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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 쓰는 게 아니라 ‘장기 투자’

큰돈 쓰는 게 아니라 ‘장기 투자’

“상장사인 금융회사가 학교를 세운다?” 최근 하나금융지주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 lity)’의 일환으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를 설립하기로 해 화제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단순히 이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 하나금융의 자사고 설립은 보다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서울시는 은평 뉴타운 내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나금융을 최종 선정했다. 서울 지역 첫 자립형 사립고를 대기업이나 교육기관이 아닌 금융회사가 따낸 것이다. 그동안 금융권에서 학교나 교육재단에 기부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직접 학교법인을 세우는 것은 하나금융이 처음이다. 하나금융은 일명 ‘하나고(가칭)’ 설립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금융권의 첫 사례인 데다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김승유(65) 회장의 강한 의지도 작용한 탓이다. 우선 학교 설립을 위해 하나금융은 건축비로만 315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교실, 식당, 기숙사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전체 학생 수는 750명, 학년당 학급 수는 10개로 잡았다. 학급당 학생수가 25명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또 교육기자재 구입,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에 추가로 60억원가량을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지다. 자사고 학비는 일반 공립학교의 3배 이내에서 결정된다. 그만큼 비싸다. 하나금융은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 정원의 15~20%를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할 계획이다. 서울시 등 외부 장학생까지 감안하면 전체 학생의 30%가량이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하나금융은 예상했다. 당초 은평 뉴타운 자사고 설립에는 교육 업체인 대교가 참여했었다. 2006년 공모를 통해 대교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기업실적, 주가영향, 사업타당성 등 비판적인 여론이 일자 포기했다. 상장사이자 교육업체인 대교로서는 자사고 설립에 대한 시장 반응이나 사업 타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교가 포기한 것을 하나금융이 하려는 이유는 뭘까. 하나금융 역시 주주 이익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상장사다. 이를 감안하면 설립 초기에만 수백억원이 투입돼야 하는 학원사업을 나서서 하는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일부 사람은 “한국에서는 교육 사업이 대박 사업이니까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교육사업=대박사업’이란 말은 사교육 시장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자사고도 엄밀히 따지면 사교육에 해당하지만 운영 현실은 공교육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돈을 까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현재 전국 6개의 자사고는 한 해 수십억원의 적자를 보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정부는 앞으로 자사고를 10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어서 이대로라면 희소가치마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하나금융이 자사고 설립을 강력히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과는 접근 방법이나 설립 취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사고 설립과 관련한 실무를 담당하는 조윤현 하나금융 팀장은 자사고 설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사고 설립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하나금융이 그동안 해온 사회공헌 활동의 연장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금융그룹은 지난해 10월 금융권 최초로 남양주에 노인전문 요양시설인 ‘남양주 하나 실버카운티’를 짓기로 했다. 사진은 기공식에 참석한 김승유 회장(왼쪽에서 셋째).

계산하기 좋아하는 일부 주주는 돈도 안 되는 사업에 수백억원을 쏟아 붓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그 돈으로 차라리 배당이나 더 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금융의 기업 규모나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에 쏟은 금액을 감안하면 이번 자사고 투자액은 사실 큰돈이 아니다. 하나금융은 한 해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하는 대기업이다. 또 매년 200억원 이상을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하나금융 입장에서 이번 자사고 설립이 “그동안 해온 사회공헌 활동의 연장선”인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금융은 사회공헌 활동만큼 주주 이익 증대에도 적극적이었다. 외환위기에도 지난 38년간 지속적으로 흑자배당을 해왔고, 지난해에도 순이익의 20%가 넘는 2700억원가량을 배당했다. 심규선 CJ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나금융의 규모나 배당성향, 사회공헌 활동 등을 고려하면 자사고 설립이 향후 주가나 배당에 미칠 영향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사고 설립이 하나금융에 손해를 끼칠 게 없다면 득이 되는 것은 뭘까. 혹자는 “좋은 일을 하는데 왜 토를 다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깐깐한 투자자나 주주 입장에서는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삭막하지만 그게 주식시장의 생리며 자본주의다. 결론부터 말하면 자사고 설립에 따른 비용 대비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는 분석이다. 경영컨설팅 전문가들은 하나금융의 자사고 설립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일반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보다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회공헌도 경영활동의 하나
송인경 에코프로티어 부장은 “국내에서는 기업의 사회공헌이 기부를 통한 불우이웃돕기 차원에 그치고 있다”며 “이 같은 일회성 이벤트도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단순한 기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지주 ‘하나고’ 설립 계획 .

개 교 2010년 3월 예정

정 원 총 750명(학년당 10학급, 학급당 25명)

학교형태 보딩스쿨(Boarding School·기숙학교)

설립비용 총 375억원

주요시설 교실, 체육관, 도서관, 학생회관, 식당, 기숙사 등

등 록 금 일반 고교의 3배 이내

장학혜택 전교생의 30%
그는 또 “하나금융의 자사고 설립은 국내 기업의 단순한 기부 관행을 넘어 지역사회와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혜택과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중장기적으로 하나금융의 브랜드 가치 상승, 고객 신뢰확보 등 경영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기업의 사명 또는 창업자의 이름을 딴 대학이나 MBA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명문대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SD)의 제이콥스(퀄컴 회장) 공과대학이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기업이 교육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양극화나 경제문제 해결에 앞장서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기업 성장의 핵심인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인프라가 되기도 한다. 해외에선 사회공헌 활동이 기업 미래를 위한 장기투자인 셈이다. 하나금융의 자사고 설립도 이 같은 시너지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김승유 회장은 오래전부터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교육 등 사회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은 단순히 돈만 내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하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즉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만 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도 가르쳐 줘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금융이 그동안 해온 사회공헌 활동이 여타 금융회사들과 다른 점도 이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2003년 IBM 등 몇몇 기업과 함께 ‘푸른이어린이집’이라는 유아보육사업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기업들이 모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보육사업을 시작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2006년에는 300억원을 들여 하나금융공익재단을 설립, 남양주에 노인요양시설인 ‘하나 실버타운’을 짓는 등 실버 사업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금융권 최초다. 단순히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설들을 짓고, 저렴하게 운영하면서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송인경 부장은 “하나금융이 사회공헌으로서 자사고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저소득 가정의 유능한 학생이 많이 입학할 수 있도록 장학 혜택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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