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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수 논란은 없다”

“반인반수 논란은 없다”

인간의 영혼을 둘러싼 과학계와 종교계의 대격돌이 이번엔 영국에서 벌어졌다. 한쪽 진영에는 기괴한 인수(人獸) 혼합의 놀라운 신세계를 개척하려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 반대편에는 그런 괴물이 영원히 나오지 못하도록 대못을 박으려는 종교 지도자와 일부 정치인이 있다. 가장 목청을 높이는 종교 지도자는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회 지도자인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이다. 그는 지난 부활절 설교 중에 고든 브라운 총리를 강도 높게 공격했다. 소의 난자 세포에 인간 DNA를 이식하는 실험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브라운 총리가 지지한 데 대해 “(괴물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을 승인하는 격”이라고 오브라이언은 비난했다. 반대 여론과 당내 반발이 빗발치고 가톨릭을 믿는 각료 세 명이 사임 의사를 내비치자 브라운 총리는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물러나 노동당 의원들이 인수 혼성 배아 문제에 관해 “양심에 따라 투표하도록” 했다. 지난 4월 의회가 그 법안을 둘러싸고 열띤 논쟁을 벌이는 동안 뉴캐슬대학 과학자 라일 암스트롱이 문제의 혼성 배아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를 BBC 방송이 전했다.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지루한 소모전의 새로운 충돌 국면은 선정적인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에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 됐다. 하지만 이 전형적인 영국식 대결에서 양 진영이 모두 이해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배아 줄기세포 전쟁은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승자는 과학계도 종교계도 아닌 그 혜택을 누릴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쪽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신기술의 등장으로 이 오랜 논쟁의 근거는 완전히 사라졌다. 사태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암스트롱이 이끄는 생물학자 팀이 실시한 연구의 본래 목표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들은 반인반수의 괴물을 만들어낼 의사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간·골수·근육·두뇌 등 어떤 유형의 인간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할 목적이었다. 과학자들은 그런 의도에서, 배아 발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분자신호 관련 지식을 활용하려 했다. 과학자들이 이 신호들을 모두 밝혀낸다면 언젠가 줄기세포 덩어리를 필요한 조직으로 완벽하게 분화해 특정 환자에 아무런 문제 없이 이식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난다면 의사들은 대체 장기나 수족을 배양하거나 파킨슨병으로 손상된 두뇌 조직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과학자는 환자에게 이식 가능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수정 난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인간의 난자는 구하기 어려운 데다 윤리적인 문제도 따랐다. 암스트롱은 다른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이런 문제를 피하려 했다. 그래서 구하기 쉬운 소의 난자에서 유전물질을 제거한 뒤 평범한 피부 세포의 인간 DNA를 대신 주입했다. 그렇게 해서 인간 배아 줄기세포처럼 행동하는 혼성 세포가 탄생한 것이다. 가톨릭계가 표준적인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이유는 인간 배아의 인공적인 양육과 조작이 수반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브라이언 추기경을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다른 이유를 들어 새로운 연구를 반대한다. 인간과 동물의 구성요소를 결합하는 방법으로 하늘의 뜻에 반하는 해괴한 혼성 생명체를 만들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암스트롱을 비롯한 세포 생물학자들이 이 같은 혼성 세포 연구를 추진하는 동안 다른 과학자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들은 미수정 난자 중 극소수의 특정 단백질만이 피부 세포의 프로그램을 바꾸고 배아세포로 자라도록 기능한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했다. 따지고 보면 두뇌 세포나 근육 세포와는 다른 간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이다. 모든 신체 세포가 완벽하게 똑같은 유전체(지놈)를 갖고 있긴 하지만 간세포나 근육세포와 직결된 유전체 프로그램의 영역이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 각각의 경우 주요 운동인자, 다시 말해 어떤 세포를 간세포나 두뇌 세포 또는 배아 세포로 기능케 하는 하나의 또는 한 덩어리의 단백질이 있다. 줄기세포 과학자들은 배아 세포의 주요 운동인자를 해독해 따로 분리하는 방법으로 어떤 종류든 난자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단백질만 제대로 찾는다면 독자적으로 배아 줄기세포로 분화를 시작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연구는 1996년 이안 윌머트가 최초의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켰을 때 막 시작됐다. 근래 들어 유전체 연구의 첨단 분자 분석도구들 덕택에 과학자들이 수백 개의 단백질 후보를 분석해 배아 줄기세포의 주요 운동인자를 찾아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2006년 6월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가 이끄는 일본 연구팀이 가장 먼저 생쥐 피부세포를 이용한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며 2007년 11월~2008년 1월 사이 야마나카 연구팀과 미국의 하버드대 제임스 톰슨, 조지 데일리가 이끄는 두 팀이 모두 인간의 배아세포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로 인간 피부세포의 프로그램을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이 같은 새로운 연구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이 이뤄졌다. MIT의 루돌프 재니슈 연구소는 생쥐를 대상으로 이 같은 새로운 기법을 이용한 치료법 개발을 선도해 생쥐의 겸상(鎌狀)적혈구빈혈을 치료하고 생쥐의 파킨슨병 증상을 완화했다. 이 과학자들은 현재 기본적으로 어떤 유형의 세포든 배아나 난자 세포 없이도 배아 줄기세포와 다를 바 없는 세포로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배양한 새로운 세포는 엄밀하게 말해 무엇인가. 세포의 정의 기준은 기본적으로 출처가 아니라 유전자 활동 프로그램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새로운 세포를 배아 줄기세포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원래의 표본을 제공한 사람과 유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그 사람의 복제 배아세포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단어에는 호감이나 반감을 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복제’와 ‘배아’는 기피 단어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그 새 세포들을 유도 만능 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라고 부르게 됐다. 물론 유도 만능 줄기세포는 주류에 편입돼 임상시험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걸림돌이 몇 가지 남아 있다. 예컨대 현재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재프로그램된 유전자를 세포의 염색체에 주입하는 방식이지만 원치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세포의 염색체를 바꾸지 않고 주요 운동인자를 주입하는 새로운 방법이 분명 개발될 듯하다. 2~3년 뒤엔 이런 결과들이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 적용될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일어났던 근년의 줄기세포 논란 자체도 사라질 게 분명하다. 인수 혼성 방식의 연구는 과학발전사에서 ‘그런 기술도 있었다’는 주석으로만 남게 될 전망이다. 물론 일부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골수 옹호론자들(과학자와 지지자 모두)은 싸울 명분이 없어져 허전함을 달래기 어려울지 모른다. 양 진영의 열성 운동가들은 인간의 영혼을 둘러싼 투쟁이 정말 떨치기 어려운 습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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