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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아이들에게 이슬람 영웅이 등장하는 액션만화 ‘99’가 최고 인기다. |
인류학자 스캇 애트런은 알카에다와 그 아류들의 존속 기반인 이슬람의 10대들을 연구한다. 나중에 2004년 마드리드 기차 폭파나 2005년 영국 지하철 폭파, 2006년 미국행 비행기의 공중 폭파 기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아이들 말이다. 애트런은 그들이 누구를 우상으로 삼고 어떻게 조직화되는지, 무엇이 그들을 결속시키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신빙성 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2001년 이후 등장한 ‘새로운 부류’의 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 경전 코란이 아니라 애트런이 ‘멋진 지하드’라고 부르는 것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에게 우상(가장 유명한 건 오사마 빈 라덴)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우상을 심어줌으로써 그 아이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정할 수 있다면, 테러의 유행을 막고 지하드(이슬람주의자들의 성전)도 함께 종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 뉴욕 소재 존 제이 형사사법대학 테러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인 애트런은 이런 것이 바로 공공외교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발상의 전환이 전장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 백악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연구 결과를 보고했을 때 딕 체니 부통령 사무실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은 어울리지 않는 준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들은 자기가 내린 결정이 자기 책임이고, 우리한테 폭력으로 대항하면 우리가 폭격을 가한다는 걸 모르나요?” 애트런은 어안이 벙벙해져 되물었다. “폭격을 한다고요? 마드리드에다? 그리고 런던에다?” 그래서 올해 1월 워싱턴에 다시 가서 국가안보국과 국토안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땐 만화책을 준비해 갔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전쟁 도발론자들과 홍보전문가들이 고안한 어떤 것도 액션 어드벤처 만화 시리즈 ‘99’에서 볼 수 있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긴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만화는 쿠웨이트의 심리학자이자 사업가인 나이프 알-무타와의 작품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동료 플로렌스 빌레노트가 작년 초에 이 책에 대한 글을 썼을 때부터 이 만화책을 읽었다. 나는 분석적인 동시에 원초적인 이유도 이 만화책에 끌렸다. 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만화책에 파묻혀 살았다. 고딕풍의 배트맨 모험에 흠뻑 빠져들고, 스파이더맨의 혈기왕성한 오만함에서 쾌감을 느끼고, X맨에 나오는 여자들의 성적매력에 도취해 자랐다. ‘99’에는 그들 모두를 합쳐놓은 뭔가가 있다. 덩치 큰 전사들과 거친 법 집행자가 공존한다. 다만 이들이 이슬람의 수퍼 영웅들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미국 터프스대학에서 임상심리, 영문학, 역사를 한꺼번에 전공한 알무타와(37)는 ‘상징’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 그는 구미의 주류만화들은 기독교 이야기와 그림에 크게 의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슬람 역사와 전통을 반영하는 수퍼 영웅들을 만들어서 안 될 것 없다고 알무타와는 생각했다. 그는 중동지역에 미국 만화책들을 배급하는 회사 데시킬을 운영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이슬람적 액션 만화책을 시장의 다른 어떤 작품 못지않게 잘 포장해줄 최고의 작가, 펜화 화가, 채색화가들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잘 안다. 이 만화책 시리즈의 가장 핵심적인 기발함은 몽골인이 1258년 바그다드를 점령했을 때 주요한 공격 목표가 장대한 도서관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몽골인들은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슬람 제국의 정복에 만족하지 않고 그 제국의 희망과 가능성을 뿌리째 뽑아서 그 미래 자체를 말살시키려 했다”고 만화책은 해설한다. “그러려면 칼과 몽둥이, 완력과 피 그 이상이 필요하다. 제국의 힘이 나오는 진정한 기반, 다시 말해 그들의 지식을 허물어야 한다.” 아바스조 칼리프 왕국의 마지막 격변기에 학자들은 연금술을 이용해 도서관에 들어있던 광대한 지식을 99가지 마법보석, 일명 ‘누어 스톤(빛의 돌)’ 속에 집어넣는다. 이 돌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그 돌들을 찾아 각각에 맞는 사람들과 일치시키면 각자는 알라의 아흔아홉 가지 이름 중 하나와 비슷한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다. 엄청난 힘을 가진 헐크 같은 존재인 자바, 빛을 통솔하는 누라, 고통의 지배자 다르, 감시자 라키프 등. 지금까지 약 열두어 명이 소개됐는데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무미타다. 자그맣고 세상 물정에 밝은 이 소녀의 이름은 ‘파괴자’라는 뜻이다. (알라 신의 99가지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을 보면 창조의 무사위르, 환상의 무타카비르, 지혜의 하킴 등 몇몇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퍼 영웅에 해당한다. 그러나 은혜의 라흐만이나 자비의 라힘 등은 만화와 어울리기에는 너무 종교적이다. 일부는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나는 라티프라는 이름의 수퍼 영웅이 어서 나오길 기다린다. 그 뜻은 불가사의.) 이 만화책의 기본 줄기는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빛의 돌’과 그 돌의 소지자들을 한데 모으려는 람지 박사와 세계 정복의 야욕을 가진 무갈 사이의 싸움이다. ‘X맨’ 같은 갈등구조다. 사실 이런 만화책들은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이용됐던 것과 똑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슬람 문명이 한때는 학문과 과학의 강건한 왕국이었다는 메시지는, 이슬람 기사들의 용감했던 과거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성전운동 선동자들이 애용하는 주제다. 알카에다의 대표적 이념가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독창적 논문의 제목은 바로 ‘예언자의 깃발 아래에 선 기사들’이다. 하지만 ‘99’의 이야기는 8~14세 아이들이 훨씬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더 영향력이 클 수 있다. 스캇 애트런이 지적한 대로 이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내에서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고픈 꿈을 꾼다. 그들은 빈 라덴과 알자와히리, 아랍 위성방송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 아이들 자신의 경험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인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 가장 영웅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99’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현재 만화책은 수만 부 배급됐지만 빈 라덴의 폭력적 메시지는 이미 수십억 명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애트런은 이렇게 말했다. “이슬람 아이들이 ‘멋진 지하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만화책이 총탄과 폭탄보다 훨씬 더 유용할지 모른다.” 이러한 만화책들은 어쩌면 미국 정부에 “지식이 힘의 진정한 기반”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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