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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Investor] 잘나가던 사모펀드의 추락

[Global Investor] 잘나가던 사모펀드의 추락

지금은 애석하게도 끝장이 났지만 ‘대상승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투자상품을 꼽으라면 사모펀드(PE)였다. 모든 대형 투자기관이 여기에 돈을 쏟아 부었다. 윌리 서튼이 말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무장강도였던 그의 재판에서 판사는 “서튼씨! 왜 당신은 늘 은행을 텁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서튼은 “재판장님, 은행엔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서튼처럼 요즘 사모펀드 투자자들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모펀드의 수익률은 엄청났다. 컨설팅업체 케임브리지 어소시에이츠에 따르면 1986~2006년 사모펀드 수익률은 인플레를 감안해 연 평균 11.23%에 달했다.

그런 비율이라면 10년 후 원금이 189%로 불어난다. 어떤 기금이라도 홀딱 반할 만한 수익률이다. 그러나 사모펀드 운용회사들이 그런 수익률을 얻으려면 고수익 채권 형태의 막대한 차입과 우호적인 주식시장이 필요했다. 대체로 사모펀드의 운용 방식은 이렇다. 부실 기업을 물색한 다음 고수익 채권 발행으로 그 기업을 인수해 경영을 개선한 뒤 주식시장에서 다시 매각해 차익을 얻는 것이다.

명심할 것은 사모펀드 회사들이 한때는 LBO(차입매수) 방식의 인수 전문회사로, 또 그들의 고수익 채권은 정크본드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금융공학 기법을 활용했다. 예컨대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고수익 채권을 발행해 그 수익금을 특별배당금 형태로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업모델의 작은 부분이었다. 핵심은 고수익 채권과 기업공개(IPO)에 있었다. 최근의 신용위기 발생 전까지만 해도 그 두 가지는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사모펀드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기업들은 부채 비율이 높다. 또 경영실적이 좋던 시절의 고평가된 금액으로 인수한 기업들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대공황 이래 경제가 최악인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조합이다. 요즘은 증시 객장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다. 이론적으론 사모펀드 회사들의 기업 인수 기회가 널려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기업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인수한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는 훨씬 더 어렵다.

경제 위기 확산으로 투자자들이 잔뜩 겁을 먹고 있기 때문에 정크본드를 신규로 발행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채권을 발행한 회사들은 엄청난 부채 상환 부담에 시달린다. 사모펀드 사업은 차입 자금에 의존한다. 예일대 기금의 투자 책임자 데이비드 스웬슨은 만약 투자자들이 사모펀드 회사들처럼 막대한 돈을 빌려 S&P 500 기업 펀드에 투자한다면 그 수익률이 대부분의 사모펀드 회사들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요점은 사모펀드에 돈을 맡기는 평균적 투자자는 엄청난 차입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예일대 기금은 사모펀드에 투자해 연간 30%를 넘는 수익을 거둬 왔다. 그러나 스웬슨은 반드시 가장 우수한 사모펀드 회사들에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기업들의 경영실적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며, 규모가 너무 크지 않은 사모펀드 회사들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정말로 얼마나 힘들고 오래 지속될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사모펀드 회사들은 각종 모호한 기법으로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모펀드의 손실 규모는 한동안 은폐될 수도 있다. 2000년 초의 불경기는 3년간 지속됐고, 그 전의 불경기는 4년 동안 이어졌다. 몇 년간 사모펀드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한 자릿수였지만 재앙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를 듯하다. 한편 주요 사모펀드 시장에선 제2의 시장이 형성된다.

필자 개인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바이아웃 펀드(사모펀드 중 부실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구조조정이나 다른 기업과의 인수합병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수익을 내는 펀드)들은 현재 40~50%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다. 리먼브러더스는 보유한 사모펀드 지분을 명목 가치보다 50% 할인된 가격으로 매각해야 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그것도 상황이 정말로 위태로워지기 전의 얘기다. 요즘은 사모펀드에 투자한 저명한 기금들도 사모펀드 지분을 팔아 치우거나 비중을 줄이려고 애쓴다. 이런 기금 중에는 하버드대 기금과 듀크대 기금, 그리고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 기금)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수자들이 몸을 사린다.

과연 그런 사모펀드들의 명목가치가 현실적으로 타당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학 기금인 하버드대 기금의 시장가치는 지난 6월 30일의 370억 달러에서 10월 말 24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이제 한 시대가 끝났다. 한때 사모펀드 회사는 가장 명석한 MBA 소지자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사모펀드 회사인 KKR의 헨리 크래비스 회장과 블랙스톤 그룹의 스티브 슈워즈먼 회장은 뉴욕과 런던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됐다.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 슈워즈먼의 환갑 잔치는 새 시대를 알리는 행사였다. 2007년 블랙스톤 그룹을 증시에 상장하면서 그가 개인적으로 거둔 수익은 무려 6억77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올해 블랙스톤은 손실을 냈고, 한때 35달러였던 주가는 요새 4.65달러에 불과하다. 향후 3~4년간 사모펀드는 8~12%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차입 자본을 이용하지 못하는 한 영광의 시절은 영원히 끝난 듯하다.

[필자는 월스트리트의 저명한 투자 전략가로, 헤지펀드인 트랙시스 파트너스를 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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