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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경제 전망 ‘미네르바’ 불렀다

엉터리 경제 전망 ‘미네르바’ 불렀다

험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난해 말 내로라하는 우리나라 경제연구소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지금 이들이 내놓은 주가, 환율, 경제성장률, 기름값 수치를 보면 자괴감이 든다. 이들 기관의 전망을 믿고 주식시장에 돈을 넣었던 수많은 투자자, 경영 계획을 짰던 기업들은 지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한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얼굴 없는 ‘미네르바’를 ‘경제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우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최고의 경제 두뇌 집단인 연구소들이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일러스트:박용석·parkys@joongang.co.kr

'경제성장률 5% 이상, 종합주가지수 1600~2150선, 원-달러 평균 환율 920원, 무역 흑자 140억 달러.’

지난해 말 우리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 민간경제연구소, 금융권이 전망했던 2008년 한국 경제의 모습을 종합해 본 결과다. 아무것도 맞힌 것이 없다. 틀려도 너무 틀렸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4.2% 달성이 사실상 어렵다. 연초 1850대로 시작한 주가(코스피 기준)는 최저 890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1100~1200대에 걸쳐 있다. 원-달러 평균 환율은 지난 3분기 1060원, 4분기엔 1300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100엔당 900원 미만일 것이라던 원-엔 환율은 60%나 올랐다. 무역수지는 흑자는커녕 적자 규모가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경제 전망, 경기 예측’이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 추측’을 남발한 셈이다.

경제 전망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돌발변수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까지 고려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너무 큰 탓”이라고 해명했다. 그들은 “장기적 경제 전망은 원래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 일은 시간 낭비”라는 워런 버핏의 말을 스스로 뒷받침하는 듯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3곳이 넘어갈 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나”하는 항변도 있었다. 그나마 한 양심 있는 경제 전문가는 틀린 전망을 내놓은 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전망 자료를 내놨는데, 운이 없었을 뿐인가?

“원래 전망은 틀리는 법”이라며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올해 또 내놓은 전망치를 보고 내년 경영과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 정확도가 85%쯤 되는 날씨 예보가 몇 번 틀리면 사단이 나면서, 국가와 기업과 가계의 재산과 직결된 경제 전망에 우린 왜 이렇게 관대한가?

여기서 잠시 ‘미네르바’ 얘기를 해보자. 연말이면 많은 방송·언론사는 ‘올해의 인물’을 뽑는다. 경제 분야만 놓고 보면, 호황일 땐 후보가 많아진다. 재계 순위가 확 올라간 기업 CEO, 놀라운 수익률을 올린 펀드매니저, 주가가 급등한 상장사 대표…. 하지만 올해 그런 인물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와중에 돋보이는 이가 하나 있다.

주부들까지 이름을 알지만, 아무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 바로 ‘미네르바’다. 올해 그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인터넷 다음의 토론방인 아고라에 그의 글이 올라오면 조회 수는 기본 5만 건을 넘겼다. 댓글은 많게는 1000개가 넘게 달린다. 네티즌은 그를 ‘경제 대통령’ ‘교주’로 불렀다.

그는 올 초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10월의 원-달러 환율 폭등을 예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다소 왜곡된 부문도 있다. 그가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언급한 것은 9월 10일이다(리먼은 9월 17일 파산신청을 했다). 산업은행이 인수 의사를 철회한 날이다. 남은 것은 ‘파산신청’이나 ‘구제금융’인데, 그는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예측했다.

정작 그가 명성을 얻은 것은 환율 때문이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1030원대이던 8월 중순 1100원대로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고, 적중했다. 10월 초엔 1400원대를 넘어 1500원대 돌파를 전망했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이때 미네르바는 “정부가 한·미 통화 스와프를 통해 300억 달러 이상을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0월 30일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발표했다. 주가 예측에서도 제도권 애널리스트에게 압승했다. 그는 종합주가지수가 1300대이던 9월 중순, 적정주가를 1010~1235로 제시했다. 애널리스트들이 ‘바닥과 저점 매수’를 독려하던 때였다. 주가는 이후 938까지 떨어졌다. 네티즌들은 그가 11월 중순 ‘주가는 500까지 내려간다’고 한 예언(?)에 주목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30~40% 가격 조정’을 예측해 현재까지는 어느 정도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틀린 전망도 있었다. 물가가 대표적이다. 그는 올 중순 내내 ‘하반기 물가 폭등’을 점쳤다. 원자재 값이 오를 것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결과적으론 틀렸다.



보기도 민망한 황당한 전망들

반면, 제도권에선 엉터리 전망과 예측이 쏟아졌다. 돌아보면 너무나 황당한 얘기가 많았다. 지난해 말 당선이 유력했던 어느 대통령 후보는 “내년 주가가 3000포인트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전망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누군가는 그의 말을 믿었을지 모른다. 증권사들은 “내년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호황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며 2500 돌파도 가능하다고 했다.

언론은 순진하게 이를 받아썼다. 새 정부에 자리 잡은 고위 관료들은 “6% 성장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 은행은 “부동산 시장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모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확산되던 지난해 11월 “단기적인 위축 요인일 뿐”이라며 경제성장률 5.9%를 제시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대거 동조했다. KDI가 지난해 11월 말, 경제 전문가 2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비율은 10.1%에 불과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때보다 혹독한 터널을 지나고 있다. 경제 전망 기관의 ‘빗나간 예측’은 한두 해 얘기도 아니다.

국책연구기관인 KDI를 놓고 보자.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년간 KDI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조사해 봤다. 열 번의 전망 중 실제 성장률과 오차율이 0.2%p 이내였던 적은 2005년과 2006년 두 번뿐이었다. 그나마 최근 5년이 괜찮았다. 2003~2007년의 경제성장률 전망과 실제의 평균 오차율은 0.8%p였다(일반적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1% 떨어지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0.6~1% 정도 하락한다. 0.8%p 오차는 큰 숫자다).

1998~2002년엔 무려 5.2%p나 차이가 났다. 1997년엔 외환위기를 전혀 감지 못한 채 6.7%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실제는 -6.9%였다. 다음해엔 2.2% 성장을 전망했는데, 실제론 9.5% 성장했다. 다른 곳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행, 한국금융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네 곳을 조사해 보니 지난 5년간 경제성장률 전망이 적중한 경우는 2005년 한국은행 한 번뿐이었다.

아울러 올해 성장률이 올라가면 내년 전망치가 올라가고, 떨어지면 전망도 비관적이 되는 ‘후행 예측’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제도권의 한계도 있다. 경제부처 관료나, 제도권 경제 전문가가 공식적으로 극단적 비관론을 내놓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또 엉뚱한 전망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크다. 올해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날린 환율을 짚어보자. 지난해 10월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 은행가는 “2008년 평균 원-달러 환율은 900원, 2009년에 860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지금도 여러 매체에 환율 전망을 한다).

전후로 국책연구기관·민간경제연구소, 은행 등도 910~940원을 전망하는 보고서를 쏟아냈다. 100엔당 원화 가치는 900원대일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왔다. 하지만 실상은 한참 빗나갔다. 환율시장은 봄부터 요동쳤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발언을 한 이후, 환율시장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6월로 들어서자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시장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7월 들어 환율은 잠시 안정된 듯했다. 하지만 9월 중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후, 정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하루 40~90원씩 올랐다. 곳곳에서 비명이 새나왔다. 키코(KIKO) 가입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환율하락을 예상했던 중소기업들은 파산으로 몰렸다.

환율변동폭 상한액이 1100원으로 설계된 이 상품은 환율이 그 이상 올라가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정부와 경제연구소 환율 전망 보고서를 들이밀며 “절대 1100선은 넘지 않는다”는 은행 말을 믿었다가 부도를 맞거나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이 부지기수다. 엔화로 돈을 빌린 기업도 치명상을 입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엔화 표시 대출금은 2조원이다. 저리에 환차익까지 기대하고 빌린 이 돈은 원-엔 환율이 연초 대비 60%까지 상승하면서 엄청난 환차손을 안겼다. 기업뿐 아니라 이들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해당 기업 주가가 폭락하면서 피해를 보았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증권사가 입이라도 모은 듯 1800~2500대를 전망할 때 제도권 증권사 중 몇 곳이라도 폭락 가능성에 대해 정밀한 전망을 내놨다면, 마이너스 50%의 펀드 통장을 들고 한탄하는 투자자는 훨씬 적었을 수 있다(물론 증권사는 고객인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눈치 때문에 그런 전망을 내놓지 못할 테지만).



증권사들 주가 2500까지 예측

모든 탓을 잘못된 전망을 내놓은 경제 전문가에게 돌릴 수는 없다. 불확실한 시장 상황을 모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으로 불리는 각각의 경제 싱크탱크에서 ‘비슷비슷한 전망’이 나왔다면, 이를 뒤집을 만한 경제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한 거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전망이 크게 틀렸을 경우다.

한 전직 민간경제연구소 출신 CEO는 “공부 잘한다는 학생의 잘못된 답안지를 돌려 보다 모두 틀리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미네르바 신드롬’도 어쩌면 예측과 추측 사이에서 ‘틀리면 말고’식으로 전망을 내놓고, 틀리면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넘어갔던 제도권 경제 전문가의 행태가 낳은 히드라인지 모른다.

경제의 불확실성만 탓할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까지 예보해 줄 수 있는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전문가라는 이름을 달고, 언제까지 폭주기관차가 달려오는지도 모르고 철길에서 동전을 줍고 있는 이들을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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