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월가의 마지막 쿼터백

월가의 마지막 쿼터백


헨리 폴슨(62)은 자신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유시장주의자이자 골드먼삭스 최고경영자 출신에다 미국의 보수적인 공화당 정부의 재무장관 아니던가? 그런 그가 국민이 낸 세금을 퍼부어 미 금융시스템을 살리겠다고 세상에 공표하고 있다니. 대학 시절 미식축구 스타 출신의 폴슨은 그 뒤 금융시장 위기 해결의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진 채 휘하의 대책반과 함께 또다시 주말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에게선 자신이 방금 발표한 대책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꺼림칙하지만 다른 대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이번 위기가 어떻게 발생해 여기까지 왔는지를 놓고 토론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먼저 이 어두운 밤에서 벗어나야 한다.”

밤은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옛 격언이 옳기만 바랄 뿐이다. 최근 몇 주는 확실히 1929년 10월 24일의 검은 목요일 이후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대공황, 1987년 주가 대폭락, 9·11 테러의 충격을 모두 이겨낸 투자은행들(리먼브러더스와 메릴 린치 같은 내로라하는 금융사들)이 주저앉고 말았다.

이들은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신용 위기에서 가장 최근의 희생자들일 뿐이다. 그전부터 미국 각지에서 은행과 대출업체들이 쓰러지고 미국인 수백만 명의 내 집 마련 꿈이 짓밟혔다. 지난 수 개월간 정부는 마치 솔로몬 왕처럼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지를 심판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에 대해서는 “대마불사” 판정을 내리고 JP모건 체이스가 인수토록 중재했다. 리먼브러더스는 정부로부터 구제 불가 판정을 받은 뒤 파산신청을 해야 했다. 담보 대출이 많은 주택 소유자들은 임대 전환을 권고 받았다. 미국 최대의 모기지 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구제키로 했다.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AIG는 미국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금융회사의 생사 여탈권을 쥔 이 막강한 권력자는 큰 키에 조용한 성품의 폴슨 재무장관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던 그는 2006년 워싱턴 정가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사회보장제도 개혁과 통상협정 같은 이슈들을 다룰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경제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부시 대통령이 대체로 손을 놓은 듯한 상황에서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폴슨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 금융 대통령(the investment banker in chief)으로 떠올랐다.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그랬듯이 계속 CEO들에게 최선의 전략을 귀띔해 주고 고객들에게 자금을 주선하면서 가장 좋은 조건을 맞춰주려 애쓴다. 단지 지금은 미국 납세자, 대통령, 글로벌 금융체제가 고객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폴슨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의 도움으로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워싱턴이 거의 세계의 금융수도 역할을 할 정도다. “그가 전권을 쥐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골드먼삭스 시절 폴슨의 파트너였던 로스 스미스 뉴욕대 교수가 말했다.

폴슨은 청중에게는 신경을 끊고 연설하는 스타일이다. 강연대를 향해 188㎝의 큰 키를 잔뜩 구부린 채 더듬더듬 말을 한다. 우수 보이스카우트 단원 출신의 그는 금융시장과 체제를 어르고 달래는 탁월한 조련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만능 경영자 같은 업무 방식으로 워싱턴 일각에서 불만을 사기도 했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 몇몇이 모여 회의를 한 뒤 그 결과를 기정사실로 공표하는 식이다.

“베어스턴스와 AIG의 경우 국회의원들은 부시 행정부 특히 폴슨 장관과 버냉키 의장의 결정이라는 통보만 받았다”고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의 바니 프랭크 위원장이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성향을 놓고 보면 폴슨과 버냉키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한 사람은 시카고 교외 주거지역 출신으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종파의 앞만 보고 전진하는 투자은행가이며 또 한 사람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더 차분하고 역사 의식을 가진 유대인 경제학자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팀 가이트너 총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민의 손으로 뽑지 않은 공직자들이 공개되지 않은 밀실에서 의회의 승인도 확실한 절차도 없이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주무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불안해진다. 더욱이 워싱턴 금융당국자들의 끊임없는 임기응변은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관된 패턴이 없었다”고 존 코진 뉴저지주 주지사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베어 스턴스는 살리면서 리먼은 구제하지 않았다. 시장은 어떤 원칙에서 그런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코진은 1990년대 골드먼삭스의 고위 간부 시절, 폴슨 밑에서 일하면서 그와 곧잘 충돌했다.)

민주당 전략가 제임스 카빌은 다시 태어나면 채권시장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채권시장이 워싱턴 정책에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월스트리트는 워싱턴 정책이라는 몸통을 흔드는 꼬리였다(규제완화, 자본소득세와 배당세 인하). 하지만 이제는 옛날 얘기다.

요즘엔 워싱턴이 월스트리트를 쥐고 흔든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오랫동안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의당 그래야 하듯 자연스럽게 미국 자본주의의 얼굴이 된 이 인물은 누구일까? 여러모로 볼 때 폴슨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적임자였다. 그는 골드먼에서 32년 동안 근무하며 그 권위를 인정받는 유력 회사의 기업공개를 이끌었으며 1998~2006년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그 기간에 골드먼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골드먼은 뉴욕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전설적인 지위를 누린다. 찰스 엘리스는 신저 ‘골드먼삭스의 해부(The Partnership: The Making of Goldman Sachs)’에서 “어느 금융시장을 선택하든 거의 아무런 외부 제약 없이 활동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회사”라고 골드먼을 묘사한다.

다트머스대 재학 시절 학업(파이 베타 카파 장학생)과 운동(아이비 리그 미식축구 대표팀 공격 라인맨)에서 모두 뛰어났던 폴슨은 닉슨 정부에서 백악관의 재무부와 상무부 연락담당으로 일하다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친 뒤 1974년 골드먼에 입사해 시카고에서 근무했다. 1982년 파트너로 승진한 뒤 아시아 투자은행 사업 개발을 맡아 75차례 넘게 중국을 드나들었다.

“폴슨은 친화력이나 매력 또는 특히 카리스마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고 엘리스는 썼다. 그러나 성실함, 리스크 관리에 대한 집중력 그리고 빈틈없는 일처리 능력은 누구나 알아줬다. 그가 1994년 골드먼의 경영자 자리에 올랐을 때 회사는 커다란 위기에 빠져 있었다고 리자 엔들릭이 말했다.

그 회사 출신인 그녀는 ‘골드먼삭스, 성공의 문화(Goldman Sachs: The Culture of Success)’를 저술했다. 거래에서 큰 손실을 입은 뒤 파트너의 3분의 1 가까이가 회사를 떠나고 있었다. 고위 간부들이 파트너들을 붙잡고 회사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역설하는 동안 폴슨은 핵심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자신들이 어떻게 비용을 절감해 다음 해에 흑자를 올릴 것인지 상세히 설명했다”고 엔들릭은 말했다. 1999년 폴슨을 비롯한 몇몇 파트너가 코진을 쫓아냈다.

폴슨은 골드먼의 정신을 철저히 따른다. 첫째, 돈을 많이 벌되 부자인 양 행동하지 말라(2006년 회사 지분을 매각했을 때 5억 달러 정도를 손에 쥐었지만 폴슨은 롤렉스가 아닌 디지털 트레이닝 시계를 착용한다). 둘째, 사회운동에 참여하라(자연보존단체 회장으로 2년간 일했으며 재무부 건물 3층의 널따란 집무실엔 39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킨 부인 웬디가 촬영한 조류 사진들이 가득하다). 셋째, 기업계 정치가(corporate statesman) 역할을 받아들여라(2002년 기업 스캔들이 잇따르자 그는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기업윤리의 개선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폴슨은 줄곧 공화당원이었지만 정당보다는 정책에 충실한 공화당원이었다. 골드먼삭스는 이념가나 극단적인 파당주의자에게 적당한 곳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민주당원(코진,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과 공화당원(조시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이 어울려 일했으며 이들은 그뒤 공직에도 진출했다. 2006년 봄 존 스노 재무장관의 후임자로 폴슨을 영입한 것도 볼턴이었다.

폴슨은 처음엔 망설였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그는 부시의 남은 2년 임기에 어떤 의미 있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볼턴은 법안 추진 말고도 공헌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그를 설득했다. 폴슨은 대통령 서재에서 부시를 만나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한 뒤 제의를 수락했다. 자녀가 모두 장성한 덕분에(아들 메리트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몇몇 마이너리그 구단 소유주이며 딸 아만다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기자다) 헨리와 웬디 폴슨은 워싱턴에 집을 마련해 정착했다.

폴슨은 곧바로 부시 경제팀의 수장이 됐다. 자신의 임무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매우 독특했다. 그것은 “정부의 최고 정책결정자, 대통령의 최고 경제보좌관, 최고 경제 소통자”라고 폴슨 임기 초반 재무부에서 근무했던 토니 프래토 백악관 부대변인이 말했다. 그러나 그가 취임한 지 두어 달 만에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폴슨이 발자취를 남길 가능성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신임 재무장관에게는 국회의사당의 주도권 다툼보다 더 큰 걱정이 있었다. 2006년 7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와 처음 공식 회의를 할 때 폴슨은 2009년 1월까지 미국에 아무 탈이 생기지 않는다면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6, 8, 10년 주기로 문제가 발생하는데 현재 과열 조짐이 뚜렷하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폴슨은 돌이켰다. 다만 어떤 탈이 생길지를 몰랐을 뿐이다.

2006년 중반 주택 거품이 터지면서 그 탈의 윤곽이 드러났다. 차입자들이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서 대출업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대출업체 등이 모기지를 한데 묶어 복잡한 증권을 만든 다음 다시 나누고 섞어 채권으로 매각하면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이 받아갔다. 대출기관·경영자·트레이더들은 집값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들의 거래는 거침이 없었다.

그 결과 빚더미 위에 부채가 겹겹이 쌓이고 소액의 현금이 그것을 떠받치는 형국이 됐다. 결국 2007년과 2008년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미국인 수가 늘어나면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났다. 모기지 담보부 채권 값이 떨어지고 그 채권을 토대로 한 금융상품 가격도 하락했다. 은행들은 보유지분 가치의 평가손을 반영해 외국 국부펀드로부터 새로 자금을 조달해야 했지만 그마저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또다시 적자를 기록해야 했다.

지난 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서브프라임 차입자와 뉴욕의 투자은행 그리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워싱턴의 반 정부기업들로 모두 5조4000만 달러의 모기지를 보증하거나 그에 대한 보험을 제공한다)을 연결하는 사슬이 곧 끊어질 듯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주택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띠었다. FRB는 차입자와 대출기관의 숨통을 터 주려는 의도로 금리를 잇따라 인하했다.

그리고 재무부는 폴슨의 지시에 따라 호프 나우(Hope Now) 연합을 결성했다. 주택 압류 전에 모기지를 변경하려는 업계 주도의 단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시작될 무렵엔 이미 너무 많은 도미노가 쓰러진 상태였다. 3월 월스트리트의 만년 문제아 베어스턴스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지자 폴슨은 JP모건 체이스가 FRB로부터 신용 융자를 받아 주당 2달러(나중에 주당 10달러 이상으로 수정됐다)의 헐값에 그 투자은행을 인수하도록 하는 거래를 꾸몄다.

자기 위험으로 투자한 일반 주주들을 구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폴슨은 그 계획이 자신과 월스트리트의 모든 동료가 그렇게 열렬하게 부르짖던 자유시장 철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번은 특별한 경우였다. 상업은행들이 도산할 땐 검증된 절차가 개시됐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전면에 나서 보험 가입 예금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투자은행이 도산할 때는 그에 대처할 만한 기존 규약이나 규제 틀이 없었다. 그리고 베어스턴스는 부채 규모가 막대하고 신용 디폴트 스와프(CDS: 투자손실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수백 개의 금융기관에 불똥이 튈 수 있었다. “FRB는 개입하는 게 마땅하다고 봤으며 나도 그들을 지지했다”고 폴슨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베어스턴스의 몰락으로 폴슨을 비롯한 대책반이 비상체제에 돌입한 뒤 지금까지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폴슨 재무장관을 비롯한 대책반은 올여름 내내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계속 근무했다. 지난 7월 그는 의회의 승인을 얻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구제에 나섰다. “내가 바주카포를 보유하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안다면 그것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고 폴슨은 말했다(연방정부가 그 회사들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투자자들이 그 회사들에 문제를 해결하도록 더 많은 시간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폴슨은 그 바주카포를 비교적 빨리 사용해야 했다. 8월 말 두 대기업의 재무 실태 악화로 미국 모기지 시장뿐 아니라 그들이 발행하고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수천억 달러 상당의 채권 값까지 불안정해졌다. 9월 7일 아침 미국 정부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채를 떠안고 새로운 자본을 제공하기로 합의해 사실상 국유화했다.

이번 금융위기의 독특한 성격을 감안할 때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으로선 민간 기업인 시절 골드먼에서 경력을 쌓은 폴슨이 전임자들보다 더 적격이었다. 스노는 철도회사를 경영했고 폴 오닐은 알루미늄 제조업체 알코아를 이끌었다. 폴슨은 볼턴의 지적대로 시장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뿐 아니라 권한과 권위도 갖췄다. 결과적으로 그는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활동해 왔다.

“부시 대통령은 내게 많은 것을 위임했으며 그것은 엄청난 책임”이라고 폴슨이 말했다. “그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하버드 MBA 출신인 두 사람은 지난 몇 주 동안 정기 회의 말고도 최소 하루 한 번씩 대화를 했다. 이번 위기에서 재무부가 FRB를 제치고 주도권을 쥔 한 가지 이유는 주된 문제가 FRB 체제에 속해 있는 은행에 있는 게 아니라 규제를 받지 않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투자은행은 폴슨의 관할이다. 투자은행가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은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사람의 생각, 동기, 두려움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폴슨은 이번에 자신의 능력을 모두 검증 받아야 했다. 9월 둘째 주 주말 리먼브러더스 관계자가 방문해 베어스턴스에 제공한 수준의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을 때 폴슨은 마음속으로 갈등에 휩싸였다.

새로운 선례를 만들고 이른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지 않을까 주저했던 것이다. 지원책이 있다는 것을 알면 더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폴슨이 월스트리트 시절부터 알고 지낸 리먼 CEO 리처드 풀드에게 준 사실상의 답변은 적자가 계속 쌓이니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풀드는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상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도 리먼은 베어스턴스와 달리 금융체제 전체를 위협하지 않았다. “한 번도 리먼브러더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납세자의 돈으로 도박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폴슨은 워싱턴의 한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의 거부로 리먼은 사실상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리먼의 직원들은 풀드와 폴슨의 사진을 걸어놓고 양 눈에 핀을 박아 넣었다. 리먼을 돕지 않기로 한 결정은 앞으로 금융부문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폴슨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 금융체제의 안정과 질서”가 자신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그는 말했다. 그 뒤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AIG 문제를 놓고 융통성을 발휘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 속한 이 대형 보험사는 주력 사업 분야의 탄탄한 사업부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기초한 신용 디폴트 스와프를 대량 판매했던 AIG 금융상품 사업부의 적자가 심각했다. AIG가 도산한다면 베어스턴스의 경우처럼 금융체제 전체가 흔들릴 판이었다. 폴슨은 정부가 나서 AIG를 구제하겠다고 의회 지도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구제를 표본 삼아 공격적으로 협상을 이끌어 냈다. 새로운 최고경영자를 앉히고 높은 이자로 850억 달러의 신용을 제공하는 대가로 80%의 지분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다음엔 누구 차례일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시장의 공황은 계속됐다. 투자자들은 남아 있는 멀쩡한 월스트리트 회사에도 등을 돌려 모건스탠리와 골드먼삭스의 주가가 급락하고 이들도 다른 기업과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은행들까지 서로를 믿지 못해 자본흐름이 끊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가장 안전한 투자로 여겨졌던 머니 마켓 펀드(MMF:Money Market Fund)에 대해서도 우려가 일었다. 폴슨은 바주카포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버냉키와 함께 정부 예산(세금)으로 떠받치는 기구를 세워 은행으로부터 모기지 담보 채권을 인수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의회에 7000억 달러를 요청했다. 재무부는 또 MMF에 한시적인 원금보장을 약속했다. 그러자 지난 주말엔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구제금융은 바람직하지 않고 돈도 많이 들지만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폴슨은 주장한다. “미국은 앞으로 오랫동안 주택 문제와 모기지 문제에 시달릴 것”이라고 그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안정의 회복이 관건이다.” 그러나 최근의 다른 조치와 달리 이번에는 의회의 협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폴슨은 몇 가지 걸림돌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 사람들은 폴슨의 신속한 업무처리에 익숙하지 않다. 재무부의 직원식당은 한 달 내내 주말에도 열려 있으며 참치와 땅콩버터 샌드위치가 마련돼 있다. 폴슨은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e-메일보다 전화기를 즐겨 이용한다. 직원들이 그를 ‘다이얼 머신(serial dialer)’이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불필요한 말은 별로 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바니 프랭크가 말했다.

이런 사무적인 태도와 불도저 같은 업무처리 방식은 국회의사당의 문화와 잘 맞지 않는다. 폴슨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구제금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하원의 공화당 보수파들에게서 주로 나온다. “아무리 좋게 봐도 주요 결정과정에서 의회를 따돌리고 나중에 결정된 사실만 통보한 것 같다”고 스콧 개럿 하원의원(뉴저지주, 공화당)이 말했다. 납세자가 떠안게 될지 모를 수천억 달러의 지원요청에 이미 응한 바 있는 의회가 신용불량 주택소유자 지원 등의 몇 가지 양보를 요구하지 않고 순순히 수천억 달러를 추가로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몇 달간 부랴부랴 이뤄진 결정들은 알렉산더 해밀턴(미국 초대 재무장관) 이후 역대 어떤 재무장관보다 가장 사건이 많았던 폴슨의 임기가 끝나고 차기 정부가 들어선 한참 뒤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뜩이나 할 일이 많은 폴슨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임무까지 떠맡았다.

지난 18일 늦은 오후 오바마는 뉴멕시코주에서 플로리다로 떠나기 직전 활주로에 비행기를 세워둔 채 10분간 폴슨으로부터 최근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최근 들어 두 사람은 이런 면담을 자주 했다. 폴슨은 매케인과도 여러 차례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 구제금융이 “유감스럽지만” 필요한 조치라고 거듭 강조하는 폴슨 재무장관은 미국이 한때 자랑하던 금융체제의 큰 덩어리를 국유화했으니 이제 국제사회의 놀림감이 되리란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격언대로 그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 가장 정신없이 돌아갔던 지난 한 주가 끝날 무렵 폴슨은 여전히 전화 다이얼을 돌리며 또다시 주말 비상근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엔 의회 지도자들을 만나 구제금융 방안의 세부 사항을 조율할 것이다.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따름”이라고 폴슨은 말했다.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그의 주말 비상근무 체제가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With ASHLEY HARRIS in New York, RICHARD WOLFFE in New Mexico and DANIEL STONE and JESSICA RAMIREZ in Washington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속도가 도시를 바꿀까

2‘가짜 면허 파문’ 파키스탄 항공…‘에펠탑 여객기 충돌’ 광고 논란

3뉴진스 하니가 불법 체류자?...“답변 드리기 어려워”

4美 고용강세에 금리인하 기대감↓…뉴욕 증시도 긴장

5역대 최고치 찍은 '국제 커피 지수'...커피값 어디로 가나

6‘뉴스테이’부터 ‘장기민간임대주택’까지 정부가 주도한 임대사업

7기후플레이션 심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8“계엄·탄핵정국, 환율 고공행진”...유통가 생존 전략은

9외국 큰손들이 기업형 임대주택 투자에 나선 이유는?

실시간 뉴스

1속도가 도시를 바꿀까

2‘가짜 면허 파문’ 파키스탄 항공…‘에펠탑 여객기 충돌’ 광고 논란

3뉴진스 하니가 불법 체류자?...“답변 드리기 어려워”

4美 고용강세에 금리인하 기대감↓…뉴욕 증시도 긴장

5역대 최고치 찍은 '국제 커피 지수'...커피값 어디로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