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세율 낮춰 기업인 부담 줄여야

세율 낮춰 기업인 부담 줄여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왼쪽)과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2003년 미국 워싱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 개회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상속세는 재산이 무상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계별로 누진 과세함으로써 부의 세습을 억제해 모든 사람의 ‘경제적 출발점’을 비슷하게 하는 기회균등을 꾀하는 효과가 있다. 즉 상속으로 물려받은 재산 중 절반을 국가에 내놓고 절반만 갖고 시작하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상속세를 둘러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 국세가 160조원 정도인데(2008년 기준), 상속세(증여세 포함)는 4조원(전체 세수의 2.5%)에 불과하다. 또 한 해 사망자가 24만 명이지만 상속세를 신고하는 사람은 불과 2200명(0.9%)뿐이며, 이 중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 인원은 50여 명에 불과하다. 이는 상속세가 개인의 경제적인 출발의 평등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큰 효과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일찍이 외국에서는 상속세에 대한 다양한 개정과 보완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상속세 제도는 1861년 남북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소득세와 함께 신설됐다. 그 후 폐지 및 개정을 거듭하다가 1916년 유산취득형 과세제도(피상속인의 재산을 과세표준으로 함)를 도입했고, 1935년에 대폭 개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부시 정부의 ‘경제성장과 감세조정법(the Economic Growth and Tax Relief Reconciliation Act of 2001)’에 따라 2009년까지 연차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이고 2010년부터는 이를 폐지하도록 돼 있다. 그 이유는 70%가 넘는 미국 국민이 상속세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상속세 세수가 미국 연방예산의 1.5%에도 못 미칠 만큼 미미하기 때문이다. 또 상속세에 대한 조세지출 비용이 세입액의 65%에 이르는 점 등이 주요한 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워런 버핏 등 미국 부자들의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 결과, 2006년 6월에는 상속세 폐지 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됐다. 그 이유는 전체 상속건 중 2% 미만에만 과세되는 상황에서 상속세를 폐지하면 상속세 경감 혜택이 특정 부유층에게만 돌아가고 재정적자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당초 미국의 감세조정법은 2010년에는 상속세를 폐지하고, 2011년에는 효력이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2001년 법으로 되돌아가도록 부칙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즉, 상속세가 다시 부활되는 것이다(이를 방지하기 위해 감세조정법이 2011년 이후 계속 적용되도록 하는 별도의 입법이 미국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된 것이다). 대신 2011년부터는 상속세 과세대상 인원을 대폭 줄인 내용(상속세율: 15~30%)이 포함된 새로운 입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상속세를 없앤 것이 아니다. 다만 연방정부에서 부과하는 유산세만 종전보다 약화시킨 것이다. 또 상속세 폐지 법안에 따라 상속세가 폐지됐다면, 이를 대체하는 자본이득세가 새로이 적용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내에서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미국의 사례를 인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다.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려면 적어도 자본이득세 도입을 거론해야 맞다. 일반적으로 어느 정책의 타당성을 검토할 때, 우리나라가 비교 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 모두 상속세를 실시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가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스웨덴 등 7개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상속세를 폐지한다고 해도 상속재산 자체에 대한 세금은 자본이득세(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양도한 것으로 봐서 과세하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양도소득은 호주 7%, 캐나다 2%의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부유세가 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상속세만 가지고 단편적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울러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는 국가 대부분은 조세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가들이다. 그러나 서화나 골동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논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는 아직 자본이득세를 실천할 만한 시기가 아니라고 본다. 현행 소득세 과세체계에서 비과세(예: 소액주주의 상장법인 주식 양도소득 등)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어 상속세가 폐지되고 자본이득세가 실시되지 못한다면, 특정소득에 대해 소득세가 비과세되고 아울러 상속세도 비과세되는 이른바 이중 비과세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이득세 도입도 방법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속세를 개정해야 할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다. 자본이득세란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상속재산을 양도한다고 가정하고 상속세 대신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법이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일부 경우에는 오히려 세 부담이 증가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현행 상속세 과세제도 아래서는 상속재산이 10억원 이하의 경우 대부분 공제혜택을 받게 되지만, 자본이득세가 도입되면 대부분 과세로 전환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국가들의 자본이득세 공제 범위도 상속세 공제 범위보다 훨씬 적다. 상속세는 극히 일부 계층만 해당되지만, 자본이득세가 도입되는 경우에는 전 국민 대다수가 납세의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둘째, 유산취득형 과세를 취득과세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피상속인의 전 재산을 과세표준으로 하고 있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상속인의 상속분에 대해서만 과세표준으로 삼고 있다. 쉽게 말해 100억원 가진 아버지의 재산을 5형제가 고르게 상속할 경우 현재 제도는 100억원 유산에 대한 세율 50%를 적용해 50억원을 세금으로 내지만 취득과세형으로 전환한 경우 상속인이 각각 20억원씩 상속받기 때문에 각각 40%씩 총 40억원을 내게 된다. 이렇게 하면 적용되는 세율이 저절로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사실 상속세를 납부하면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는 이와 같은 상속세 과세표준 산출방법을 취득과세형으로 전환하면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독일, 프랑스, 일본이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의 징수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은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셋째, 상속세 세율 적용을 세련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10∼50%로 프랑스(5∼60%), 독일(7∼50%) 등 선진국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대부분의 상속에 해당하는 ‘직계상속’에 대한 세율은 우리가 더 높다. 프랑스, 독일 등은 친족 관계가 가까울수록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과세등급을 5단계로 구분한 후 등급별로 상이한 누진과세를 적용하고 있다. 즉, 배우자 상속 및 직계상속 5~40%, 형제자매 상속 35~45%, 4촌 이내 55%, 기타상속 60%로 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에 따라 과세등급을 분류해 친족 관계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완화된 상속세율을 적용함이 바람직하다. 상속세 세수가 미미하고 납세자가 극히 적은 현실을 감안해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세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공평과세의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관계 당국이 예전보다 개인의 재산 정보를 보다 잘 파악하고 있고 상속재산 평가도 현실화되면서 상속세 부담이 클 수는 있다. 그러한 세 부담이 실제로 경제활동에 장애가 된다면 상속 공제 확대, 세율 인하, 과세표준구간 조정 등 상속세 과세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세 부담을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상속세 폐지 주장의 주된 목적은 기업주의 세 부담을 완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경제살리기’의 일꾼이 되도록 하자는 데 있다고 본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업을 살리는 것과 기업주를 살리는 것은 분명 다르다. 더구나 세제 개편이 주로 기업주를 살리는 것에만 이용된다면 이는 헌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조세공평부담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협력사와 동반 성장”…삼성전자, 13년 연속 ‘동반성장지수 평가’ 최우수

2‘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에…대통령실 “尹, 명태균 두 번 만났지만 친분 없어”

3 이스라엘 국방 “헤즈볼라 후계자도 제거된 듯”

4분기 영업익 10조원 무너진 삼성전자…반도체 수장은 ‘반성문’

5기아 노조, 임단협 장점 합의안 가결…4년 연속 무분규

6 대둔산 100m 절벽서 떨어진 30대 7시간만에 구조, 생명 지장 없어

7중학생들, 알몸사진 요구에 갈취, 폭행까지...학교에선 '사회봉사' 솜방망이 처벌?

8“쓰레기 아냐?” 정비공이 치운 ‘맥주캔’…알고 보니 ‘미술품’

9‘국감 증인대’ 오른 스노우 대표...‘AI 외설 합성 논란’ 진땀

실시간 뉴스

1“협력사와 동반 성장”…삼성전자, 13년 연속 ‘동반성장지수 평가’ 최우수

2‘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에…대통령실 “尹, 명태균 두 번 만났지만 친분 없어”

3 이스라엘 국방 “헤즈볼라 후계자도 제거된 듯”

4분기 영업익 10조원 무너진 삼성전자…반도체 수장은 ‘반성문’

5기아 노조, 임단협 장점 합의안 가결…4년 연속 무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