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 안 시킨다고 눈 흘겨서야
안주 안 시킨다고 눈 흘겨서야
▲경기침체로 리모델링한 남대문 상가가 여럿 비어 있다. |
많은 자영업자가 올해를 90년대 이후 최대 불황으로 꼽는다. 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 상황이라는 이도 있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75만6000명의 소상공인이 폐업 절차를 밟았다. 같은 기간 창업자 대비 폐업률은 85%에 달한다. 100명이 창업하면 85명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이들은 왜 문을 닫아야 했을까.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전국 소상공인 1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생각하는 경기 악화의 원인은 매출 감소와 내수 침체였다. 전체 응답자의 73.3%가 이같이 답했다. 이전에는 창업자 개인의 역량이나 아이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문 닫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경기 악화라는 외부 요인이 실패를 가져오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실제 창업자들의 실패·성공 사례를 잘 살펴보면 성공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의류판매점을 운영하는 L씨는 IMF 때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 전선에 나섰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장사가 곧잘 되는 듯했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나빠졌고 올해는 몇 달째 임차료를 못 내는 상황이다.
그는 “그래도 시작할 때는 생계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며 “온라인 쇼핑몰이 많아지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가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L씨처럼 생계를 걱정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무점포형 청소대행업을 하는 K씨는 요즘 경기 불황으로 적자가 이어지자 폐업을 고민했지만 당장 갚아야 할 빚 때문에 마음대로 접지도 못하고 있다.
그는 창업 당시 정부에서 정책자금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폐업하려면 전액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매달 적자가 이어져도 폐업을 못하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사철탕 전문점을 운영하는 C씨는 개고기 위생 논란과 애완견 식용 논란이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매출이 오르지 않자 석 달 전 곱창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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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 프랜차이즈 호프전문점을 운영하던 P씨는 사장이 고객을 차별한다는 소문이 돌아 인심을 잃고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안주 없이 맥주 한 잔만 주문한 사람에게는 술을 팔지 않는다며 문전박대하고 수시로 손님에게 안주를 추가 주문하라고 강요했다. 창업 전문가들은 동네 상권일수록 고객 민심 잡기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상훈 작은가게연구소 소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서는 서비스가 다소 소홀해도 음식이 맛있거나 위치가 좋으면 성공할 수 있지만 소문이 빠른 동네 상권에서는 고객의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면 필패(必敗)한다”고 지적했다. P씨 같은 창업자도 있지만 불황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성공 창업자도 있다.
이들은 매출을 높이는 데 급급하기보다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감동 서비스를 제공해 매출 상승의 기반을 다졌다. 국내 대표 프랜차이즈 업체인 놀부보쌈 가맹점 중 ㎡당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매장은 어디일까. 바로 북악터널 가는 길에 있는 정릉점(성북구 정릉 2동)이다. 업계에서 이런 위치는 중심 상권도 동네 상권도 아닌 변두리 상권으로 불린다.
가장 가까운 아파트가 2㎞나 떨어져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매장도 165㎡ 정도로 여느 놀부보쌈 가맹점보다 좁은 편이다. 하지만 최호범 사장은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줘 사장이 있거나 없거나 한결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했다. 다른 매장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직원을 채용하는데 정릉점은 정직원만 열여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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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재량껏 서비스를 펼치는 직원들 덕에 한번 방문한 고객은 꼭 다시 매장을 찾았다. 불황의 기운이 감돌던 지난 6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맥주전문점 치어스를 개업한 맹영숙 사장은 꽃게전문점을 운영하다 업종을 전환해 성공했다.
그는 월 평균 5500만원 매출에 1500만원 순이익을 올린다. 그 역시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면서 손님 이전에 직원들을 만족시키는 데 주력했다.
매장에서는 사장이라고 특별 대우 없이 직원들과 똑같이 일했다. 직원들의 근무만족도는 곧 높은 고객만족도로 나타났다. 이곳은 고객의 80%가 단골이다. 방경현 떡쌈시대 부천 소사점 사장은 가족과 함께 창업했다.
역세권이라 입지가 좋은 것도 경쟁력이지만 가족이 매장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크게 줄어 우수 매장 대열에 진입했다.
방 사장은 가족끼리 호흡이 잘 맞은 것도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원래 방 사장은 떡쌈시대 본사 마케팅팀 차장이었다. 그는 “직접 창업해 보니 아이템보다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물포장마차인 버들골이야기의 탄생 배경도 불황기 창업에서 본받을 만하다. 아동복 사업을 하던 문준용 사장은 IMF를 버티지 못하고 사업에 실패했다.
몇 천만원의 돈으로 실내형 해물포장마차를 시작했을 때 그는 음식점 경영이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미숙한 초보 창업자였다. 하지만 문 사장은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불편을 일일이 기억해 메뉴 개발, 인테리어 등에 적용했다. 버들골이야기 매장 벽면은 고객들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추억판’이다.
자칫 지저분해 보일 수 있고 관리하기 번거롭지만 고객들은 자신이 남긴 낙서를 추억하려고 다시 매장을 찾곤 한다. 또 해물포장마차인 만큼 신선도가 떨어지는 해물은 가차없이 버렸다. 그의 서비스 정신이 통했는지 1호점인 이태원점은 오후 7시 넘어 예약 없이 가면 자리 맡기도 어렵다고 한다.
창업자 대부분은 돈을 벌기에 급급해 자영업을 시작한다.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성공하는 창업자들은 창업이 ‘쩐의 전쟁’이 아닌 ‘심(心)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는 고객의 돈이 아닌 마음을 얻는 데서 갈린다는 뜻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회사 앞 ‘그 집’ 앞에 선 줄은 여전히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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