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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One을 찾아서

Only One을 찾아서

1926년 인도 펀자브의 ‘파리’로 알려진 토후국 카푸르탈라의 왕 자갓지트 싱은 177캐럿짜리 육각형 에메랄드가 중앙에 박힌 왕관을 카르티에에 주문했다. 명품 전문가인 싱은 카르티에를 비롯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최고 고객이었다. 또 그는 아주 엄격한 고객으로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실현하는 데 직접 참여까지 했다. 그의 증손자로 현재 카푸르탈라의 왕세자인 티카라자 샤트루지트 싱은 “증조부님은 카르티에에게 어떤 것을 만들어 달라며 직접 스케치까지 해서 줬다”고 돌이켰다. “그 스케치가 아직도 카르티에의 금고 안에 보관돼 있다. 그 왕관이 카르티에가 만든 것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맞춤 주문은 소수의 부호, 주로 왕족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돈과 욕구만 있다면 누구든 맞춤형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다. 원하는 모든 제품의 세부사항을 제시해 맞춤형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씀씀이가 큰 억만장자들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예를 들면 특급요트 매출은 1999년부터 2004년 사이 80% 늘었다) 수퍼부자들이 차별화를 원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그들은 최신 모델의 롤렉스 손목시계나 페라리 스포츠카 또는 프라다 백으로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주로 진취적인 디자이너가 만들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고, 다른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맞춤 제작 상품을 원한다. “대량제조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리즈 골드윈이 말했다. 골드윈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영화제작사를 이끈 새뮤얼 골드윈의 손녀로 영화감독, 보석 디자이너, 그리고 명품전문가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다섯 가지보다 진짜 잘 만들어진 한 가지를 구입하는 게 더 현명한 투자다. 복고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돈이 많다’는 과시적인 삶에서 벗어나 개인화된 서비스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맞춤형 라이프스타일로 가는 길은 주로 남성 정장에서 시작된다. 새빌 로는 가장 유명한 고급 남성 맞춤복 브랜드다. 지금도 구미의 야심만만한 신입사원이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새빌 로 정장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남성복의 전통적인 세계를 부활시키는 데 앞장선 디자이너는 톰 포드다. 포드는 고풍스러운 스타일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구치에서 일한 적이 있는 포드는 구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죽 제품으로 1990년대의 명품 유행에 불을 댕긴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뉴욕에 자기 이름을 단 매장을 내고 명품 남성복을 선보였다. 포드는 맞춤복에 초점을 맞출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일반대중이 가질 수 없는 제품을 원하는 럭셔리 전문가들의 마지막 미개척지이기 때문이다. 톰 포드 남성 정장에는 2900달러부터 시작하는 기성복도 있지만 포드가 정력을 쏟는 분야는 맞춤 남성 정장이다. 맞춤 정장 한 벌의 가격은 최고 8600달러다. 또 와이셔츠는 350가지 색상, 35가지 천, 10가지 칼라 형태, 두 가지 커프 스타일로 제작된다. 포드의 매장은 쇼핑을 격조 높은 체험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매장 안에 집사가 있고, 맞춤 손님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기성복은 유리로 된 방에 진열돼 있다. “남성 정장은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수단”이라고 포드가 e-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든 선택이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맞춤 정장이나 맞춤 구두를 제작하려면 스케치를 하고, 재단을 하고, 손바느질을 하고, 마무리질을 하는 등 수많은 공과 시간이 든다. 이 모든 노력의 보람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 구매자에게 별도의 아무런 노력 없이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갖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초점은 디자이너나 패션하우스가 아니라 그 정장을 입는 남자 자신이다.” 다시 말해 맞춤 명품은 자기 내면의 본질을 세련되게 표출해 준다는 의미다. 이런 포드의 생각은 아주 매력적인 판촉 주제로서 고객이 맞춤 제품에 거액을 쓰도록 유도한다. 맞춤 시장에 진출한 남성복 디자이너는 포드만이 아니다. 떠오르는 디자이너 톰 브라운은 정확한 손바느질과 단순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매출 중 약 50%가 맞춤복에서 나온다. 인도에서는 타룬 타힐리아니와 로히트 발 같은 고급 남성복 디자이너 거의 모두가 맞춤복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고 있을 정도다. 그들의 부유한 고객들은 빽빽한 사교 모임 스케줄에 맞추려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의상을 수십 벌씩 갖춰 놓으려 한다. 수퍼부자들은 일단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나면 그 다음은 탈 것으로 눈을 돌린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용 요트와 비행기가 공학과 디자인 양쪽에서 더욱 탐나는 사치품이 됐다. 항공우주공학자 버트 루탄은 자기 회사 스케일드 컴포지츠를 통해 30년 이상 비행기를 주문제작 해 왔다. 그는 2004년 민간 자본으로 개발한 우주선 스페이스십원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준궤도 우주선의 소규모 편대를 만들기 위해 그와 제휴했다. 루탄은 수직 이륙이든 세계일주든 고객의 어떤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회사를 선전하는 법이 없다. 그의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는 고객이라면 이미 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트의 세계에는 월리가 있다. 고객이 원하는 사양대로 요트를 주문제작 하는 그는 가장 사치스럽고 공학적으로 잘 설계된 배를 만든다. 바다를 누비는 이탈리아 스포츠카라고 할 만하다. 최근 작품 월리아일랜드는 전장이 108m며 1000㎡ 갑판에 대형 정원과 수영장, 여러 개의 헬기착륙장 ,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어떤 시설도 갖출 수 있어 ‘기가요트’란 별명을 얻었다. 월리아일랜드는 최대 수용 손님이 24명이고 승무원 40명이 승선할 수 있으며 도서관·영화관·스파·체육관을 갖췄고, 상시 주거도 가능하다. 소유자들에게 어디를 가든 럭셔리에 흠뻑 빠진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런 사치를 누리는 대가가 약 1억2700만 유로라는 소문이 있다. 맞춤 디자인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트 쿠튀르는 한 세기 넘게 세상에 둘도 없는 의상을 원하는 부유한 귀부인들을 위해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왔다. 오늘날 디자이너 여성복의 세계는 상당히 위축됐다. 발렌티노·이브생로랑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은퇴했고, 제작 과정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하려는 고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상류사회 여성들은 아직도 샤넬, 라크루아, 크리스티앙 디오르 같은 패션하우스에 수십만 달러를 들여 우아한 야회복을 주문한다. 오랜 고객들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중동과 러시아에서 새로운 고객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새로 얻은 부를 자랑하고, 새로 찾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물질적 풍요를 추구한다. 디자인 여성복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 명품 보석 치장품이다. 그라프, 카르티에, 반 클리프 & 아르펠스 같은 보석 세공 전문기업들은 희귀한 보석에 장인의 솜씨를 가미해 명성을 얻었다. 매출의 대부분은 준보석류와 보석이 박힌 시계류의 대중시장 수요에서 올리지만 개인 맞춤형 제작주문도 받는다. 이들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수준이 뛰어난 회사들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제작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인도의 왕족 대다수가 고객인 가족 보석세공회사 젬 팰리스는 인도 전역에 지점을 갖고 있다. 보석 디자이너 문누 카슬리왈은 인도 라자스탄주 주도 자이푸르의 본사에서 고객들(볼리우드의 젊은 여배우와 사교계 명사 포함)에게 자기 가족이 공들여 만든 진기한 제품들을 보여준다. 부드러운 법랑질처럼 셔츠 소매와 잘 어울리고 색상도 일치하는 루비 커프단추 하나, 또는 다이아몬드 원석 수백 캐럿을 엮은 거대한 목걸이 하나의 가격은 수십만 달러나 한다. 카슬리왈의 고객들은 인내심이 있어야 좋은 제품을 얻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나를 제작하는 데 5년이나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내심에 대한 보답은 자신을 표현해 주는 박물관 전시품 수준의 명품이다. 흔히 보이는 카르티에 탱크 시계와 달리 모임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않는 장식품이다. 럭셔리의 진화는 맞춤형 핸드백의 부상에서 잘 드러난다. 맞춤형 에르메스의 악어가죽 켈리 백과 아스프레이의 악어가죽 케이스는 가격이 수만 달러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제품은 곧바로 알아볼 수 있고 쉽게 눈에 띈다는 사실 때문에 싫어하는 상류사회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그런 ‘최신 유행’ 백을 사려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보다는 예컨대 영국의 브라허 엠덴에 주문해서 만든, 구슬 장식이 정교한 백을 선호할지 모른다. 그런 명품의 매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선명한 로고나 그럴듯한 광고에 끌려 넘어간 패션 희생자라는 불안감 없이 개성을 잘 표현해 주는 액세서리다. 새로운 맞춤형 운동은 이제 상품을 넘어 체험으로까지 연장된다. 음식은 럭셔리 중에서 가장 덧없는 품목일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 요리사를 고용하는 것이 자연식을 하는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퍼부자들은 특이한 개인의 식성에 맞추고, 또 멋진 만찬 파티를 열기 위해 개인 요리사를 고용한다. 지난 3년 동안 미국의 개인 요리사는 22%나 늘어 약 5500명에 이른다고 미국개인요리사협회의 CEO 겸 사장인 케일 케너기가 말했다. 저명 요리사 마루트 시카는 빌 클린턴 같은 VIP 손님이 참석하는 만찬을 위해 이국적인 향취가 물씬 풍기는 메뉴를 짠다. 그가 만든 요리 중에는 인도 무굴제국식 케밥이 있다. 진주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얹고 24K 금엽으로 장식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시카는 고객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과 특별히 싫어하는 것을 피해 가는 데 능숙해 아무리 엄격한 기준에도 잘 맞춘다. “사람들의 식성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육류의 특정한 부위만 먹고 어떤 사람은 소금을 싫어하며, 어떤 사람은 아주 희귀한 칠리만 찾는다”고 시카는 말했다. 가격은 1인당 최고 1200달러다. 시카는 무엇이 그 정도 값을 치르도록 하는지 잘 안다. “사람들이 왜 일등석을 타고, 왜 귀한 와인을 마실까? 음식은 이와 같은 무형의 럭셔리다. 내가 만든 비싼 음식을 사람들이 찾는 것은 내가 몇 시간이나 며칠을 거기에 쏟았기 때문이고, 특정 고객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먹는 즐거움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맞춤형 시장의 진화 사례 중 가장 극단적인 것은 라 프티트 메종이 제공하는 개집일지 모른다. 주인 집의 축소판부터 시작해 견공의 혈통에 맞는 예술적인 스타일(예컨대 생베르나르 종을 위해서는 ‘진품’ 스위스 샬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복잡한 견공 왕궁에는 매입형 조명, 냉난방 장치, 건식벽체 내부, 맞춤형 가구 등이 완비돼 있다. 최대 3만5000달러인 이 호화판 개집은 수퍼부자와 중상층(中上層)의 돈 씀씀이가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준다. 수퍼부자들은 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데 주저하지 않고 돈을 쓴다. 대중용 럭셔리 상품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가 크게 늘면서 진정으로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은 더욱 특별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찾는다. 골드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심리가 섬세한 ‘인간미’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디자이너 의상에서는 안감에도 특별한 뭔가가 있다. 외부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개성의 표현이다. 앞면에 커다란 버클이 달린 구치 백을 드는 것과는 정반대 개념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은밀한 사치를 따라 하기 전까지는 그 말이 옳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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