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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카리스마’ 쿠바산 고급 시가의 세계

‘멋과 카리스마’ 쿠바산 고급 시가의 세계

일전에 쿠바에서 택시를 타고 아바나를 둘러보는 동안 기사가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한 쿠바인이 지옥에 가 보니 사람들이 나라별로 분류돼 있었다. 이날의 고문은 끝에 못이 박힌 막대기로 매질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있는 지역은 모두 고통스러워하는 울부짖음으로 아비규환을 이뤘지만 쿠바인들만 유독 쥐 죽은 듯 조용하게 바깥 쪽으로 길게 줄지어 있었다. “무슨 일이죠?” 신참이 물었다. “뻔한 얘기 아니겠어.” 고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목재와 못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두어 시간 뒤 쿠바 국회의사당 건물 맞은편에 있는 파르타가스 공장의 VIP 시연실(試煙室)에서 시가를 피워 문 뒤 끝부분이 동그랗게 하얀 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우스갯소리가 퍼뜩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시가 코이바.

10여 명이 둘러앉아 신제품 시가 글로리아 쿠바나 글로리오소스를 맛보는 동안 푸르스름한 빛을 띤 짙은 향의 연기가 방 안에 퍼져나갔다. 그 자리에는 파르타가스 공장의 힐다 바로스라는 활달한 여성 공장장과 직원들, 영국의 쿠바 시가 독점업체 헌터스&프랑카우의 이사들이 있었다.

길다란 로부스토(약 17㎝) 스타일로 특별 제작된 그 시가는 역시 일품이었다. 모양새가 곱고 담뱃잎을 싼 종이의 반들반들한 옅은 갈색 광택이 고르게 타 들어가면서 맛좋은 크림 향을 퍼뜨렸다.

이것은 ‘지역 특산품’ 2008년산 판매분 중 일부였다. 개별 수출시장용으로 개발된 특제품 시가를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가가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2만5000개만 생산하기 때문에 금방 동이 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언제 시판될지를 묻자 바로스는 1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팀이 지난해 11월에 이미 제조를 마쳤다고 대답했다. 내가 재차 시기를 묻자 그녀는 자신이 어찌 알겠느냐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아바나 사람 특유의 반응을 보였다.

시가는 근 1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상자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쿠바에서 1년 동안 생산되는 시가는 1억2000만 개 안팎이다. 그중 5분의 1 정도가 인기 절정의 몬테크리스토 브랜드 제품이다. 품질이 좋아 맛을 예측할 수 있는 시가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시장의 전문 애호가들 쪽에서 일어났다.

글로리아 쿠바나 같은 부티크 시가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아바나에서 생산되는 시가 중 부티크 제품으로 분류되는 것은 6%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지역 특산품을 비롯한 한정판 제품도 포함된다. 하지만 바로 이 시장에 시가 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는 듯하다. 몬테크리스토 서브라임은 최근 시장에 출시된 2008년 한정판 3종 중 하나다.

두어 대 피워본 바로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시가였다. 먼저 배 불리 식사를 한 다음 피워야 하고 그 뒤에는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쿠바에 머무르는 동안 다른 2종의 한정판 모델도 음미할 기회가 있었다. 쿠아바제 시가와 파르타가스제의 작지만 맛이 강한 ‘시리즈 D 넘버 5’였다.

이 짧은 로부스토(10~15㎝)는 20분간 진한 향을 강하게 내뿜는다. 실내 흡연이 어려워지면서 그처럼 작은 시가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그러나 적어도 쿠바에서는 실내 흡연이 허용된다. 시가 공장들에선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다. 엘 라기토에서도 신임 공장장인 미겔 브라운이 코이바 란체로를 권했다.

길고 가늘며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시가다. 이 공장에서는 오로지 코이바 시가만 생산한다. 다른 시가 공장과 달리 엘 라기토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아바나의 컨트리클럽이었던 자리의 벨 에포크 맨션에 위치한 공장이다. 나는 브라운이 이곳의 책임자가 된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여기 오기 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H 어프만 공장의 책임자였다. 시가 업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지역사회에서 정치활동을 했다. 아바나의 역사 중심지를 복원하도록 여론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브라운은 이제 시가 업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일을 떠맡고 있으며 이미 시가 생산량을 1년에 100만 개 늘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코이바는 물론 혁명 이후 탄생한 최초의 진정한 시가인 아바나스 중 단연 첫손에 꼽힌다. 경호원 중 한 명이 피우는 시가 맛에 반한 피델 카스트로가 이 브랜드를 직접 개발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코이바는 검정과 오렌지색 라벨, 불순물을 제거하는 추가 발효과정, 그리고 가격으로 차별화된다.

코이바 생산량은 1년에 1200만 개 정도로 추정되지만 액수로는 두 배 가까이 팔리는 몬테크리스토 전체 매출액보다 많다. 그리고 내년에 출시되는 코이바 그란 리저바는 벌써부터 흥분과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3년 전에 시작됐으며 최소 3년간 숙성된 담뱃잎으로 시가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일이 브라운의 손에 맡겨졌다. 최소 5년간 숙성된 담뱃잎으로 시가를 생산하는 일이다. 리저바 시가는 맛이 비단처럼 부드럽다. 따라서 숙성기간을 늘린 것이 어떤 효과를 낼지 지켜보는 것도 재밋거리다. 코이바 그란 리저바는 내년 2월 이후에나 시판될 예정이며 15개들이 5000상자만 한정 판매된다. 일정을 맞추는 데는 문제가 없을 듯하다. 게으름뱅이 케이스 생산자의 변명이 브라운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 시가 5選
코이바 시글로 VI - 중간과 강한 맛 사이의 환상적인 시가.
로메오 이 줄리에타 - 쇼트 처칠형(약 18㎝ 길이)이며 중간 맛의 향기로운 시가.
오요 드 몬테레이 에피큐어 에스페샬 - 고전적인 로부스토(15㎝)를 약간 길게 변형해 새로 내놓은 전문가용 시가.
몬테크리스토 페티트 에드문도 - 작지만 강한 맛.
펀치 더블 코로나 - 자주 즐기기에는 너무 크지만 두 시간 동안 부드러운 맛을 음미한다.



최고의 시가 판매점은?
1. 런던 다비도프
2. 런던 버번 하우스의 던힐
3. 제네바의 다비도프
4. 제네바의 라피 시가레스
5. 쿠바 아바나의 파르타 가스 공장 직영매장


NICK FOULKES



Maintaining the Right Moisture


맛과 품격을 담는 시가 상자


대부분의 취미가 그렇듯이 시가를 피우는 데서 얻는 만족감만큼이나 그것을 즐기는 데 필요한 장구를 마련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능성뿐 아니라 장식효과도 뛰어난 시가 저장상자는 종종 시가 애호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품목으로 손꼽힌다. 포르셰의 저장상자(Design 50 Stick Carbon Fibre Wood Humidor)는 시가를 50개까지 보관하며 습도와 온도 조절장치가 내장돼 있다.

반짝거리는 흑색탄소 섬유 소재는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멋진 포르셰 자동차를 연상케 한다(2995달러, porschedesign. com).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에어룸 휴미도르스사(社)는 유명한 캐비닛 스타일의 시가 저장상자 르비어(The Revere)를 선보였다. 호두나무·벚나무·참나무 또는 마호가니를 이용해 수공으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맞춤 제작한다.

모서리의 각을 깎은 유리 덮개, 안쪽 끝까지 완전히 열리는 서랍, 문 틈새를 막는 장치, 칸막이 조절이 가능하며 아래에 케이스 저장공간이 있는 선반을 갖췄다. 작은 팬이 소리 없이 돌아가며 오아시스II 휴미디파이어가 습도를 항상 70%로 유지한다. 시가 저장용량은 25상자 정도(3695달러부터, heirloomhumidors.com).

스위스의 미셸 페레누드는 마호가니와 유리를 이용해 사람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시가 저장고를 개발했다. 원래 호텔과 시가바용으로 제작됐지만 그리 넓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가정에 설치해도 무난하다. 첫 제품은 스위스 로잔 팰리스 호텔의 고급스러운 흡연실에 설치됐다. 맞춤 제작이 가능하고 내부 습도가 완벽하게 조절되며 시가를 1만 개까지 보관할 수 있다(8만3000달러에 배달과 설치하는 비용은 별도, michel-perrenoud.ch).




Where There's Smoke...


커터 없으면 시가도 없다


시가를 피우려면 먼저 커터로 끄트머리를 잘라내야 한다. 쿠바제 고급 시가를 피우는 흡연자라면 격에 맞는 커터 하나쯤은 갖추는 게 좋다. 엘로이의 고전적인 2R 시가 커터는 보석상 카르티에의 의뢰로 개발됐다. 광택 없는 강철을 이용해 C자 형태로 만들어 무광 마감을 했다(172유로, eloi.net). 거숀(Gershon of New York)은 혹멧돼지 엄니로 커터를 만든다.

금속부에는 14금 옐로 골드를 사용했다. 모두 수공으로 제작돼 비슷한 모양이 하나도 없다. 조각 장식과 다이아몬드 장식뿐 아니라 로즈 골드 모델도 있다. 로즈 골드는 순금과 구리 합금을 섞어 만든다(1227유로, gershonlimited.com). 13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 S. T. 뒤퐁은 명품 라이터로 유명하지만 시가 커터(Iconic Diamond Head Pattern cigar cutter)도 만든다.

이 양날의 단두대 스타일 커터는 프랑스에서 생산되며 팔라듐으로 마감됐다(406유로, st.dupont.com). 그러나 시가 커터의 백미는 ‘던힐 메타 카타리나’ 시가 전문가 키트다. 가죽 장정 케이스 안에 여행용 시가 저장상자, 원형 시가 커터, 커터 주머니, 미니 시가 케이스, 터보 라이터가 담겨 있다.

커터와 주머니는 덴마크의 난파선(Frau Metta Catharina von Flensburg)에서 인양한 220년 묵은 순록 가죽으로 만들었다. 검정 진흙이 난파선을 뒤덮어 보호막 역할을 했다. 던힐은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가죽으로 한정판 세트 15개를 제작했다(4937유로, dunh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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