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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입어도 서비스 반듯하다

청바지 입어도 서비스 반듯하다

▶출범식 행사에서 제복 스타일 셔츠와 청바지 유니폼을 갖춰 입은 기장들이 관람객들에게 경례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인 ‘진에어’가 출범했다. 저가항공 시장에 대형 항공사가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다. 진에어는 대한항공의 고급 이미지에 실용성(청바지)을 더했다. 일부에선 무늬만 저가항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비행기는 떴다. 진에어는 파격적인 ‘진(Jean) 마케팅’을 뒷바퀴 삼아 아시아 최고의 프리미엄 실용 항공사로 ‘연착륙’할 수 있을까.
진에어가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앞 광장에서 CI를 선포하던 지난 6월 15일 오후 2시. 휴일임에도 많은 사람이 가족, 친구와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웅장한 비행기 엔진 소리와 함께 무대 위로 가스가 뿜어지자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이틀 후 서소문동 대한항공 빌딩에서 열린 김재건 진에어 대표의 기자회견에는 여러 언론 매체가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치열해지는 저가항공사 시장에 드디어 대형 항공사가 진입했다는 점도 화제였지만, 진에어의 파격적인 마케팅이 일반인과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진에어는 청바지를 기본 아이템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실용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출범 행사 때 드레스 코드도 ‘진(Jean)’이었다. 진에어의 전 직원과 김 대표는 물론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청바지를 입고 객석에 앉아 행사를 관람했다는 후문이다. ‘진 마케팅’은 행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에어는 기장부터 승무원, 운송직원, 정비사에 이르기까지 고객을 직접 대하는 모든 직원의 유니폼을 청바지와 티셔츠, 운동화로 지정했다. 권위적인 이미지의 기장도 제복 스타일 셔츠에 하의는 예외 없이 청바지를 입게 된다.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하는 눈높이 서비스도 좋지만 고객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실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또 참진(眞) 자를 중의적으로 사용해 실용적인 가격으로 진실되고 참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도 담았다.

▶여승무원들의 ‘청바지 면접’ 모습.

대한항공은 3년 전부터 저가항공 사업을 검토했다. 지난해 10월 저비용항공사 TF가 꾸려졌고 조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출범식이 있을 것임을 알렸다. ‘진 마케팅’은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것이다. 경영진의 뜨거운 호응도 한몫했다. 김 대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적이고 경제적인 항공사라는 컨셉트로 직원과 논의한 결과 청바지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원래 청바지 외에도 50, 60개에 이르는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어 김 대표는 “청바지는 모든 계층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자유와 실용의 상징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창조적인 아이템”이라며 “저도 주말마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고 덧붙였다. ‘진 마케팅’은 회사 이름까지 바꿨다. 법인 설립 당시만 해도 ‘에어코리아’였지만 올해 초 내부 논의를 거쳐 5월 14일 진에어로 상호를 바꾼 것이다. 조 회장의 막내딸인 현민(25)씨가 일하는 통합커뮤니케이션실에서 추진했다고 한다. 4월 24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실시한 승무원 면접에서도 어김없이 청바지가 등장했다. 이날 면접에 통과한 열다섯 명의 승무원은 진에서 딴 ‘지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고객들에게 옆집 언니 같은 친근함을 선사할 계획이다. 이진우 진에어 영업지원팀장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청바지 브랜드 업체와 제휴해 프로모션을 펼치거나 고객 이름이 ‘진’이면 티켓을 공짜로 준다든지, 청바지를 입고 오면 할인해주는 등 이벤트를 통해 진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에어의 진 마케팅에서 청바지는 매개체일 뿐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실용성’이다. 청바지를 벗고 면바지를 입는다 해도 ‘실용 마케팅’의 본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병철 브릿지 래보러토리 대표는 진에어의 마케팅이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를 노린 것일 거라고 설명했다.
스필오버 효과는 한 생산활동이 다른 요소의 생산성까지 증가시켜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모 브랜드인 대한항공이 자 브랜드인 진에어를 확장하면서 서로 다른 이미지가 두 브랜드를 연결해 상승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띄는 예가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관계다. 고급 전문점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신세계백화점은 저가 이미지를 내세워 이마트를 출범했다. ‘고급’과 ‘실용’이라는 두 이미지를 이용해 이마트는 큰 성공을 거뒀고, 지금은 오히려 신세계보다 더 큰 브랜드 효과를 갖게 됐다. 메리어트 호텔과 코트야드도 비슷한 경우다. 고가의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가 중저가 브랜드인 코트야드 바이 메리어트를 만들어 고급 이미지와 저가, 실용 이미지를 겸비한 것이다. 전략이 성공하면 시장에서의 입지 확대와 사업 다각화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컨설팅 전문회사인 인터브랜드의 박상훈 대표는 BMW와 미니를 예로 들었다. BMW는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로서 최고급의 성능을 운전자에게 선사했지만, 좀 더 젊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고객에게 접근하기 위해 미니를 인수해 재브랜딩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스필오버 효과는 결정적인 실수만 없다면 성공 확률이 높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후광 효과에만 기대서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신 대표는 “결국 일관된 서비스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미국의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처음에 재미를 강조했고, 영국의 항공사인 버진 애틀랜틱은 저가를 내세웠지만 하나의 요소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질 좋은 서비스 없이는 고객의 재구매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일관성을 성공 요건으로 언급했다. 다양한 소비자와의 접점에서 같은 이미지와 컨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임이나 유류할증료 같은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김 대표는 진에어의 가장 차별화된 서비스는 ‘안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만큼은 ‘프리미엄 진’을 추구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프리미엄 실용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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