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전망’에 개미만 멍든다
증권사 전망을 믿고 주식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전망과 달리 증시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탓이다. 대부분 국내 증권사들은 ‘하반기 증시는 추세 상승으로 2000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하반기 시작부터 증시가 급락하면서 증권사들은 또다시 ‘늑대소년’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신용위기가 진정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금융 장세가 다시 촉발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국내 증시는 하반기 2050선까지 상승 가능하다고 본다.”(푸르덴셜증권) “국내 기업들의 실적 증가세가 가시화하면서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2120선에 다다를 것이다.”(우리투자증권) “중국이 현재는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물경제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어 국내 증시는 2160선까지 상승할 것이다.”(한화증권) “미국발 신용경색 우려가 완화되고 증시 유동성과 기업이익이 개선되면서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2200선까지 오를 것이다.”(동양종금증권)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미국발 신용경색과 고유가 상황이 진정되면서 하반기 증시는 2200선까지 기대된다.”(대우증권) 지난 5월 중순 이후 국내 증권사들이 증시포럼에서 내놓은 하반기 증시전망이다. 당시 대부분 증권사는 하반기 증시가 2000포인트를 넘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떨어져도 1600선은 지킬 것이란 분석이 대다수였다. 말 그대로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증권사도 있었지만 장밋빛에 가려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증권사들의 장밋빛 전망은 위축된 투자 심리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상반기 주식시장에서 손해가 컸던 개인투자자들은 새로운 기대감에 빠졌다. 개미들은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무려 2조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추세 상승’ ‘2000포인트 돌파’ ‘저가 메리트’ 등 증권사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서둘러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기대에 부풀었던 증시가 하반기 시작부터 급락하자 시장은 큰 혼란을 빠졌다. 특히 증권사들이 마지노선으로 내놓은 1600선이 맥없이 무너지면서 개미들은 패닉에 빠진 상태다. 실제 하반기 첫날인 7월 1일 증시는 장중 1650선까지 떨어지다 막판 반발매수에 힘입어 1660선을 간신히 지켰다. 하지만 이튿날 1650선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유가 급등 등 악재로 인해 폭락 장세가 연출된 것. 이날 1600선까지 밀렸던 증시는 결국 42포인트 폭락해 1623포인트로 마감했다.
3일에도 시장은 나아지지 않았다. 전날 큰 폭의 하락으로 기술적 반등이 기대됐던 증시는 개장하자마자 1600선이 무너졌다. 장 막판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1600선에 간신히 턱걸이했지만 연일 급락하는 증시에 개미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4일에는 지지선으로 믿었던 1600선마저 붕괴되면서 시장은 그야말로 파랗게 질려버렸다. 결국 하반기 시작 불과 4일 만에 증시는 100포인트(5.79%) 가까이 폭락, 증권사들의 장밋빛 전망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개인투자자 정의석(36)씨는 “하반기 증시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증권사 전망을 믿고 6월부터 주식을 조금씩 사들였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증시 하락폭이 커지고, 시장 분위기도 달라져 주식을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말했다. 이제 막 하반기의 첫걸음을 뗀 만큼 증권사들의 증시전망이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애초 증시전망에 문제가 많았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고유가 등 경제 환경 악화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너무 ‘호재 찾기’에만 집착했다는 지적이다. A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서브프라임 여파와 유가 급등 등으로 하반기 국내외 경제가 급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주요 경제지표만 살펴봐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었다”며 “애널리스트들이 꼭 부정적인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투자자들 입장에서 보면) 낙관적인 시각만 좇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도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리포트를 가지고 기관, 법인들을 상대로 주식영업을 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고객 포트폴리오에 반하거나 부정적인 리포트보다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분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했다.
증권사들의 증시전망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증시전망에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하면서 오히려 혼란만 야기한다는 것이다. 실제 증권사들이 내놓은 하반기 증시 전망치는 고점과 저점이 무려 50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등락폭으로 따지자면 25%에 달하는 수치다. 그래서 주식투자 경력이 있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증권사 증시전망이 ‘하나 마나 한 전망’ ‘믿거나 말거나 식 전망’ ‘투망식 전망’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전업투자자인 박모씨는 “주식 좀 하는 사람치고 증권사 증시전망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증시전망은 흘려 넘기고 주로 종목분석 리포트만 챙겨보는데 이마저도 참고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몸값 비싼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가 주식을 좀 안다는 소위 ‘꾼’들에게 ‘제값도 못하는 정보’ 수준으로 홀대 받고 있는 것이다. 꾼들의 지적처럼 증권사들이 ‘하나 마나 한 전망’을 내놓은 것은 사실 이번뿐만이 아니다. 과거 증권사들의 상·하반기 증시포럼, 월간 증시전망 등을 살펴보면 비슷한 전망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의 증시전망은 오발탄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2005년 증권사들은 증시가 1100~1200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증시는 1370선까지 상승했다. 반대로 2006년에는 증시가 1600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는 1400선에 머물렀다. 2007년에도 증권사들은 증시가 최고 1700선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실제 증시는 2000선을 훌쩍 넘었다. 이처럼 증권사들의 빗나간 전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투자경력이 짧은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이다.
낙관론과 비관론 교차하는 증시 최근 증시 급락에도 불구하고 증권가에는 여전히 낙관론이 우세한 상태다. 낙관론자들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 개선 추세를 감안하면 최근의 증시 급락을 오히려 절호의 투자 찬스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주가는 싼 수준에 진입해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도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보수적인 투자전략이 필요하지만 추가하락 시 저가매수를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비관론자들은 유가·환율·물가 등 대내외 악재로 투자심리마저 얼어붙으면서 증시가 전 저점인 1500선 초반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정부가 올 하반기 물가안정 차원에서 통화량 증가를 억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점도 증시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화량 억제는 증시 수급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올 들어 한국 증시의 낙폭이 미국과 유럽, 중국, 이머징마켓 등 글로벌 증시에 비해 크지 않았다는 점도 추가하락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무역적자와 경기둔화 등 경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최근 증시 급락으로 기술적 반등도 가능하지만 경기 둔화세가 확산되면서 증시는 전 저점(1537포인트)까지 밀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