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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퇴출은 ‘독약’ 깨달아야

조기퇴출은 ‘독약’ 깨달아야

▶임금피크제와 정년 연장이 적용되는 50대 대한전선 근로자들.

우리나라의 고령화 진전속도는 세계 최상위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유년인구 감소로 2017년에는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13.8%로 유년인구(14세 미만) 비중 13.2%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세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그에 상응하는 고령인구 활용 방안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는다면 생산가능 인구는 계속해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우리나라 생산가능 인구는 3370만 명에서 2050년에는 2276만 명으로 1100만 명이나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 현재 전체인구 중 생산가능 인구(15~64세) 비중은 71.7%지만 2030년엔 64.7%, 2050년에는 53.7%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은 인구 증가, 수명 연장, 경제활동 참가율 향상 등 노동공급의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업에서 중장년층 조기퇴출은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경제활력을 심각하게 위협할 요인이 되고 있다. 중장년층과 고령자의 비경제활동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난다는 것은 풍부한 지적 자산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사회 전체의 부양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과가 올 것이란 것은 사회 전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도 공감한다. 그러나 서로 이해가 갈려 실천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실천하기 힘든 요인들 가운데는 노동조합 반대와 나이가 많을수록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업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500인 이상 대기업이 300인 이하 중소기업보다 중고령 인력 활용률이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의 45세 이상 중고령 근로자 구성 비율은 19.4%며 이 중 100인 이상 300인 이하 중소기업의 비율은 25.9%였다. 이는 대기업 거대노조와 대기업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고령자 고용 연장의 대표적 시스템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임금피크제란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일정 연령(피크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삭감 또는 동결하고 정해진 기간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최근 들어 임금조정 없는 정년 연장만을 요구하는 노조와 인건비 부담을 들어 이를 거부하는 기업들의 마찰요인에도 불구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용을 연장해 노사 간 협조의 틀을 정착시켜 나가는 선도기업 두 곳의 실태를 알아봤다.
임금 덜 받는 대신 정년연장 혜택


◇한국농촌공사 = 2000년 농어촌진흥공사,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지개량조합 등 3개 기관이 합쳐져 출범한 기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합쳐 6916명의 직원이 농용수 관리를 비롯해 지하수 조사와 개발, 간척사업, 경지정리 및 농지은행 등 갖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농촌공사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지면적은 86만7000ha,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의 78%에 이른다. 한국농촌공사가 3개 기관이 합쳐져 출범한 2000년엔 3개 노조에 직원들 간에도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인 요소들이 많았으나 이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정년이 55세부터 57세까지 직급별로 다양하게 나눠져 있던 것을 58세로 통일했다. 대신 모든 직급에서 정년 1년 전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 55세 정년이었던 6급 직원의 경우 54세부터 임금이 조정된다. 임금피크제 해당 첫해는 당시 임금의 80%를 받고 그 뒤는 1년마다 10%씩 감액해 나간다. 그 대신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전수당을 받을 수 있다. 보전수당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사업장에서 18개월 이상 근무하고 임금이 10% 이상 줄어든 54세 이상 근로자에게 지원하는 제도로서 삭감된 임금의 50%를 분기별로 150만원 한도에서 지급한다. 예를 들면 매달 390만원을 받던 직원의 경우 20%가 줄어든 310만원을 받게 되지만 보전수당 40만원을 보태 350만원이 된다. 2006년부터 3년 동안 888명이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았으며 직급별 정년 연장은 1·2급은 1년, 3~5급은 2년, 6급은 3년씩이다. 이에 대해 배부 인력개발처장은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관계가 안정됐기 때문이며 한국농촌공사의 노사관계 안정화 사례는 연구논문 감이 될 것”이라며 “차등정년에 따른 갈등 해소, 고령 직원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 부여 등 여러 가지 순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공사는 이 밖에 수리시설 관리를 전담하는 시설계약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정년이 지난 직원을 3년씩 두 차례에 걸쳐 계약해 고용을 연장하는 제도다. 또 농업용수를 집중 관리하는 4월부터 9월까지 계절직 수리시설 관리원 제도를 시행해 지난해 50~70대까지의 고령자만 6609명을 채용했다.


◇대한전선 = 이 회사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은 2003년 11월이다. 같은 해 5월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신용보증기금과 함께 국내 임금피크제 실시 효시로 꼽힌다. 대한전선의 임금피크제는 한국농촌공사와는 달리 피크(정점)에 이른 연봉을 정년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도입 당시의 기준연령은 기능직 50세로, 최고 연봉은 4000만원이었던 것을 56세로 대폭 연장했다. 임금피크제 기준연령이 높아지니 정년 연장 필요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이 회사의 정년은 2006년부터 57세에서 59세로 늘어났다. 결국 56세에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고 59세에 정년 퇴직하는 것이 이 회사 직원들의 오늘의 라이프 사이클로 정착됐다. 대한전선 노사는 당초 회사 경영 위기를 정리해고로 풀려다가 머리를 맞대고 숙의한 끝에 선 임금피크제 도입, 후 정년 연장의 수순을 밟게 됐다. 임금피크제의 장점은 근로자들로서는 임금을 덜 받더라도 고용이 보장되고 회사로서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숙련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기업과 노조의 이해가 깊어지면서 최근에는 해고를 둘러싼 갈등 해결의 돌파구로 각광 받고 있다.


인터뷰 박하정 복지부 저출산고령사회정책국장


“5년 동안 정년 연장 장려금 지급”
‘새로마지 플랜 2010’. 정부가 마련한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정책 브랜드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범정부적인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각 부처와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새로마지’는 ‘새롭고 희망찬 출산에서부터 노후생활의 마지막까지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사회’라는 의미. 이 기본계획을 수립, 관장하는 보건복지가족부의 박하정 저출산고령사회정책국장은 올해부터 기업이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임금피크제를 채택할 경우 노동부에서 각각 장려금과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미국처럼 우리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를 법제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내용은? “지난 3월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 법은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시행됩니다. 근로자의 모집, 채용, 임금, 교육, 훈련, 배치, 전보, 승진 등에서 연령을 이유로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모집, 채용 부분은 내년부터 바로 시행하고 승진, 퇴직 등에서의 차별금지는 2010년부터 적용 받게 됩니다.”

-정년 연장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도 마련했다는데? “어떤 기업이 정년을 56세 이상으로 연장할 경우 노동부가 근로자 1인당 월 30만원 정도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도 일정액의 지원금을 주도록 했습니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장려금을 무기한 지급하기엔 재정상 문제가 있어 5년간만 주기로 했습니다.”
-은퇴자를 재고용한 기업들에 대한 장려책은 없는지요. “일부에서 고용보험이나 의료보험 등의 부담을 줄여달라는 청원을 해 오기도 했습니다만 우선 장려금·지원금을 주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연구과제로 계속 검토는 하겠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은퇴자, 노령자 재고용보다 ‘젊은 백수’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물론 젊은 사람들의 취업난 해소가 급선무지요. 하지만 젊은이의 일자리와 노령자의 일자리는 다르다고 봅니다.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풍부한 경험’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면 ‘단절’이라는 사회적인 손실이 발생합니다.”


김재봉 중앙일보 객원기자·tailorbir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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