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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면 다시 맨손으로 시작하지”

“망하면 다시 맨손으로 시작하지”

▶이교형 사장이 캄보디아에 자신이 수출한 승합차를 배경으로 서 있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요즘 수도 프놈펜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코콩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 캄보디아 최초로 자동차 공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비록 첫 시작은 분해한 완성차를 수입해 다시 조립하는 DKD방식이지만 훈센 총리를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첫 자동차 공장 탄생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동안 봉제, 의류, 완구 등 저부가가치 제품만 생산해오던 캄보디아에 단순 재조립 공장이지만 자동차 공장이 들어섬으로써 캄보디아는 자동차 공급을 원활하게 받을 뿐 아니라 자동차 조립 기술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DKD방식이지만 7년 후에는 부품을 그대로 수입해 조립하는 CKD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후 기술 습득 수준과 시장 규모를 봐서 일부 부품은 캄보디아에서 자체 생산하는 SKD방식까지 검토하고 있다. 캄보디아 경제에 한 획을 긋는 자동차 조립공장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이교형 KH모터스 사장이다. 그는 한국 중고차를 해외로 수출해 온 조그만 중소기업인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우즈베키스탄, 수단, 러시아, 필리핀, 미얀마를 돌며 전 세계에 중고차와 완성차를 수출해 왔다. 그가 다닌 나라 대부분은 한국에서 현지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중고 자동차 수출업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변변히 진출하지 않았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도 있다. 96년 7월 처음으로 베트남에 중고 버스를 수출하면서 한때 베트남 중고 버스의 절반 가까이 그의 손을 거친 적도 있었다. 특히 2001년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되면서 그의 수출은 급성장했다. 전국에서 매물로 나온 백화점 버스를 그가 사들여 베트남으로 보낸 것. 베트남 외에도 수단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한국과 교류가 적은 국가에도 그는 시장을 타진하기 위해 직접 갔다. 그리고 불과 몇 십 대라도 시장이 보이면 배에 버스를 실었다. 그는 “중고차 수출은 우물쭈물 따지거나 이것저것 재면 점점 위축된다. 현장에 직접 가보고 도전적으로 덤벼야 거래처가 생긴다”고 말했다.
“돈 날리지 말고 하던 일이나 잘해”
그런 그가 캄보디아에 발을 들여놓은 지 10년 만인 지난해 5월 현지에 현대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우기로 캄보디아 재벌그룹인 프놈펜호텔그룹과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사장을 만나기 위해 전화한 지난 4월 22일, 그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전화를 받았다. 내년 5월 완공을 목표로 캄보디아에 현대차 조립공장을 짓기 위해 막판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의 주요 내용은 관세 부문. 현재 캄보디아에 완성차를 수출할 경우 119%의 관세가 붙는다. 이미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 재무부 등에 “관세 50%를 감면해주라”고 지시했지만 이 사장은 그 정도 인하에 만족 못하는 듯했다. 그는 “우리 요구는 관세율 30%”라고 했다. 4월 말에 확정될 것으로 보이는 관세율은 30~50%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지 합작법인인 캄코모터스의 지분은 프놈펜호텔그룹이 51%, 이교형 사장의 KH모터스가 49%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공장 부지 구입, 공장 설계 비용으로 이 사장이 투자한 돈이 7억원 가까이 된다. 앞으로 공장 완공과 쇼룸 오픈까지 일정을 감안하면 총 30억원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그는 예상했다. 이제 1년 뒤면 결실을 보게 되겠지만 처음부터 그의 사업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캄보디아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운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무리수’라고 봤다. ‘나카마(도매상을 뜻하는 일본어)’가 그저 허세를 부리는 정도라고 치부한 경우도 있었다. 몇몇 사업하는 친구는 그에게 “괜한 일로 돈 날리지 말고 하던 중고차 수출이나 잘해보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이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캄보디아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는 한계가 온다고 봤다. 이웃한 베트남은 벌써 ‘유로4’의 배기가스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한 점도 그가 조립공장을 설립하게 만들었다. 캄보디아도 곧 그 규정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중고차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완성차를 수입해 파는 것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높은 관세 때문에 판매에 한계가 있다. 비슷한 가격의 일본 차와 경쟁도 힘들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조립생산을 통해 관세를 낮춰 경쟁하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일부 완성차 업체는 관세를 줄이기 위해 편법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이 시장에서 오래 사업을 하려면 이 나라 법을 지키면서 사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립생산을 통해 세금을 낮춰야죠.” 하지만 대기업들은 규모도 작고 불확실성이 높은 캄보디아에 직접 뛰어드는 걸 망설였다. 그 틈을 이 사장이 파고든 셈이다. “우리 같은 작은 기업가들이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우리야 뭐 망해도 다시 맨손으로 시작하면 되니까요.” 그 이후론 꾸준히 캄보디아 정부와 협상해 합작 조립공장 만드는 문제를 논의했다. 논의 기간만 4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훈센 총리나 고위 정부 관계자와도 친목을 다졌다. 캄보디아 합작 파트너를 한국으로 수차례 불러들였고, 그가 캄보디아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횟수만 30회에 이른다. 한국에 온 파트너는 최고급 호텔에 숙박시키면서 그가 직접 공장을 견학시키고, 관광 가이드 역도 했다. 저녁을 먹을 때면 그의 사무실이 있는 수색역 근처에 단골 횟집에 데려가 소주와 폭탄주로 밤을 지새웠다. “후진국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 인간적인 정이 있어요. 이 친구들과 저는 금방 한국말로 형, 동생 하고 불러요.” 실제 그는 지난해 베트남에서 온 거래처 사람과 대화할 때 “동생”이라고 한국말로 부르고 베트남어나 영어로 대화했다. 유창할 리 없는 그의 외국어 실력으로 일상적인 소통이 다 됐다. 결국 그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합작공장 승인을 받았고, 관세 인하도 적용 받았다. 순탄해 보이지만 그도 몇 번이나 회사를 접을 위기를 맞았다. 특히 2006년에는 국내의 한 중고차 도매업자에게 6억원의 사기를 당했다. 한 해 회사 순익을 사기 한 번으로 날린 셈이다. “물건을 주겠다고 돈을 받아간 업자가 사라진 겁니다. 막막했죠.”

▶캄보디아 교통부 장관(오른쪽에서 셋째)을 면담한 후 기념촬영을 했다.


“위험 없는 사업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는 소주 한 잔으로 털어버렸다. “중고차는 원래 불확실한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돈도 되죠. 그런 건 다 수업료죠.” 실제 그는 베트남에서도 15년 정도 사업하면서 8억원 정도 사기를 당했다. “위험 없는 사업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재면 앉아서 죽는데요. 밖에서 보면 위험해 보여도 막상 들어와서 해보면 뭐 할 만합니다.” 연간 150억원 정도 꾸준히 매출을 기록하는 업체의 사장인 그가 돈이 아쉬워서 캄보디아로, 베트남으로 날아다니는 건 아니다. 술을 많이 마셔도 새벽 5시에 꼭 일어나 운동을 하고, 고급 승용차 대신 경차를 타고 다니고,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다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그가 격식이나 폼 잡기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미 팔린 중고차가 고장나 애프터서비스를 해달라고 하면 그가 직접 부품을 들고 비행기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가 공항 세관에 잡힌 적도 여러 번이다. 연중 출장만 180일 이상, 그것도 후진국 위주로 다닌다. 이 사장은 어떤 면에서 70년대 불도저식 경영에서 못 벗어난 듯하다. 말도 서투르고, 세련된 비즈니스 매너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는 올해도 그 방식 그대로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캄보디아에서 성과를 낸 사람은 이 사장이다. 가진 것이 작을수록 도전정신은 더욱 큰 밑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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