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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70년 걸어온 ‘영원한 청년’

외길 70년 걸어온 ‘영원한 청년’

쉰셋에 의대를 설립했다. 예순셋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이 대학의 초대 총장을 맡았다. 납북 당한 큰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그가 세운 병원을 중흥시키고 5개의 병원 체인으로 성장시켰다. 백낙환 백병원·인제대 이사장 얘기다. 여든둘의 이 현역은 부산 해운대에 짓고 있는 여섯 번째 백병원을 아시아 허브 병원으로 키울 꿈에 부풀어 있다.

"의료를 산업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의 질이 동양에서 가장 높아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깨었지만 우리가 미국 의학을 직수입해 의술은 일본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백낙환 백병원·인제대 이사장은 “의료를 산업화하고 시장도 개방해 의료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면 인구 대국인 중국의 환자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부유층이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나라입니다. 14억 인구의 1할만 받아도 그게 어디입니까? 의료 시장을 개방하면 지금 외국으로 나가는 환자의 발길을 돌릴 수 있을뿐더러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인도, 중동 등 외국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과 더불어 의료 사보험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백 이사장은 의료 브랜드 백병원의 창업 1.5세다. 설립은 그의 큰아버지인 고(故) 백인제 박사가 했지만 5개의 병원 체인으로 키우고 인제대를 설립해 이를 뒷받침한 것은 그다.

인제대는 백병원 인력 풀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백병원을 모태로 급성장 중인 대학이다. 백 이사장은 “백병원을 여러 개 설립한 가장 큰 목적이 인제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제대 운영비의 60%를 병원 수익금으로 충당합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들보다 등록금이 싸죠. 등록금 수준도 학생들과 의논해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등록금을 둘러싼 갈등도 없습니다.”

인제대는 당초 의대로 출범했다. 인제대라는 브랜드는 백병원의 창립 이념인 ‘인술제세’(仁術濟世·인술로 세상을 구한다)에서 왔다.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이름과 발음이 같다는 점도 고려됐다. 백 이사장은 건학 이념에 인덕제세(仁德濟世·어짊과 덕으로 세상을 구한다)를 추가했다.

의료인 백인제는 오래전 작고했지만 이렇게 해서 병원과 대학으로 ‘환생’했다. 백인제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백 이사장의 아버지 백붕제 변호사와 함께 북한군에 납북됐다. 1937년 장폐색증 수술에 상부장관(上部腸管) 감압술(減壓術)을 세계 최초로 시행한 백 박사는 당시 명의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그러나 이 시술은 1940년 미국의 왕겐스틴이 학계에 먼저 보고했다).

사람들은 “백인제 앞에 백인제 없고 백인제 뒤에 백인제 없다”고 칭송했고 일본과 만주에서까지 그를 찾아왔다. 백 박사는 혈액은행을 국내에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해방 후 백 박사는 그동안 모은 재산을 털어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을 맡았다.

우리나라 현대의학의 개척자였던 백 박사는 1899년생이다. 생존했다면 109세. 백 박사가 납북됐을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백 이사장은 이 선각자의 시신이라도 수습하려고 철원까지 갔었다. 훗날 월북 인사들과 함께 숙청된 것 같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 ‘식민지 청년’ 백인제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일본인 밑에서 일하지 않으려면 의사나 법관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경성의전에 진학한 그는 그러나 3·1운동에 가담했다가 퇴학 당한다. 그 후 복학이 허용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의사면허를 받기 전 2년 동안 무보수로 일해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 그가 운영한 병원엔 ‘백인제외과의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지인이었던 춘원 이광수를 비롯해 당대 지식인이 거의 모두 일제의 강압에 굴복해 성을 바꾸었지만 백인제는 끝까지 버텼다.한국전쟁 후 백병원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백병원을 재건한 사람이 백낙환 이사장이다. 의대 진학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백낙환 이사장이 말하는 ‘하우 투 브랜드’


개인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일편단심으로 한 가지 일에 전심전력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



정직·성실·근면해야 한다
진부하지만 동서고금의 진리다. 이 세 가지야말로 인생의 성공을 여는 열쇠다.



자신만의 이상을 품어야 한다
이상은 삶을 값지게 만든다. 그러나 실천력 없이 마음에만 머무르는 이상은 무의미하다.


그 후 부산(53세), 서울 상계동(63세), 일산(72세), 동래(75세)에 백병원을 잇따라 개원했고, 부산 해운대에 1000여 병상 규모의 백병원을 기공(81세)했다. 남들이 노후를 설계하는 나이에 그는 인제대를 세웠다(53세). 해운대 백병원에 대해서는 “중국·동남아 등 세계의 환자들이 찾는 아시아의 허브 메디컬 센터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백 이사장은 새벽형 인간이다. 여든둘의 고령에도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조깅·운동·등산을 하고 병원이나 학교로 향한다. 근무 장소는 요일마다 다르다. 월요일엔 서울 백병원, 화요일은 격주로 오전엔 일산 백병원, 오후엔 김해 인제대학교, 수요일은 부산 백병원-인제대, 목요일은 인제대, 금요일은 오전엔 상계 백병원이나 동래 백병원, 오후엔 서울 백병원에서 근무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엔 13년째 경영자 독서모임에 나가고, 토요일엔 밀린 독서를 한 후 오후에 안동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전국 5개 백병원과 김해의 인제대를 매주 순례하는 것이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것은 외과 보고. 그는 48년 전 자격을 취득한 외과전문의다.

62년엔 골반내장전적출술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일요일이면 북한산에 오른다. 40년 이상 한 주도 거른 적이 없다.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된 몸은 감기를 모른다. 결근도 조퇴도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밤엔 10시 전에 잠자리에 든다.“건강이야말로 본원적인 경쟁력입니다. 친구 중에 절반 이상이 떠났습니다. 건강해야 오래도록 일할 수 있죠. 마음 같아서는 20년은 더 뛸 수 있습니다.”

등산도 운동으로 치면 유일한 취미가 독서다. 소설, 역사서, 철학책, 경영서 등을 주로 보는데 1년에 70권 이상 읽는다고 했다.
인제대의 교훈은 정직, 성실, 근면이다. 이 세 가지는 백 이사장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그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길을 걸은 힘이다.

“가훈이 ‘고지식하게 살자’입니다. 약지 못해, 평생 미련하리만치 고지식하게 살았습니다. 정말 멋없이 살았죠. 교훈도 이 세 가지로 정했는데, 조금 진부하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강조해서인지 학생들이 대체로 정직합니다. 일례로 시험 때 부정행위에 대해 우리 학교는 아주 엄격합니다. 다행히 학생들이 잘 따라줘 학습 분위기가 좋습니다.”

백 이사장은 12년간 인제대 총장을 지냈다. 경영과 교육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자질로 그는 열정을 꼽았다. 열정이 빠진 경영이나 교육은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1989년 의과대학으로 문을 연 인제대가 종합대로 승격하면서 그는 예순셋의 나이에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초대 총장에 임명됐다.

그러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이었던 학생회가 그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했다. 재단이 학교재산을 사유화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학생 대표에게 학교 경리장부를 모두 공개했다.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들은 일주일 만에 농성을 풀었다. “병원이든 학교든 투명경영을 해야 한다는 게 나의 확고한 경영 원칙입니다.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모든 장부를 공개할 수 있어야죠.”

97년 대학교육협의회의 전국총장회의에서 그는 총학생회 혁신안을 제시했다. 평균평점 2.5 이상인 학생에게만 총학생회 간부 피선거권을 부여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결의안이 채택됐고, 그에 따라 인제대는 이런 내용이 담긴 학칙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일부 학생이 이 조항을 무효화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학교 측의 승소로 끝났다.

그해 인제대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이 학점 미달에 걸렸다. 출석도 미달이었다. 그는 학칙에 따라 이들을 제적시켰다. 기획실장 방을 점거하고 조직적으로 반발하던 학생회는 두 달 반 후 짐을 쌌다. 이 사건 후 인제대엔 면학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2000년 그는 총장직을 사임했다.

재단의 일원이 학교 운영에 오래 관여해서는 대학의 혁신도 발전도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백병원을 중흥시키고 이어 4개 병원을 설립했지만 그는 개인 재산이 별로 없다. 물욕이 없는 것은 집안 내력으로, 어릴 적부터 돈을 버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북한에도 병원 짓고 싶어요”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이야 돈 걱정 안 하고도 살 만하겠다, 들어오는 돈의 70, 80%를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등을 위해 쓰죠. 장학회도 서너 곳 관여합니다.” 그는 ‘가진 자’에 지식인도 포함시킨다. 지식인이 가진 지식을 나누는 것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것이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도 없다.

“다들 대학까지 보냈으니 큰 재산을 물려준 셈이죠. 손자·손녀가 열인데 공부하는 비용은 내가 대겠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죠. 재산 물려주는 건 안 합니다.”

장남 계형씨는 그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됐다. ‘백병원’이지만, 그는 백씨가 꼭 병원 경영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건 옛날 생각이에요. 좋은 분, 믿을 만한 분이 맡으면 됩니다.”서울 백병원 이사장실엔 백인제 박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팔순의 백 이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백 박사는 여전히 50대다.

세월이 흘러 숙질 간에 나이가 역전된 것. 신생 국가였던 조국에 자신을 통해 인술제세·인덕제세의 뜻을 편 이 선각자에게 시선이 가면 백 이사장은 마치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자네, 그동안 잘해 왔어.’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해운대 백병원도 완공해야 하고, 북한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병원을 짓고 싶습니다. 운동을 일편단심으로 열심히 하는 건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죠.”

인생의 길잡이였던 큰아버지와 아버지를 앗아간 북한에 대해서는 원한이 사무치지 않을까?

“오래전 이념의 포로가 되어 집단으로 저지른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원한을 품을 일은 아니죠. 나는 남북이 노력하면 평화롭게 통일할 수 있다고 봐요. 우리의 경제력을 걱정하는데 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동포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 인도주의에 어긋납니다. 우리만 통일을 못하고 있잖아요. 통일이 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고, 선진국도 됩니다.”

지난해 봄 그는 자서전을 냈다. 제목을『영원한 청년정신으로-오직 일편단심으로 내가 걸어온 길』이라고 달았다. 이 책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생물학적인 나이는 여든이 넘었지만 나의 정신력과 추진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은 아직 젊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고 싶은 나의 마음은 그래서 욕심이 아닌 현실이다.’

후세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고 그에게 물었다.“정직하게 한 길을 걸은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이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서양 속담처럼 정직은 과연 최선의 방책일까?“정직하게 살면 적어도 밑지지 않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정직하게만 사느냐는 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둘러대는 구실일 뿐이에요. 내 경험에 비춰 정직하게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너무 부리거나 사심이 끼어들어 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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