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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아침에 가장 잘 모인다

돈은 아침에 가장 잘 모인다

이 달의 패널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 채은미(46) 페덱스코리아 대표다. 그는 아침 시간이 뛰어난 생산성을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페덱스코리아의 첫 한국인 대표인 그는 “여성이 회사 일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도록 남성이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자신의 딸이 남의 아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도록 후원자가 되라고 남자들에게 촉구했다.

1962년 서울 생
이화여대 불어교육과·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졸업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 MBA
85년 대한항공·플라잉타이거 근무
91년 페덱스코리아 고객관리부장
95년 페덱스 서일본지역 고객서비스팀장
2000년 페덱스코리아 지상운영부 이사
2004년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관리 총괄 상무
2006년~ 페덱스코리아 대표

“아침 두 시간은 오후의 네 시간과 맞먹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어 보통 중요한 일은 오전에 처리하죠.”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대표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기상 시각은 새벽 5시에서 5시 반 사이. 종합지, 경제지에 영자지까지 신문을 챙겨 읽은 후 한 시간가량 영어 공부를 하고 나서 출근하면 8시가 조금 안 된다.

정해진 출근 시각보다 한 시간가량 이르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홍콩보다는 두 시간 이르다. 싱가포르겦뻔뮌決첸?현지 지사장보다 두 시간 먼저 일을 시작하는 셈이다.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 을 쓴 일본의 의사 사이쇼 히로시(稅所弘)는 “아침의 한 시간은 낮의 세 시간과 맞먹는다”고 설파했다.

“오전에 더 왕성하게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죠. 긴급하거나 중요한 일은 다 오전에 처리합니다. 1985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 20여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입니다. 특별한 일 없으면 저녁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퇴근해 저녁 식사도 보통 집에서 합니다.”

이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세상 없어도 11시에서 12시 사이에는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채 대표는 페덱스코리아의 첫 현지인 지사장이다. 페덱스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지 17년 만이다.

고객관리부, 지상운영부 등을 거쳤고 2006년 대표가 되기 전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관리 총괄 상무로 있었다. 이때 한국, 일본, 대만, 괌, 사이판에 근무하는 3000여 명의 페덱스 인력을 관리했다. 지상운영부 이사로 있을 땐 대부분 남성인 200명 이상의 현장 배송 직원들을 통솔했다.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관리 총괄 상무로 있을 때 도입한 직원 대상 개인 컨설팅 프로그램은 성과가 좋아 일본, 대만 등으로 확산됐다. 경제적 어려움, 결혼 생활의 문제 등을 안고 있는 직원이 회사의 경비 지원을 받아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페덱스는 국제 특송 회사라 국가 간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야 한다.

자연스레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고위직도 근무 시간 중 ‘방문 열어 놓기’, 중간 관리자를 배제한 채 이뤄지는 CEO와 일선 직원 간의 현장 미팅 등이 좋은 예다. 사무실 칸막이의 높이도 맡은 직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채 대표는 중간 관리자를 빼고 현장에서 직원들을 직접 만나보면 업무 현황은 물론 일선 직원들의 애로와 고충까지 피드백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타고난 커뮤니케이션 능력

채은미 대표가 권하는 라이프스타일

1. 중요한 일은 오전에 처리한다
아침 두 시간은 오후의 네 시간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 중요한 일일수록 오전에 처리하라.


2.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한다
하루 걸러 한 시간씩 하는 것보다 매일 30분씩 하는 게 낫다. 영어 공부가 꼭 그렇다.


3. 내 안의 열정은 성공의 연료
‘그까이거 대충’은 개그에서나 통한다. 일이든 공부든 열정을 다해 꾸준히 해야 남보다 잘할 수 있다. 잘해야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난 것 같습니다. 외국 사람의 긴 이름도 잘 기억하는 편입니다. 얼굴과 이름도 잘 매치시키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순발력도 있는 편이에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수를 꿈꿨던 사범대 재학 시절부터 교수법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래서 일찍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았죠.”

그는 명함을 받으면 그날 중 명함 여백에 만난 날과 용건을 적어 정리한다. 이때 한 번 더 보는 것이 상대방을 입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메일은 바쁜 그에게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직원들이 “사장님은 나의 멘토”라고 e메일을 보내오기도 한다. 직원에게서 “저, 지나다가 사장님 봤어요”라는 문자를 받는 일도 드물지 않다. 최근 EBS에서 CEO 특강을 하고 나서는 제철업에 종사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에게서 감사 e메일을 받았다.

그는 “회사가 어려워 절망스러웠는데 직원들에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상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특강으로 접하고야 알게 됐다”고 썼다. 그날 그는 자사 화물기에 직원 자녀의 이름을 붙이는 페덱스의 관행에 대해 소개했다. 이 회사는 항공기를 새로 구입하면 공모를 통해 직원 자녀의 이름을 붙인다.

공모를 하지만 미국 본사 직원의 자녀 이름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별러서 아들인 양재(良材)의 이름을 응모했다. “양재는 재물이 들어온다는 뜻으로 이 이름을 붙인다면 회사에 많은 재물이 들어올 수 있다”는 해설을 곁들였다. 회사는 양재를 채택했다. 양재가 대학 1학년이 된 오늘도 양재 호는 전 세계 하늘을 누비고 있다.

양재 호엔 자신의 회사 생활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가족과 일하는 엄마를 이해해 준 아이에 대한 그의 고마움이 투사되어 있다. 그의 멘토는 올해 희수(77세)인 시어머니다. 젊어서 사회 생활을 활발히 하면서도 세 자녀를 반듯하게 키운 시어머니는 지금도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는 현역이다. 그는 지휘자야말로 경영자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비즈니스여성포럼에 연사로 초청 받았을 때의 일이다. 주최 측에서 한 시간 이상 영어로 연설할 수 있는 한국의 여성 CEO를 물색했다. 일본의 비즈니스 우먼 1500명가량이 참석하는 자리였다. 그가 다양성을 주제로 한 연설을 마치자 주최 측이 패널 자리에 앉혔다. 예정에 없던 질의응답.

예상 밖의 질문들이 나왔지만 순발력 있게 유머를 구사하며 답변했다. 플로어에서 기립박수가 터졌다. 그날의 유일한 기립박수였다. 여성 CEO이다 보니 그는 중요한 자리에서 질문자로 지명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항공사 대표들을 초청했을 때도 홍일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로 장관에게 질문하라는 ‘낙점’을 받았다. 그는 이런 자리를 건의의 기회로 활용한다. 소수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를 피하기보다 생산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TV 프로그램 중 〈오프라 윈프리 쇼〉를 즐겨보는 것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더 높이기 위해서다.

“윈프리의 강점은 출연한 패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MC 중 유재석 씨도 패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죠. 윈프리가 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하는지를 주로 보지만, 영어 공부도 됩니다.”채 대표는 영어 공부에 일가견이 있다. 페덱스에 몸담기 전부터 그는 10여 년간 새벽이면 영어학원에 다녔다.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육을 전공한 것도 도움이 됐다. 서일본지역 고객서비스팀장으로 일할 땐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 일본 직원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당시 ‘좋은 매니저 상’을 받았다. 그는 외국어는 인내심을 잃지 않고 몇 년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력이 도약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여성의 걸림돌 돼선 안 돼


그는 일과 가정을 양립시킨 알파 우먼이다. 페덱스코리아의 이사 중 절반은 그보다 나이가 위다. 직원은 약 680명. ‘약관’ 스물여덟에 부장이 됐을 땐 전화를 받으면 “부장 바꾸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제가 부장”이라고 하면 “그럼 여자 말고 남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수많은 알파걸들이 ‘유리 천장’을 뚫지 못했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회사 일과 가사, 육아를 병행했다. 아들 양재가 어렸을 땐 일과 후 교육대학원에 다녔다.

국내에 개설된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에서 MBA도 했다. 그 바빴던 시절에도 그는 귀가하면 잠깐이나마 아이를 챙겼다. 그는 일 잘하는 여성 후배들이 육아 문제 등으로 회사를 떠날 때마다 아쉽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여성 인력의 사회 진출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성 인력은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입니다. 우수한 여성 인력이 사장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죠. 보육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결혼한 여성들 자신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이 번다고 회사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회사에서 집에 전화를 걸어 아기의 안부를 묻고 집안 이야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회사에 있는 동안은 업무에 매진해야죠. 기혼 여성이라고 프로 정신이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페덱스엔 내부자 우선 승진제도가 있다. 승진 기회가 있으면 내부에서 먼저 적임자를 찾는다. 연공서열도 따지지 않는다. 20대 때 그는 내부 공모를 보고 부장 승진에 도전했다. 매일 일찍 출근해 영자 신문을 들여다보는 그를 눈여겨보던 상사가 그를 격려했다. “당신같이 능력 있는 친구가 지원 안 하면 누가 하나?”

20대 여성의 부장 지원은 페덱스에서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면접관이었던 외국인 임원이 인터뷰 때 까다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모르면 회사 매뉴얼을 참조해 해결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렇게 해서 스물여덟에 최연소 부장이 됐다. 그는 회사 일과 가정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과 가정에서 다 잘할 때 여성은 빛이 난다고 덧붙였다. “남편을 비롯해 가족도 도와야 합니다. 특히 남성들은 자신이 딸이 사회에 나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후원자가 돼야 합니다.” 페덱스의 경영 철학은 사람-서비스-수익 순으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때 사람이란 기업의 내부 구성원을 말한다.

내부 고객인 구성원의 만족도가 높으면 서비스 수준이 경쟁사보다 높아지게 마련이고, 고객이 그 서비스를 이용하면 수익은 오르게 돼 있다는 믿음이다. 선순환이다. 이런 철학이 어필해 페덱스는 해마다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0위권에 랭크된다.


여성적 리더십은 세심한 배려

세심한 배려는 여성적 리더십의 특성이다. 여성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에 여성이 더 유리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항공 등 서비스 산업은 남성보다, 부드럽고 세심한 여성에게 더 잘 맞습니다. 콜센터 근무자의 경우 전화로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선은 화면을 향한 채 타이핑을 해야 합니다. 멀티플한 업무죠. 한국 여성은 잠재력이 많은데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가 부족해 지레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채 대표는 올해 회사에서 ‘파이브스타(Five Star) 상’을 받았다. 29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페덱스 맨 중 매년 40~50명의 우수 임직원에게 주는 상이다. 재직 중 한 번 받기도 어려운 이 상을 그는 5년 만에 다시 탔다. 2001, 2003년에 이어 세 번째 수상. 여간해선 받기 힘들어 지사장 급 중에도 이 상을 못 받은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채 대표는 이화여대 불어교육과 81학번이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가장 먼저 취업 추천 의뢰가 들어온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프랑스 유학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당시 이화여대에서 가장 큰 강의실이었던 문리대 건물 414호실에 앉아 그는 기도를 했다. ‘유학도 못 가고, 교수가 되기는 틀렸지만 훗날 학교를 찾는다면 박수를 받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이때 한 기도가 더러 생각났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지난해 페덱스코리아 대표가 되고 나서 그는 특강을 하기 위해 모교를 찾았다. 특강 강사인 만큼 학교에 플래카드가 걸렸고, 강의 앞뒤에 박수가 터졌다. “훌륭한 교수가 됐다고 한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박수받겠습니까? 살다 보니 이렇게 20여 년 만에 이뤄지는 기도도 있더군요.”

페덱스코리아는 2006년 한국일보가 주는 바른외국기업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인사겵뗍?컨설팅 업체 휴잇 어소시엇츠가 뽑은 한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대 기업에 3회 연속 선정됐다. 페덱스 본사는 미국 테네시주의 작은 도시 멤피스에 있다. 페덱스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비행기를 보유한 항공사다.

보유 항공기는 670여 대. 페덱스가 띄우는 비행기 때문에 멤피스의 하늘은 밤에도 훤하다. 멤피스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채 대표의 꿈은 항공 특송 분야의 1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가 이끄는 페덱스코리아는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취항 항공사 최연소 부장(28세), 한국인으로서 첫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관리 총괄 상무(42세), 외국계 특송업체 첫 한국인 지사장(46세) 등 경력이 화려하지만 그는 아직 배가 고픈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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