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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J’ 일본 술 표절설은 루머

진로 ‘J’ 일본 술 표절설은 루머

경제위기 속에 ‘루머 마케팅’이 기승이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전략이다. 루머 마케팅의 폐해는 심각하다. 악성 루머는 소비자들의 공포를 부르고, 이는 소비 및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최근 언론에 보도돼 파문을 일으켰던 진로 소주 ‘J’의 일본 술 표절설도 경쟁사 두산주류BG가 만든 근거 없는 루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루머 마케팅의 폐해를 점검했다.

경기 침체가 심해지고 있다. 이러다가 제2의 IMF가 오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나돈다. 그야말로 ‘공포’의 시기다. 공포는 위기를 부르고 위기는 침체를 부른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짙게 드리운 공포의 먹구름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틈타 주식시장 등에 근거 없는 루머가 양산되고 있다.

객관적이지 않은 첩보성 재료들이 인터넷을 타고 나돌면서 또 다른 공포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루머는 연예계 괴담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법 근거가 있어 보이고,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다.

전문용어가 곁들여지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수치가 등장하기도 한다. 경제 루머가 공포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이유다. 김인석 키움증권 부장은 “인터넷에 나도는 루머 가운데 대부분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루머는 그야말로 루머일 뿐이지 공포를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이 같은 루머가 왜 새어나왔는지, 출처는 어디인지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악성 루머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고, 이를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10월 초 A증권사 기업 대출 관련 관계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안건은 B건설사의 신규대출. 하지만 쟁점은 ‘대출을 해주느냐 마느냐’가 아니었다.

모기업이 있는 B건설사의 현금 유동성은 상당히 양호한 편. 신규대출의 걸림돌은 전혀 없었다. 이들은 왜 머리를 맞댔을까? B건설사는 시종일관 대기업 수준의 낮은 금리를 요구했다. A증권사가 제시한 높은 금리를 번번이 거절했던 것. 바로 이것이 문제였고, 회의 소집 이유였다. 회의 도중 기업대출팀장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높은 금리를 계속 받아들이지 않으면) B건설사에 대한 악성 루머를 포장해 뿌리라”며 “그것도 통하지 않으면 투자 리포트를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악성 루머는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 그에 따라 자금줄이 삽시간에 막혀버릴 수 있다. B건설사를 벼랑으로 몰아, 높은 금리의 대출을 성사시킬 작정이었던 것이다.

자사 이익을 위해 거래 회사의 숨통까지 조일 계산이었던 셈이다. 금융당국이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 분석보고서를 악성 루머 단속 범위에 넣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이유다. 악성 루머가 판치는 곳은 금융권뿐 아니다. 산업계도 흑색선전에 물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 침체 탓에 내수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내수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경기침체는 기업에 치명타다. 실례로 지난 9월 백화점 매출은 전년 대비 0.3% 줄었다. 올 들어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휴대전화 내수시장 규모도 최근 3개월간 25% 이상 줄었다. 그렇다고 내수 진작이 쉬운 것도 아니다.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상황에서 내수가 살아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럴 때 기업들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사를 코너로 몰아 반사이득을 꾀하겠다는 꼼수를 쓰게 되는 것.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경쟁사의 약한 곳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최근 네거티브 전략, 이른바 ‘루머 마케팅’이 판치는 까닭이다. 각종 루머로 홍역을 앓고 있는 주류업계의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9월 진로는 신제품 소주 ‘J’를 출시했다. 이는 ‘참이슬’의 대를 잇는 제3세대 브랜드로 진로의 야심작이다. 그러나 ‘J’는 환영은커녕 비난부터 받았다. 일본 주류업체 다카라주조의 JAPAN을 그대로 베꼈다는 루머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기 때문.

진로의 ‘J’와 다카라주조의 JAPAN은 모두 정면 라벨에 ‘J’라는 영문 알파벳을 배치, 얼핏 보면 흡사하다. 일반인은 언론 보도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진로는 2006년 ‘일본계 자본설’로 큰 홍역을 앓은 상황. 일본 술을 베꼈다는 언론 보도는 일본계 자본설과 맞물리면서 진로에 큰 상처를 안겼다.

문제는 이 보도가 ‘사실 무근’이었다는 점이다. 진로는 1996년 지금의 J와 유사한 모양의 소주를 일본에 수출했다. 따지고 보면 2006년 출시된 다카라주조의 JAPAN이 진로 J를 베낀 셈이 된다.

그렇다면 이 루머는 어떻게 보도까지 됐을까? 이는 경쟁업체 두산주류BG의 작품이었다. 이 회사는 영업조직으로부터 진로 J가 다카라주조의 JAPAN과 비슷하다는 보고를 받고, 다카라주조 일본 사이트까지 들어가 브랜드 로고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두산주류BG의 홍보대행사가 그럴싸하게 포장해 특정 언론에 전달, 기사화된 것이다. 1996년 진로 J와 비슷한 모양의 소주가 일본에 수출됐었다는 내용은 감춰진 채 마치 진로가 일본 제품을 모방한 것으로 보도됐다는 얘기다. 진로 J를 둘러싼 악성 루머는 이렇게 퍼졌고, 언론 보도를 접한 소비자들은 진로에 대해 ‘일본 기업’이란 의혹을 가졌다.

이 회사는 명예만 실추된 게 아니다. 경제적 피해도 상당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감산을 준비하고 유휴자산 매각 등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때에 이들은 ‘진로에 대한 악성 루머는 사실이 아닙니다. 진로는 일본 자본이 없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기업입니다’는 해명광고를 내는 데 무려 3억여원을 지출했다. 3억원이면 진로 J를 36만6000병 생산할 수 있는 돈이다.


진로 관계자는 “루머 때문에 회사의 명예는 물론 경제적 손실까지 커졌다”며 “이를 회복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손실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두산주류BG 관계자는 “우리가 진로와 관련된 정보를 흘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악성 루머로 기업이 문을 닫을 지경에 몰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 중순, 지역 쇼핑몰 업체 C사를 둘러싸고 ‘점포가 줄줄이 빠지고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다. 경쟁업체들이 흘린 악성 루머였지만 피해는 이만저만 아니다. 악성 루머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계약해지를 요청하는 점포주가 속출했다. ‘점포가 통으로 빠지고 있다’는 루머가 현실로 나타나버린 것이다.

C사 관계자는 “이러다간 쇼핑몰 자체를 운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경쟁업체가 흘린 정보에 망하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루머에 당한 기업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으로 루머를 만들어 상대방을 공격하고 이는 업계 전체로 확산된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또 다른 공포를 느끼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

경쟁사에 흠집을 내서라도 이익을 남기려는 기업들의 ‘루머 마케팅’이 결국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열경쟁이 상호 비방이나 폄하로 흐르게 되면 결국 업계 신뢰를 떨어뜨려 모두에게 해가 된다”고 밝혔다. 진정미 경제학 박사(전경련 경제자문위원)는 “지금 경제는 야생과 같다”며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하는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들은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초체력 또는 제품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이른바 ‘흑색선전 전략’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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