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유능한 부하를 키워라”
“나보다 유능한 부하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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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의 퇴임식은 이례적으로 두 차례 열렸다. 3월 24일 자신이 일하던 SK텔레콤에서, 이튿날에는 SK그룹 월례 사장단 회의 수펙스(SUPEX·Super Excellent) 추구협의회에서. 그는 퇴임하자마자 서울 을지로2가 SK텔레콤 본사 사옥에 있는 방부터 뺐다. 그리고 서울 서초동 뱅뱅사거리 근처 건물의 작은 방으로 옮겼다. 그는 인터뷰도 한동안 사양했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한 귀퉁이를 거든 셈인데, 마치 자신이 다 한 것처럼 글이 나오는 게 부담스럽다면서. 튀기지 않고 쓰기로 거듭 약속한 뒤 그를 만났다. “이사온 지 2주 됐어. 거기(본사 사옥)는 굉장히 비싼 집이거든. 나도 불편하고. 직원들 출근할 때 비슷하게 출근하고 퇴근할 때 퇴근해야 할 텐데, 그게 무슨 시집살이야. 더구나 지금은 모바일 오피스 시대인데.” 치장이 없는 그의 책상 앞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며 CEO들에게 준 커다란 지구의가 있다. 창가에는 아는 이들이 그의 인생 2막 출범을 축하하며 보낸 화분들이 놓여 있고. “남들은 화려하고 성공적인 직장 생활 42년이라고 하지만 나로선 머슴살이 한 거지. 진짜 실력 없는 게 들통나기 전에 얼른 옷을 벗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라고 말하며 겸손해 한다.
직급보다 높은 일 해야 성공 조 고문을 만나자마자 42년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비결이 궁금했다. 요즘은 한 직장에서 20~30년 근무를 자랑할 게 못 되는 것 같다고 다소 도발적으로 물었다. 조 고문은 여유가 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위트가 넘친다. 자주 크게 웃는다. 그리고 말에 거침이 없다. “두 가지 형태가 있겠지. 하나는 재주가 없어 계속 붙어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대로 회사에서 아직 약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일 테고.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도 두 가지야. 미운 짓 않고 시키는 건 하자 없이 하거나, 회사에게 돈 잘 벌어준다고 느끼게끔 잘 하거나. 당연히 후자가 승진을 잘 하겠지. 전자도 퇴직시키는 데 보름 정도 시간은 줄 거야.” 여기서 조 고문은 회사 설립과 존재의 이유를 설파한다. “회사를 왜 만들겠어. 당연히 돈 벌려고 만들지. 조직원은 어느 자리에 있든 회사가 돈을 벌게 해줘야 돼. 임원부터 정문 경비까지 다 마찬가지야. 그리고 자기 직급보다 조금 높은 일을 해야지. 부장이 부장 할 일만 하면 누가 상무를 시켜주겠어?” 그는 차장·부장 시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는 심드렁했다. 출근하면 ‘뭐 재미 있는 일 없나’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드디어 내가 할 일을 찾았다’며 떠맡아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며 해결해냈다. ‘남이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왜 하나’라고 생각하며 생활하니 스스로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 성취 동기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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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법 조 고문은 사업에 사양·유망 산업이 따로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지 산업 그 자체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산업에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봐. 커피 장사가 얼마나 오래 됐고, 또 하는 기업도 얼마나 많아. 그런데 그 커피 장사로 세계적 기업이 된 곳(스타벅스)이 있거든. 중요한 것은 뭐가 됐든 꾸준히 산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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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똑똑하게 키워야 내가 편해 마음 고생을 하던 그는 조정남의 숨겨진 남다른 능력을 인정하는 상사를 만난다. 바로 동갑내기 손길승 전 회장이다. 그런데 생전 들어보지도 않은 통신회사로 옮기라니 답답했다. 화공쟁이에게 왠 통신이냐고 따졌다. 그러자 손 회장이 말했다. “누가 기술을 공부하라고 하느냐. 기술자나 잘 관리하라”고. “당시 그룹에 통신을 아는 간부가 없었어. 내 밑에 네 명의 기술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열심히 해줬지. 그래서 CDMA 상용화에 성공한 거야.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데 염치가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니라 기술자들이 잘 한 것이라고 했지. 그러자 사람들이 그래. 그 네 사람이 워낙 개성이 강해 협력이 안 되는데 빈틈없이 협력해 일하도록 만든 것은 당신이 콤비네이션을 잘 한 덕분이라고.” 유공에서 주어진 일만 해오던 그는 SK텔레콤에서 믿고 다 맡기니 부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아래 사람을 부리는 데 큰 원칙을 갖고 있다. “일이 생기면 똑똑하고 일 잘 하는 친구들을 달라고 했어. 그게 안 되면 빨리 훈련시키거나 회사 돈으로 교육시키는 거야.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내가 편해. 밑이 허(虛)하면 내가 할 일이 많아지거든. 운 좋게도 나는 아랫사람들을 잘 만났어.” 그는 차장 시절까진 밤 10~11시까지 일했다. 기대 만큼 아래 직원들이 못해오자 ‘조직의 얼굴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며 야근을 했다. 그러나 부장이 된 뒤로는 일 하느라 저녁 6시를 넘어 본 적이 없다고. 그가 직장 생활 42년, 그것도 10년 넘게 대표이사를 맡은 데는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 일 게다. “내가 일을 판단해 하는 능력은 어느 정도 있다고 봐. 직급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일이 생기는 법인데, 그 일을 내게 맡기면 수월하게 한다는 거야. 누가 분석하기를 내가 모든 일을 심플리파이(simplify)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야. 정곡을 찌르거나 핵심을 파고 들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되잖아. 지금 생각하면 위에서 내게 기대한 것보다 조금씩 높은 퍼포먼스를 낸 것 같아. ‘야! 이것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았어. 운도 절반은 작용했고.”
열심히 원해야 이뤄진다 내친 김에 성공적인 봉급쟁이 생활의 비결에 대해 들어보자. 월급쟁이가 들어오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자기 능력 이상의 과제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때 머리를 잘 써야 한다. 기도하는 자세로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꿈을 가꿔야 해. 원하지도 않는데 이뤄지는 게 없고, 또 있다고 해도 그건 값어치가 없어. 내가 처한 상황에서 참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돼. 그래야 접근이 가능하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어. 회사에서 임원 되는 것, 돈 1억원 모으는 게 다 그래.” 그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꿈을 갖고 신천지를 개척하라고 주문한다. 풍족하게 자란 요즘 젊은이들이 패기가 약하다면서. “어릴 때 어느 재벌 회장이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세상에서 제일 못난 놈이 월급쟁이 한다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안정적인 대기업에 취직함으로써 부자가 될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지. 자기 사업을 한다면 잘 할 젊은 친구들이 많아.” 그러는 조 고문에게 왜 직접 자기 사업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이 조금 엉뚱하다. 게으르기 때문이란다. 무슨 일을 하려면 돈과 사람 있어야 하는데 자신은 사고방식이나 성격이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다고. “자기 사업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더라고. 창업하려면 먼저 그것을 스스로 물어봐야 돼.”
SK 식구들이 닮고 싶은 모델 조 고문이 42년 월급쟁이 생활하며 가장 신이 났던 시기는 2002년 월드컵 때다. 경쟁사 KTF가 공식 후원업체라서 SK텔레콤으로선 ‘월’자도 꺼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규정을 꼼꼼히 들여다본 마케팅 기획팀이 아이디어를 냈다. 응원은 가능하다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로 상징되는 붉은악마 응원 아이디어는 이렇게 나왔다. “직원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그렇게 크게 성공할 줄은 몰랐어. 월드컵 내내 전국을 돌았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니 솔직히 무섭더라고. 붉은 티셔츠를 30만 장 보급했어. 실제 사용된 것은 2000만 장이 넘었다고 그래.” 조 고문은 대주주나 회사 눈치 보지 않고 회사 규정을 어기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전무 시절부터 해외 출장을 부인과 함께 갔다. “나 퇴근해도 돼”라고 밑에 물어보긴 했어도 윗사람에겐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한 번은 손길승 전 회장이 “왜 능력 중 70%만 쓰느냐”고 하길래 “일을 갖고 이야기하자. 퇴근 시간이 중요하냐”고 대답했다. “퇴근할 때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어. ‘나 퇴근하는데 출근하나’ ‘아직도 유능해지질 못 했어’라고 말을 건네면 아이들이 우스워 죽겠다고 그러지.” 그는 평소 신뢰를 제1의 덕목으로 강조한다. “업자와 관계도 그래. 업자가 우리 직원보다 더 나빠. 업자가 유혹해 함정에 빠뜨린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직원이 먼저 오퍼해 돈 받아 먹은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 그래서 직원을 편 들었어. 자식처럼 생각한 거지. 그렇게 믿어주면 아이들이 그런 일을 안 해. 모든 일엔 믿음이 중요하거든.” 조 고문은 오늘도 변함없이 15년 된 정든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들고 사무실로 향한다. 손때가 묻은 이 가방에는 친구가 선물한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새겨진 이름표가 달려 있다. 그는 은퇴 이후 삶에 대해 “남을 가르칠 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해마다 5월이면 피천득 선생의 수필 <오월> 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린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은퇴한 뒤 처음 맞는 올 5월은 이 말이 더욱 가슴으로 다가온다.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왜 좀 더 가깝게 다가가 내 뜻을 전하지 못했나? 왜 좀 더 베풀지 못했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과연 좋은 이웃인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해.”
후배에게 전하는 ‘샐러리맨 15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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