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로 공연예술의 신세계 활짝 열다
‘난타’로 공연예술의 신세계 활짝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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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기획사는 벤처정신 없이는 꾸려갈 수 없습니다. 제조업과 달리 흥행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벤처정신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죠. 단적으로 ‘난타’라는 비언어극은 제가 생각해 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는 “공연기획사가 어떻게 벤처냐”는 물음에 자신이 개척한 비언어극(non-verbal perfor mence) 1호 ‘난타’를 들이댔다.
‘난타’는 부엌에서 요리사들이 식칼·국자 등 다양한 주방 용구를 사물놀이 리듬에 맞춰 두드리는 연극이다. 대사가 없어 비언어극이라 불린다. 1997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한 후 99년 한국 공연물로는 최초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했고, 2004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그에 앞서 2000년 서울 정동에 전용관을 마련했다. ‘난타’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은 700억원이 넘는다.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 규모. 이 중 60억원 이상을 전용관 세 곳에서 벌어들인다. 나머지는 지방·해외 공연 수입이다.
수익률은 무려 40%대에 이른다. 다른 창작 뮤지컬로 까먹기도 해 PMC프로덕션 전체 수익률은 이보다 낮다. 송 대표는 “다른 창작 뮤지컬이 내는 적자는 일종의 연구개발(R&D)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난타’는 PMC의 캐시 카우,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는 대학로의 전용 소극장은 R&D센터인 셈이다.
‘난타’는 가장 한국적인 사물놀이를 세계화한 것이다. 리듬 음악을 연극으로 전환하기 위해 그는 두드리는 행위에 결혼식 피로연 준비라는 스토리를 입히고, 요리사들에게 섹시가이, 지배인의 조카 등 캐릭터를 불어넣었다. ‘한국의 장단’ 사물놀이로 ‘스텀프’ ‘탭 덕스’ 등 외국의 유명 비언어극과 차별화하는 한편 ‘주방에서의 요리’라는 익숙한 상황을 설정해 보편성을 획득했다.
비언어극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학습하기 위해 뉴욕으로 ‘스텀프’ 견학을 보내면서 그는 스태프들에게 “‘스텀프’와 비슷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마당에 검증된 남의 작품을 모방한다면 자칫 아류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사가 없는 비언어극도 과연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97년 가을 ‘난타’를 초연할 당시 개막이 임박하자 호암아트홀 측에서 대본을 들고 오라고 했다. 비언어극이니 대본이 있을 턱이 없다. 그는 고심 끝에 극장 관계자들을 연습실로 초대했다. 연습의 열기를 확인하고 돌아간 후로는 더 이상 “대본을 보자”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타악기로 변신한 주방 용구들이 쏟아내는 리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송 대표는 난타의 성공 요인으로 비언어극이라는 장르, 패밀리 쇼의 특성, 끊임없이 ‘난타’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마케팅 등을 꼽았다.
“비언어극이라 해외로 나갈 수 있었고, 해외 관광객을 겨냥한 국내 전용관도 마련할 수 있었죠. 또 난타를 보고 난 후 반응은 초등학생이나 경제학 박사나 똑같아요.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감동을 받죠. 가족끼리 봐도 모두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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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네트워크도 한몫했다. PR을 위해 만난 방송국 PD와 기자들은 배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해외에서는 지구촌에 깔려 있는 외대 동문을 십분 활용했다.
외대 아랍어과를 다니다 만 그는 20년 만인 96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기업체에 손을 벌려야 할 땐 배우 출신 송승환이라고 하면 사장이 호기심에서라도 만나줬다. ‘난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상업화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는 모든 연극이 ‘난타’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난타 같은 공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난타’ 비즈니스는 전방위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강남의 전용관에서 상연 중인 뮤지컬 ‘어린이 난타’는 ‘난타’의 파생상품이다. 내년 여름엔 ‘난타2’를 선보일 계획이다.
같은 사물놀이 리듬을 사용하지만 ‘난타’와 드라마도, 캐릭터도 다르다. 난타 컵, 난타 티셔츠 등 캐릭터 상품도 판다. 모 게임업체는 난타 게임을 개발 중이다. 요식업계 사람들과는 난타 레스토랑을 구상 중이다. ‘말 없는’ 비언어극 ‘난타’가 브랜드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
전용관은 생존의 기반이다. 특정 극장에서 고정적으로 공연하면 인건비, 세트 제작비 등 비용이 절감된다. 무엇보다 외국인 관광객을 관객으로 흡수할 수 있어 수입이 안정된다. ‘난타’ 전용관을 찾는 관객의 80~90%가 외국인 관광객. 송 대표를 만나기 전날 오후 기자가 ‘난타’를 다시 보려고 서울 정동의 전용관을 찾았을 때도 4분의 3쯤 찬 객석의 대부분을 중국·일본 관광객이 차지했다.
“전용관의 필요성은 절대적입니다. 전용관이라야 외국인들이 찾을 수 있고,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도 포함시킬 수 있죠. 이 점은 브로드웨이의 ‘캐츠’ ‘코러스 라인’ ‘오페라의 유령’ 등도 마찬가지예요. 10년 이상 롱런하는 공연은 관객의 70, 80%가 관광객입니다. 전용관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부터 애초에 내수시장을 바라보고 만든 게 아닙니다.”
PMC프로덕션은 창작 뮤지컬로 로열티 수입도 올리고 있다. ‘달고나’를 일본 어뮤즈 엔터테인먼트사에 라이선스 판매한 것. ‘맘마미야’는 아바의 노래로만 만들어졌지만 ‘달고나’는 70, 80년대 우리 가요 20곡 정도로 만든 뮤지컬이다. 일본 무대엔 일본 배우들이 선다. 스토리만 살릴 뿐 노래도 일본 노래를 쓴다. ‘대장금’도 이런 방식의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달고나’는 창작 뮤지컬이 상품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당초 소극장에 올렸을 때 1억원 정도 적자를 봤다. 작품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시장성도 있어 이듬해 재공연을 했다. 평가가 좋았지만 겨우 수지를 맞췄다. 3년 후 1000석짜리 대극장 버전으로 수정해 다시 올렸다. 이번엔 몇 억원의 흑자가 났다. 올 연말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소극장은 일종의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험해 보고 나서 성공 가능성이 크면 손해를 보더라도 더 투자하고 가능성이 희박하면 중단하죠. 대극장으로 옮기는 것이 곧 투자입니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송 대표를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선구자(pathfinder)로 규정한다. 그는 공연계에 비언어극이라는 길을 냈다. 우리 연극을 들고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간 것,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것, 그 브로드웨이에서 1년6개월 동안 장기 공연을 한 것도 그가 국내 처음이다.
국내에 전용관을 만든 것도, 외국 관광객을 공연 관객으로 끌어들인 것도 그가 하기 전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다. PMC프로덕션의 전신은 환퍼포먼스라는 개인 기업이다. 이 프로덕션에 그는 방송 출연료를 털어 넣고 월말이면 직원들 월급 주느라 카드깡을 했다. 주식회사 PMC프로덕션으로 전환하자 자본이 안정되고 체계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송 대표는 증시가 좋아지면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할 생각이다. 투자를 받으면 번듯한 전용극장을 갖고 싶다고 했다. 임차해 쓰고 있는 영화관 지하의 ‘난타’ 전용관은 외국 총리 등 VIP를 맞기엔 민망하다고 덧붙였다. “전통 기와로 입구를 장식한, 한국을 대표하는 자체 전용극장을 짓고 싶습니다. 서울 땅값이 비싸 큰돈이 들겠죠. 그래서 수익성이 낮아지는 문제는 한식당을 열어 대처할 생각입니다.”
돈은 얼마나 벌었을까? 그는 방송과 연기만 할 때보다 수입은 오히려 줄었다고 했다. 대신 월급을 타는 지금이 훨씬 안정적이다.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땐 ‘내가 별로 한 일도 없이 이 돈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사를 외우지도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사람들과 회의하는 게 일이니까요. 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되더라도 공연 제작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겁니다. 공연 제작자는 기획·홍보·마케팅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연출과는 또 다르죠.”
그는 명지대 뮤지컬학과에도 적을 두고 있다. 주당 9시간을 강의하는 전임교수. 연기와 공연 기획·경영을 가르친다.“재미있어요. 강의도 연기와 비슷합니다. 배우가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면 교수는 학생들에게 지식과 노하우를 습득할 때 맛보는 감동을 줘야 합니다.”
오전엔 회사에 나와 일을 보지만 오후 일과는 요일마다 다르다. 화·금요일엔 강의를 하고, 다른 날은 사업상 미팅, 특강 등으로 채워진다. 토·일요일 오후엔 미니시리즈 촬영장으로 향한다. 밤엔 주로 창작 뮤지컬 연습실에 있다.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자질은 젊었을 때부터 두드러졌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을 받은 ‘에쿠스’의 앨런 역을 하면서 텔레비전 쇼 ‘젊음의 행진’ MC를 봤고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도 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빚 없이 사는 것이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외갓집 문간방살이를 한 적도 있다.
전세금을 빼줄 수 없어 그의 집에 세 들어 살던 남의 식구까지 외갓집으로 옮겼다. 그의 집은 네 식구, 세 살던 집은 다섯 식구였다. 그 바람에 문간방 두 개 중 큰 것이 그 집 차지가 됐다. 건넌방을 독차지하던 주인집 아들이 작은 문간방으로 밀려난 것이다. 인생 역전. 집안의 몰락은 충격적이었다.
빗나갈 수도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사는 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난타’덕에 빚 없이 사는 꿈은 이루어졌죠. 이제 PMC를 수익 많이 내고 봉급도 대기업만큼 주는 탄탄한 회사로 만들려고요. 작년엔 직원들과 공연 제작·마케팅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문화산업에 뛰어들려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축적한 노하우를 전수하려고 합니다.”
PMC프로덕션이 거둔 성공의 배후엔 이광호 공동대표가 있다. 12년 동업자로 충남방적 오너 출신이다. 송 대표와는 고교동창. 이 대표는 제조업 출신이라 보수적이다. 그 덕에 제작비 지출이 알뜰하다. 동업의 원칙은 수익을 5 대 5로 나누고 서로 합의하지 않은 일은 벌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주 구성과 공식적인 주식 수가 어떻게 바뀌든 우리끼리는 5 대 5예요. 회사에 도움 될 만한 일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으면 안 합니다. 동업이 성공한 것은 서로 하는 일이 달라서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는 저와 만나기 전 연극이나 뮤지컬을 거의 본 적이 없을 걸요? 지금도 웬만한 공연은 보다가 잡니다. 반면 저는 회계장부를 안 들여다봅니다. 서로 상대방이 하는 일을 알았다면 간섭하려 들고 다퉜을지도 모르죠. 물론 서로 믿으니까 맡길 수 있었죠.”
송 대표는 국가 브랜드 관리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호주처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이 나라는 정부고 기업이고 단 두 장의 사진만 씁니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와 캥거루죠. 오페라 하우스는 문화국가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캥거루는 자연친화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줍니다. 반면 다이나믹 코리아나 하이 서울은 추상적이에요.”
그는 국가적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문화산업이라고 했다.
“문화산업은 원자재도 굴뚝(공장)도 필요 없습니다. 문제는 국내 시장이 작다는 건데, 이것도 수출로 돌파할 수 있어요. 한류를 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가능성도 검증됐죠. 그러면 국가적으로 지원도 해야 하는데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이 전체의 1%도 안 됩니다. 문화를 수출하는 기업엔 인센티브를 줘야 합니다. 극장 등 인프라도 부족합니다. 지자체들이 뉴욕의 극장보다도 화려하게 극장을 지어놨지만 공연을 하려면 조명·음향 장비를 싣고 내려가야 합니다. 창작 인력, 기획·경영 자원도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최근 우리 영화가 부진한 것도 제작 편수에 비해 인력이 달리기 때문이죠. 이대로 가면 한류도 비관적입니다.”
넌지시 직능대표로 국회에 들어가거나 문화정책을 맡아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전혀 없습니다. 여러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할 생각은 없어요. 재미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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