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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번 돈 치료비로 다 날려”

“평생 번 돈 치료비로 다 날려”

현대 의학에서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 회복한다 해도 경제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치매 환자를 둔 웬만한 가정의 가계부는 쪼들리게 마련이다. 치매로 고통 받는 세 가정의 가계부를 통해 치매 질환이 가계 재정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환자 가족: 다시 회복하실 수 있겠습니까? 의사: 현재로서는 증상의 유지가 목적입니다. 환자 가족: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닙니까? 의사: …. 환자 가족: 그럼 입원은 안 하겠습니다. 얼마나 더 사신다고 고생을 시켜요. 치매 환자 가족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가장 많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가족들은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품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치매는 가족병이다. 환자만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악몽에 시달린다. 경제적 고통과 함께 동반되는 정신적 고통은 가족 모두를 절망에 빠뜨린다.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이 치매에 걸린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족의 생계가 한순간에 위태로워지고 가정불화는 덤으로 따라온다. 이런 현실은 치매노인 유기 사건처럼 사회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계가 어려운 가정일수록 고통은 더 크게 다가온다. 수입은 미미하고, 지출은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매달 증가한다. 비용 절감은 환자를 방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으로도 이어진다. 치매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은 원인적 치료가 불가능한 대표적인 질환이다. 치매의 약 10% 정도는 조속한 원인 규명과 적절한 치료로 회복할 수 있다지만, 대부분은 회복이 불가능하며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치료보다는 현상 유지에 진료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15~20년 이상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치매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고통이다. 환자의 증상이 호전된다면 비용이 얼마가 들건 관계치 않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조금씩 나빠지는 것이 최선이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 가족 대부분은 환자가 조금이라도 편안한 생활을 하길 바란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또 비용은 얼마나 들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마음만 앞선 탓에 초기에 너무 큰 비용을 소비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손을 쓰지 못하는 가정도 있다. 환자를 어디에 모실 것인가 하는 점도 고민거리다. 집이 좋을지 아니면 요양시설이 좋을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가계 부담을 생각하자면 아무래도 집에서 치료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그러나 환자와 가정 내에서 함께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간과할 수 없다. 고부 간의 갈등, 부부 간의 갈등, 형제 간의 갈등 등은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가족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족 간의 갈등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것은 역시 돈이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는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경제활동 인구로 복귀가 불가능하다. 또 치료 비용이 가족 전체의 생계와 직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환자가 저축해 놓은 돈이 많고, 부양가족이 경제적 여건이 되더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벌어놓은 돈 다 쓰고 가는’ 경우는 양호한 편이고,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어 결국에는 가계 재정을 파탄 내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직 CEO 자녀들 매달 560만원 나눠서 부담
중견 인쇄업체를 운영했던 S씨(71·남)는 6년째 전문요양시설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 중이다. 처음 요양시설에 들어온 계기는 부인의 중풍 때문이었다.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는 부인을 돌보기에는 아무래도 전문요양시설이 낫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 당시는 회사 CEO로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 시내에 있는 요양시설을 선택했다. 가족들도 서울을 벗어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00만원 정도를 정기적으로 내야 했다. 처음 4년간은 요양시설과 회사를 오가며 생활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간병인이 부인을 돌봤다. 8시간 보호에 한 달에 100만원을 지불했다. 장기적인 거주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활비는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2년 전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난 후 자신도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다. 걷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지만 아내를 돌보기에는 무리였다. 두 사람 모두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2007년 말, 자식들과 의논해 영구임대 형식의 요양시설로 옮겼다. 마지막까지 고려한 선택이었다. 새로 옮긴 요양시설은 서울 근교에 있었다. 보증금 2억원에 월 생활비는 부인과 자신의 치료비를 포함해 500만원이 넘게 필요했다. 한 명의 간병인이 두 명의 노인을 돌봐야 했기에 간병인 월급도 160만원으로 올려줬다. 부인은 당뇨까지 앓고 있어 주기적으로 인슐린 주사까지 맞아야 했다. S씨는 경영권을 물려줄 때 보유한 재산 중 요양시설 보증금을 제외하고 자식들에게 모두 상속했다. 그래서 현재는 수입이 없다. 다른 사람보다는 나은 입장이지만 매달 생활비가 500만원 이상 드는 것은 자식들에게도 부담이다. 현재는 인쇄업체를 물려받은 자식들이 나눠서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

너싱홈 운영하는 K원장 지난해만 3000만원 적자
K원장(57·여)은 대전에서 3년째 너싱홈(병원+가정의 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다. 교육공무원이었던 남편과 슬하에 1남2녀를 두었다. K원장 역시 자식과 남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를 요양시설에서 모실까도 했지만, 보증금과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다. K원장이 처음 너싱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5년 전이다. 시골에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했던 것이다. K원장은 칠 남매 중 다섯째였지만 자신 외에는 친정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형제가 없었다. 가정 형편이 다들 넉넉하지 못했다. 물론 K원장의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게다가 집에는 어머니가 혼자 계실 방도 없었다. 작은아들과 같은 방을 써야 했지만 아들은 싫어했다. K원장은 어머니를 모시면서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자신이 요양시설을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정간호학을 이수해 자격증을 따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남편을 어렵게 설득한 K원장은 남편의 퇴직금과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합쳐 조그만 집을 구했다. 그때부터 시작한 너싱홈이 지금에 이르렀다. 너싱홈을 운영한 이후 매달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4명의 환자가 생활했지만, 얼마 전 병세가 악화된 두 명의 환자가 병원으로 옮겨 갔다. 친정어머니를 제외하고는 한 명의 환자만 있는 셈이다. 세 명의 직원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번 달엔 다시 적자를 보게 됐다. 매달 직원 월급으로 360만원이 필요했다. 요리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는 너싱홈을 운영하자면 꼭 필요한 사람이라 인건비를 줄일 수는 없었다. 식비와 보건위생비 등 매달 꾸준히 나가는 돈도 60만원 가까이 됐다. 환자가 네 명은 넘어야 손익을 가까스로 맞출 수 있었다. 50만원 정도의 여유가 생겨도 외식은 꿈도 못 꿨다. 또 언제 환자가 줄어들지 모르고, 어머니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총 3000만원 가까이 적자를 봤다. 처음 너싱홈을 시작할 때는 돈을 벌어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상 유지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K원장은 “형편은 어려워도 어머니가 환자들과 어울려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치매 남편 돌보는 L씨 남편 퇴직금으로 근근이 생활
2년 전 L씨(63·여)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살았다. 그러나 지금 광주광역시 외곽에서 남편과 단둘이 생활한다.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처음에는 건망증이겠거니 했는데 상태가 점점 심해졌다. 배회 증상도 보이기 시작했다. 진단 결과는 알츠하이머.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준 치매 약을 3개월 정도 복용했다. 매달 100만원이 필요했다. 효과는 없었다. 결국 자식들과 상의 끝에 남편을 요양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남편이 완강히 거부했다. “사지가 멀쩡한데 왜 그곳에 자신을 가두어 놓느냐”고 화를 냈다. L씨는 남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남편의 요양도 겸해 친정이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 친정 근처에 남편의 퇴직금으로 작은 집을 구했다. 초기 정착금으로 2000만원이 필요했다. 생활비는 남은 퇴직금을 조금씩 나눠 썼고, 모자란 돈은 출가한 자식들이 매달 30만~40만원씩 보내주는 돈으로 충당했다. 간간이 소일거리를 해서 생활비를 보탰지만 가계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분류돼 국가보조금을 받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면 연료비 때문에 생활비가 10만~20만원 정도 더 필요했다. L씨는 최근 많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 남편과의 생활이 꼭 싫은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고립감은 떨쳐버릴 수 없다.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시댁 식구들도 얄밉다. 간혹 생활비를 보내기도 하지만 전화를 걸면 다들 우는소리부터 먼저 한다. L씨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태산이다.

치매에 대비하는 건 가족 위한 투자
치매 환자 전문 요양시설인 서울 시니어스 가양타워의 김은미 팀장은 “가족과 시설 입주자가 보통 9 대 1의 비율로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정의 가계 부담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팀장은 “입주자들 대부분이 치매나 중풍에 대해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며 “병이 발생하면 치료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 가족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치매가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리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전국에서 접수된 건수가 신청 1주일 만에 3만7000건을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청한 사람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매 예방을 위한 노력과 함께 노후를 대비한 자산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노인시장을 겨냥한 금융상품이 활발히 개발·제공되고 있다. 실버용 건강보험, 노인전용 예금상품, 상속설계 서비스, 노인성 질환 및 장기 간병 상태를 집중적으로 보장하는 간병보험상품이 증가하는 추세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도 가입을 고려해 볼 만하다. 치매 대비는 가족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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