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Market View] 투자기준 0순위는‘생존 가능성’
[World Market View] 투자기준 0순위는‘생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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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거품 붕괴 모델을 곧잘 인용해 왔다.
자산 가격이 뜨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의심에서 열정으로, 다시 탐욕과 환상으로 줄달음친다는 내용이다. 거품이 꺼지고 나면 현실 부정과 공포, 좌절의 단계가 이어진다.
이 모델로 보면 요즘 글로벌 시장은 ‘공포(fear)’ 단계를 지나 ‘좌절이나 항복(capitulation)’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다우지수가 하루에 1000포인트 이상 오르내리고 원-달러 환율이 200원 넘게 출렁거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금융위기가 이미 실물경제로 전염됐다는 우려가 시장에 팽배해 있다. 상품 가격도 동반 폭락한다. 70달러 아래로 추락한 유가를 두고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대표 앤서니 볼턴은 “복합 거품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했다.
모두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주식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 냉혹한 현실, 불확실한 미래,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한다. 땅 위에서 이런 곳을 꼽으라면 포로수용소와 가장 가깝다고 할 만하다.
투자자는 두 괴물의 포로가 됐다. 첫째가 ‘정부의 포로’다. 제어되지 않은 탐욕과 돈의 홍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자초했다. 시장과 기업의 운명은 구제금융이란 네 글자로 좌우되고 있다. ‘작은 정부론’이나 ‘정부가 가장 비효율적’이란 말은 자취를 감췄다. 정부가 쳐놓은 철조망 안에 들어가 일용할 양식을 얻고자 모두가 앞을 다투는 형국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은행과 중소기업, 건설회사들이 정부에 SOS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부는 19일 재정 지출 확대, 중소기업 추가 지원, 증권시장 안정 방안, 건설업계 자금난 해소, 은행 외채 지급 보증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둘째는 ‘공포의 포로’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쓰나미가 밀려온다는 경고에 코웃음을 쳤던 투자자들이 이젠 물방울만 튀어도 진저리를 친다.
호재에는 둔감하고 악재에만 민감하다. ‘리스크 회피’가 모든 기업과 개인의 지상과제가 됐다. 전 세계 정부가 유례 없는 규모와 강도로 대책을 내놓아도 움츠러드는 시장을 되돌리지 못한다. 지난주 후반 해외 증시의 반등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가 맥을 추지 못한 것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한국의 수출 의존형 경제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걱정이 공포를 키웠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또 다른 오랏줄에 감겨 있다. 외국인 매도가 환율을 올리고, 이게 다시 주가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외국인의 포로’다.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비중이 많이 줄었다지만, 아직 27%나 된다.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 기축통화를 갖지 못한 주변국의 어쩔 수 없는 비애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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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까진 이곳을 나갈 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좌절된 뒤 부활절을 기다리고, 다시 추수감사절을 흘려 보내길 반복하다 우울증과 화병으로 몸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살아남는 사람들은 ‘냉정한 현실론자’였다.
석방될 날짜를 섣불리 당겨 잡지 않되 언젠가는 자유의 몸이 될 것이란 믿음을 잃지 않은 채 꿋꿋이 버틴 사람들이다. ‘냉정한 낙관론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포로가 된 시장이 역경을 견뎌나가는 기간을 경제학에선 ‘분쇄(grinding) 과정’이라고 부른다. 시장 참여자들의 인내심과 체력을 맷돌로 갈 듯이 고갈시킨다는 뜻이다. 주가 폭락의 여파로 기업과 가계의 재무상태가 만신창이가 되고 실물경제가 극도로 침체한다. 실업자가 늘어 소비가 급감하면서 주요 기업이 위태롭다거나 파산했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간혹 반등을 모색하던 주가는 힘없이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섣부른 낙관론자들은 나가떨어진다. 대공황 당시 이 기간은 20개월이 걸렸다. 이번엔 얼마나 갈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냉정한 낙관론자의 자세를 추슬러야 할 때다. 주목해야 할 변수도 평소와 달라야 한다.
정상적인 시장의 논리가 허물어진 지금, 주가가 기업의 수익성이나 성장성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은 예전보다 작아졌다. 생존 가능성이 제일 기준이다. 그리고 당장 이를 좌우하는 건 정부와 공포·외국인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될 것이다. 미국 새 정부의 정책, 한국 정부의 정책 전환, 시장이 희망을 회복하는 시기, 외국인의 지갑 사정 등이 어떻게 바뀔지를 잘 살펴야 한다. 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와 세계 최대 기업인 GE에 투자한 워런 버핏의 기준도 이런 게 아닐까.
[필자는 ‘중앙SUNDAY’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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