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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오늘 밤 병원에는 정적이 감돈다. 헬기가 착륙할 때면 귀마개를 쓰기 때문에 그 정적은 더욱 깊어진다. 우리는 ‘천사 헬기’가 내려앉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서가 아니라 우리의 발로, 가슴으로 전해오는 진동 때문이다. 이곳 이라크 제86 전투지원 병원에서 우리는 매일 죽음을 목격한다. 아무리 교전지대라 해도 숨을 거두는 사람들은 우리 삶의 일부마저 함께 가져간다. 우리는 몇 분간,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 피치 못할 죽음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우리의 일부와 함께 세상을 등진다. 등유 난로에 화상을 입은 이라크 어린이들, 보이지 않는 적에게 저격 당한 그 아이들의 엄마, 누가 쐈는지도 모르는 박격포에 목숨을 잃은 외국인 회사 직원, 멀리 떨어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여군 병사…. 오늘 그들은 우리 가슴의 커다란 부분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응급실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전화가 왔을 때 난 늘 하던 일을 되풀이하겠거니 생각했다. 우리는 눈앞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상, 즉 짜부라진 폐, 절단된 사지, 노출된 내장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영혼이 아니라 몸뚱이와 상처만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훈련 받았다. 무전 연락이 왔다. “탤런 메딕, 여기는 구급 편대. 2분 거리. IED(급조폭발물장치) 폭발로 인한 긴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 둘. 한 명은 안면과 팔다리 부상으로 위독.…”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정 위치했다. 한 명은 “덜 심각한” 환자를 위해 뒷방에 대기하고 다른 한 명은 응급 병상에 대기했다. 항공위생병이 문을 대신해 달아 놓은 청색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면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IED 폭발로 다친 미군 병사. 구출 지연, 맥박 허약, 혈압 안 잡힘, 무반응.…” 위생병은 끝없이 읊어댔다. 그의 음성은 주위 소음과 헬기 프로펠러 소리에 묻혀갔다. 돌아다보니 간호장교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쳤다. 우리 응급실에서는 환자들이 먼저 식별 번호로 불리다가 그 다음엔 군인이나 민간인, 엄마나 아버지로 바뀌지만 마지막엔 부상명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번 환자는 달랐다. 처음에는 식별 번호로, 그 다음에는 군인으로, 그 다음에는 제3 보병사단의 중위로…,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중위는 우리 간호장교 앤의 동창생으로, 결국엔 친구로 확인됐다. 그는 골반 골절, 후복막 혈종, 외상성 심장마비라는 부상명으로 불려야 했지만 앤의 대학 친구였다. 그는 앤의 마음속 커다란 부분을 떼어내 세상을 등지려 했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했다. 수혈대 두 줄을 들여놓고 그가 흘리는 피를 보충했다. 그의 기관에 튜브를 꽂고 공기를 대신 공급했다. 뛰지 않는 심장을 대신해 가슴을 눌러줬다. 그의 목 부위를 열고 터져 있는 혈관들을 집게로 집었다. 그 다음 수술실로 들여보내 개복을 하자 혈류가 전혀 없었다.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응급실에선 간호사를 교체할 여유가 없지만 앤은 명령이라고 해도 친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에피네프린 1회 추가 투여, 혈액과 FFP(신선동결혈장) 4유니트 추가… . 내가 치료 지시를 내리는 동안 앤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다. 앤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국은 그가 빼앗아 갔다. 미국의 병원에서든 전투지의 병원에서든 손을 써볼 기회도 없이 환자가 숨을 거두면 우리는 모두 뭔가 한 조각을 잃어버린 듯 허전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선 군인이 죽을 때 그 조각이 더 크다. 그는 더는 식별 번호나 부상명이 아니라 군인이고 이웃 청년이며, 다시는 저녁 먹으러 집에 가지 못하는 아빠가 된다. 같은 군인으로서 우리는 이런 환자들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갖는다. 그들의 부모나 배우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가족들은 집 문을 향해 걸어오는 군목과 전사자 처리담당 장교를 지켜보면서 잘못된 소식이길 바라지만 자신의 꿈과 희망이 부서졌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사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 스러진 영웅들을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의 심정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새벽 3시, 병원 헬기 착륙장. 보름달과 블랙호크 내부의 푸른 불빛이 검은색 시신 운반부대를 비췄다. 차렷! 우리 응급실 근무자들은 이런 일을 수시로 겪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헬기가 시동을 걸고는 밤하늘로 사라졌다. 우리의 스러진 군인과 함께. 그는 우리 중위들, 우리 동창생들, 우리 친구들, 우리 천사들 중 한 명이었다. 다시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필자는 뉴저지주 포트먼머스 기지에서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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