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수컷들의 참을 수 없는 욕정
학생 때 본 영화 중에서 지금까지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은 소피아 로렌 주연의 ‘the key’라는 흑백 무비다. 남자보다 키가 더 큰 소피아 로렌은 유럽 소도시에서 주둔군 병사와 동거하던 중 사내가 전속되자 그 후임으로 온 다른 군인에게 마치 전셋집 냉장고처럼 인계된다. 이때 그 인계사항의 상징으로 열쇠가 건네지는데 그 때문에 영화 제목이 ‘the key’가 된 것으로 안다. ‘여자를 세간처럼 인계하고 떠나는 사람, 그리고 인수받고 그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대비돼 실종된 휴머니즘이 두고두고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소피아 로렌의 슬픈 연기가 실감났던 것일까. 그와 비슷한 시추에이션은 한국군이 주둔하는 전방 부대 주변 단칸 월세방들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던 풍경인데 다만 우리가 먼저 영화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성욕이 발생할까? 이런 의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곤 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일단 성욕이 발동하면 그 원초본능이 충족되기 이전에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 남성들의 성 생리다. 필자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 탈락을 결정하는 쿼터제 시험이란 가혹한 시험에 대비하느라 모두들 밤을 새워 공부하고 있는 와중에도 성적 충동 때문에 공부에 열중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결국 사창가를 다녀와서 제 페이스를 찾아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그럼 왜 그런 참을 수 없는 욕정이 남자들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본디 조물주가 생명체를 창조할 때 수컷은 수정을 통해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주는 역할로 주어진 생명을 다하도록 설계해 놓았다. 꿀벌, 사마귀, 과부거미 등이 생식달성과 더불어 생애를 마감하는 생명체의 실례들이다. 연어나 송어가 깊은 북쪽 바다에서 헤엄쳐 육지로 올라와 고향의 개울가 수초에 산란하면 수놈은 거기에 정액을 뿌려 수정한 후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다. 수컷이라는 생명체의 유전자 속에는 오로지 ‘수정시켜야 한다’는 사명밖에는 다른 입력된 명령어가 없다. 그런데 고등 동물의 경우에는 그런 단순한 메커니즘의 자동화된 기계처럼 오토매틱하게 섹스가 이뤄지지 않는다. 본능적 충동은 같지만 다양한 이성적 통제기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교를 향해 발동하는 욕정을 무조건 억누르기만 하면 그것은 들어갔다가 강하게 튕겨 나가는 용수철처럼 반발한다. 평소 같으면 ‘그래서는 안 된다’ ‘참아야 한다’는 등으로 자신을 슬기롭게 조절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이성의 통제가 불가능해 강간이나 성추행 등 성범죄로 발전하거나 탈영 등으로 폭발하는 예가 종종 생긴다. 이런 특수한 남성 생리로 인해 혈기 왕성한 병영사회는 그 어느 곳 사람보다 성적 긴장을 풀어주는 장치가 필요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예전부터 군 부대에 말이나 대포가 필요하듯 창녀도 빼어놓을 수 없는 군수품 중 하나였다. 세계의 전사(戰史)에는 다음과 같은 창녀부대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알바 공작이 이끄는 군대는 네덜란드 원정 길에서 400여 명의 고급 창녀가 말을 타고, 800명의 하급 창녀가 도보로 그 뒤를 따라 연대의 대열로 행진했다. 1298년 알프레히트 왕이 스트라스부르에 입성했을 때 800명의 창녀를 동반하고 있었고 1343년 독일군 사단장 올스링거 베르너는 3500명의 군대 속에 1000명의 창녀가 혼합된 혼성군을 지휘했다.’ 때때로 부작용도 있었다. 병사와 창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탈영하는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아기가 태어나 기동성이 침해 당하는 치명적인 손상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데 아무리 호랑이처럼 무서운 장군들일지라도 생리적으로 일어나는 원초적 본능을 누가 무슨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절박한 생식생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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