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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했는데 출근하지 말래요”

“합격했는데 출근하지 말래요”

갓 졸업한 대학생이 취업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내년 2월 대학을 졸업하는 P(남·25)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최종 면접을 본 회사의 인사 담당자였다. 전화를 건 담당자는 “지난주 열린 긴급 임원회의에서 채용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미안하다. 채용 취소뿐 아니라 감원까지 해야 할 상황이니 이해해 달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P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 이 회사는 매출액 500억원대 중견기업이다. P씨와 함께 출근을 기다리던 15명 최종합격자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됐다.

감원 불씨가 취업 시장에 옮겨 붙었다. 4, 5년 전부터 이미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던 채용 시장이 요즘에는 마땅한 수식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라는 게 취업 준비생들의 얘기다. 얼마 전 대기업 금융 계열사에 최종 합격한 K(남·24)씨는 “내년에는 경기가 더욱 안 좋아질 거라는 전망 때문에 다들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 정보도 절친한 몇몇만 공유한다”며 “이제 정말 내 갈 길이 바쁜 상황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취업 전선’을 좇느라 수업에 빠지는 학생이 많아 학교에서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인터넷 카페 ‘취업 뽀개기’에서는 ‘올해 (취업) 못하면 못한다’는 식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회원은 “답 없다. 무조건 올해 취뽀(취업)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 중소기업 임원은 “대기업은 몰라도 중소기업이 지금 있는 사람들 안 자르고 비용을 아끼는 방법은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 뿐”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전력을 비롯한 몇몇 공기업과 한국타이어, GM대우 같은 굵직한 대기업들이 하반기 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채용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카더라’ 정보만 믿고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맘때 늘 하반기 채용을 하다 올해 채용공고를 내지 않은 대우건설은 “여름에 뽑은 120여 명 인턴을 내년부터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라며 “좋은 인력을 선점하려는 것이지 자금난으로 채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정확한 인사 일정을 밝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합격 발표일이 연기되는 일이 있긴 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 취업 준비생들은 “애초 발표한 것보다 채용 인원을 줄인다는 소문이 연일 떠돈다”며 불안해 했다. 효성그룹은 처음에 공지한 최종 합격자 발표일보다 일주일 늦게 합격자를 발표한다고 해 취업 준비생들의 원성을 샀다.

회사 측은 “애초 공지를 번복한 적이 없으며 처음 공지한 날짜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인사 담당자가 구두로 “며칠 정도 걸릴 것이다”고 말한 것이 기정사실처럼 된 것 같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은 서류심사 다음 단계인 인·적성 검사를 본 지 한 달 넘도록 결과가 발표되지 않아 취업 준비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 가려고 다른 대기업 시험을 여러 번 포기했다”며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말한다. 이 기업 홍보 담당자는 “경기가 워낙 급변하다 보니 검토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경영 전략을 세우는 문제이지 채용 인원 변동 때문에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 채용업체 임원은 “불확실한 때일수록 기업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취업 준비생들은 ‘일희일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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