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선택의 자유 누리는가”
혼다코리아의 지난 6월 판매량은 1354대였다. 수입차 업체 중 월간 최다판매 기록이다. 국내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완성차 업체 5위인 쌍용차가 1902대를 팔았으니 혼다코리아가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회사 간 판매대수 차이는 약 550대로 아직 여유 있지만 쌍용차가 안심할 순 없다. 혼다의 상승세와 쌍용의 하락세가 언제 교차점을 만들지 모른다. 사실 국내 수입자동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5만3390대로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의 5.1%에 불과하다. 혼다는 이 5% 남짓한 시장에서 올 1월 이후 지금까지 쭉 1위를 차지했다. 또 국내 진출 4년 만인 지난 5월 수입차 업계 최단기간 2만 대 판매를 달성하기도 했다. 앞서 기록은 렉서스를 앞세운 도요타로 63개월 걸렸지만 혼다는 불과 48개월 만에 달성한 것. 이 추세로 간다면 내년 초 최단기간 3만 대 판매 기록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올해 시장점유율 1위도 떼놓은 당상이다. 레전드·어코드·CRV·시빅 딱 4종류의 차로 국내 수입차 업계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혼다코리아의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은 정우영 사장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툭툭 내던지는 말투는 외국 물 좀 먹었을 것 같은 수입차 CEO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정 사장은 76년 오토바이 생산업체인 대림자동차에 입사해 2000년 사장이 됐다. 그러나 1년 후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 사장으로 바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는 2003년 자동차 사업을 위해 혼다코리아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처음 혼다코리아가 한국에 혼다 브랜드로 진출한다고 했을 때 모두들 부정적이었다. 한국 수입차 시장은 ‘고급차’ 시장이었기 때문. 시장을 주도한 브랜드는 독일과 일본의 프리미엄 브랜드였다. 대중 브랜드로 한국에 들어온 미국차 업체는 고전 중이었다. 다들 “혼다 브랜드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그런 우려를 깼다. 우려를 깬 정도가 아니라 수입차 업체에 새로운 성공방식을 보여줬다. 어떤 발상이었을까? “고객분석을 철저히 했죠. ‘소나타·그랜저 타는 사람들이 과연 그 차를 선택하고 싶어서 했겠는가?’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해본 겁니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중산층은 충분히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이걸 묻고 또 물어보면 답이 나와요.”
한국에서 중·대형차를 사는 사람이면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지적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자동차 수준이나 서비스는 그들의 눈높이를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산차를 타는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이 AS였어요. 돈이 아주 많은 최상류층 고객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능력 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인데 AS의 질이 그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친 거죠. AS 때문에 국산차를 타다가 혼다로 넘어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모든 딜러에게 서비스센터를 갖추라고 요구한 것도 그 때문이죠.” 혼다 서비스센터에 가면 서비스 어드바이저가 고객을 맞이한다. 어드바이저들은 CS(고객만족) 교육을 이수한 일종의 고객응대 전문가들이다. 이 사람들이 서비스센터와 고객 사이의 접점이 돼 고객에게 설명도 하고, 고객의 요구사항을 서비스센터에 전달한다. “기술자들은 그들만의 말하는 방식과 단어가 있어요. 보통 그 사람들이 고객을 직접 대하게 되면 설명도 어렵고, 느낌도 어색해요. 불친절하게 대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고객들은 불편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거죠. 특히 여성 운전자가 가면 더 그런 느낌이 들죠. 그걸 없애기 위해 기술자가 아닌 어드바이저가 고객을 상대하는 겁니다.” 기술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고객 입장에서 설명하는 어드바이저가 앞으로 나오자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확 올라갔다. “보통 서비스 투자를 잘 안 하는 건 티가 잘 안 나서 그렇습니다. 투자를 해도 고객이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고객들은 느낍니다. 알지 못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느낌이 모여서 고객만족이 되는 거죠.”
이런 느낌이 혼다차 성공의 원동력이다. 정 사장은 “혼다차는 타던 사람이 다시 소개해서 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구매 고객의 25%가 이미 혼다차를 타던 사람의 소개로 탄다”고 설명했다. 20명의 혼다차 소유자 중 5명은 다른 사람의 권유로 차를 산 셈이다. 정 사장이 입에 달고 사는 CS(고객만족)가 안 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우리 차가 외관이나 내장이 화려한 차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카탈로그나 광고로 우리 차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력한 것이 구전 마케팅과 시승 행사다. “차 성능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 타보고 결정하라는 겁니다. 운전을 직접 해보면 마음이 달라지거든요.” 국내에서 팔리는 혼다차 4종류는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다. 시빅은 1972년 생산 이래 1700만 대, 어코드는 1976년 생산 이래 1600만 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골고루 혜택 주는 고객행사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혼다코리아는 고객 시승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내방객 중 시승차를 타보는 비율이 높은 딜러에게 장려금도 주고, 포상도 했다. 또 미스터리 쇼퍼(일반 고객을 가장한 서비스 평가원)를 전시장에 보내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금은 내방객 중 시승차를 타보는 비율이 40%에 이르고 있다. 10명이 매장에 오면 4명은 차를 타본다는 얘기다. “굉장히 높은 수치입니다. 효과도 있죠. 시승한 사람 중 차를 사는 비율(성향률)이 20% 정도 됩니다. 쉽게 말하면 12명이 혼다차를 방문하면 5명은 차를 타보고, 1명은 사게 된다는 겁니다.” 혼다는 수입차 중 유일하게 고객 대상 골프대회와 패션쇼를 개최하지 않는다. 저마다 프리미엄을 강조하는 수입차 업체들은 앞다퉈 골프대회를 열고 패션쇼, 고급 호텔에서 행사를 하고 있다. 이제 이런 행사는 국산 대형차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혼다는 그런 값비싼 일부를 위한 행사 대신 뮤지컬 초대, 와인 선물 등 모든 고객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객 행사를 하고 있다. 이런 짠돌이 경영은 차 값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2006년 모델교체와 함께 배기량이 늘어난 CR-V만 100만원 인상한 것 외에는 차량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새로 출시한 뉴어코드와 뉴레전드는 차의 배기량이 늘고 편의장치가 향상되는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있지만 동결시켰다. 정 사장의 이런 정책은 혼다차를 “고객들이 까치발만 들면 탈 수 있는 차”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약간만 더 노력하면 선택할 수 있는 가격, 그리고 그런 노력이 아깝지 않도록 고객 만족을 줄 수 있는 차가 바로 혼다의 정책인 셈이다. 그렇다고 정 사장에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최초 가격을 산정했던 당시에 비해 환율이 20% 정도 상승했다. 혼다 본사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 요인이 생긴 셈이다. 여기에 원자재난으로 자동차용 강판 가격이 40% 정도 올랐다. 혼다차 역시 대당 50만원 정도의 인상 요인이 있다. 정 사장은 “어제까지는 다 좋았는데 오늘부터는 좀 나빠지는 셈”이라고 했다. 하반기에 일본의 대중적 브랜드가 한국에 대거 진출하는 것도 불리한 여건이다. 미쓰비시를 비롯해 닛산·도요타 등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정 사장은 경쟁사보다 자기 고객에게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이제 우리 과제는 혼다 고객층을 얼마나 깊고 단단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고객이 아니라 혼다와 함께하는 고객이 진짜 고객이죠. 이를 위해선 고객만족, 품질본위밖에 없습니다.” 혼다다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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