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외국환 거래 은행을 표본으로 삼았다.
그 결과 국내 은행들의 전신환매매율은 베트남을 제외한 모든 국가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과 UAE에 비해서는 각각 9배, 8배가량 높았다. 독일, 싱가포르,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50% 이상 비쌌다. 베트남만이 국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 국내 은행들은 전신환매도율과 매입률이 같은데 반해 외국의 경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국내 전신환매매율이 높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해외와 비교하면 중소 무역업체들의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금융 비용 부담으로 일부 중소 무역업체들 사이에서는 자체적으로 외환사무소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신환매매율은 기업들의 수출입 대금 송금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유학 자금 등 해외 송금시에도 기준이 된다. 즉 개인들도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 온 셈이다. 기러기 아빠인 K씨는 “매달 400만~500만원가량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보내는데 수수료가 5만원이 넘는다”며 “수수료가 비싸다는 생각은 했지만 외국에 비해 그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전신환매매율 담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은행들의 전신환매매율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또 은행 간 편차도 큰 변화가 없었다. 은행 간 전신환매매율 담합 의혹과 관련, 신학용 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IMF 이후 국내 은행들의 전신환매매율이 거의 변하지 않고 동일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담합이 아니고서는 이런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신환매매율이 가장 낮은 은행은 산업은행으로 0.9%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국민은행이 0.94%로 가장 낮았고, 하나은행이 0.99%로 가장 높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때만 되면 나오는 이벤트성 대출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금융 비용(수수료) 인하”라며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중소기업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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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설비 부품을 수출하는 무역업체 L사장. 그는 얼마 전 관련업체 모임에 나갔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다른 업체 사장들은 은행에서 수출입 대금을 송금할 때 매매기준환율(달러당)에 2~3원 정도만 더 낸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송금 수수료도 물지 않는다고 했다. L사장은 그동안 은행이 고시하는 전신환매매율(매매기준환율+9.6원) 그대로 송금 비용을 지급했고 별도로 수수료까지 내왔다. 억울한 마음에 L사장은 다음 날 곧바로 은행을 찾아가 따졌다. “왜 우리 회사만 더 많은 외화송금 비용을 물어야 하느냐고 따졌더니 거래실적이 적어 우대환율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우대환율을 적용해주겠다는 거지 뭐예요. 그동안 지급했던 수수료를 생각하면 은행 간판만 봐도 분통이 터집니다.” 최근 중소 무역업체들 사이에 은행의 외환송금 수수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 경영에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적용 기준도 제각각이어서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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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환매매율 10년간 ‘그대로’ 은행들의 원가공개 거부로 이코노미스트는 중소기업청과 함께 세계 각국의 전신환매매율을 조사했다. 세계 각국과 비교해 국내 은행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조사 대상 국가는 독일, 일본, 싱가포르, 인도,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 베트남 등 8개 국가였으며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외국환 거래 은행을 표본으로 삼았다.
용어설명 매매기준환율 원-달러 교환시 기준이 되는 환율로 은행마다 매일 고시한다. 전신환매매율 기업이나 개인이 전신을 통해 수출입 대금 또는 자녀 유학 자금을 송금할 때(또는 송금 받을 때) 기준이 되는 환율 스프레드(매매 기준환율과의 차이)를 말한다. 전신환매도율은 원화를 외화로 바꿔 해외에 송금할 때 적용되며, 전신환매입률은 해외에서 외화를 송금 받아 원화로 교환할 때 적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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