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위기·공포 … 비관의 절규들
탐욕·위기·공포 … 비관의 절규들
◇‘반 토막’이 기가 막혀=펀드 수익률, 아파트 값, 코스피 지수, 대리운전기사가 하룻밤에 받는 콜(call) 수의 공통점은? 모두 올 한 해 동안 반 토막이 났다는 것이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1월 1800선에서 10월 24일 모두 바닥이라 믿었던 1000선이 무너지며 938포인트를 찍었다. 이후 892포인트까지 떨어져 결국 반 토막 난 ‘고등어’ 신세가 됐다.
주식형 펀드 역시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은 -40.56%,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은 -47.80%를 기록해 투자자 사이에서 수익률이 -20%면 ‘선방’했다는 웃지 못할 격려가 오갔다. 설정한 지 1년이 넘은 50억원 이상 주식형 펀드 400여 개 중 마이너스 수익률이 50%가 넘는 펀드가 130개에 달한다.
특히 JP모간자산운용의 ‘JP모간러시아주식형펀드’는 12월 16일 기준 연초 대비 수익률이 -81%로 해외 펀드 최하위 수익률을 기록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괴소문처럼 돌던 ‘반값 아파트’도 11월 강남권 일대를 중심으로 가시화됐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
노후준비 자산이 반 토막 났다고 해서 재무설계사들은 미국 퇴직연금제도인 ‘401k’를 ‘201k’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줄줄이 반 토막 행진에 ‘깡통계좌’ ‘깡통펀드’와 분양가보다 시세가 낮은 ‘깡통아파트’가 속출했다.
◇노란 토끼의 습격설=제도권 경제전문가들의 낙관론 앞에 ‘비관적 예언’을 들고 나타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노란 토끼’는 미네르바가 일본계 환투기 세력을 가리킨 은어로 “노란 토끼가 시작된 거야. 내년 꽃 피는 봄이 되면 알 거야”라는 글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노란 토끼는 정부가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미네르바의 정체를 밝히려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질 때쯤 등장해 더욱 주목 받았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가짜 신?’이라는 기사에서 미네르바를 ‘온라인 노스트라다무스’라고 칭하기도 했다.
자신을 ‘고구마 파는 노인’이라 부르는 그는 자신의 고객이라며 ‘최미자’라는 이름을 언급해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환율 급등,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을 예언(?)한 그는 11월 ‘3월 위기설’을 남기고 주무대였던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를 떠났다.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올해 안에 그의 정체가 밝혀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러기 아빠 힘들게 한 1513=‘환율’은 인터넷 포털 야후가 발표한 ‘2008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원-달러 환율은 11월 24일에 1513원까지 올라 많은 ‘기러기 아빠’의 어깨를 더욱 처지게 했다. 1500원 선이 깨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 10년 8개월 만의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티머시 가이스너를 새 재무장관으로 지목해 뉴욕 증시가 상승한 뒤라 실망이 더 컸다.
특히 키코(KIKO·환헤지파생상품) 피해를 당한 기업들은 1원의 움직임에 가슴을 졸이며 11월을 보냈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난 12월 19일 원-달러 환율은 1290원이다. 1600원을 넘었던 원-엔 환율도 1453원으로 하락했다. ‘연말정산’을 앞두고 환율이 안정세를 지속할지 기업들은 남은 열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vs 리만 브라더스=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9월 15일을 기점으로 세계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천문학적인 돈을 다루던 150년 역사의 대형 은행이 무너지자 그동안 떠돌던 위기설이 현실화된 것이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과 눈앞에 있는 현금밖에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통신이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이름을 딴 ‘LeeMan Brothers’가 한국에 유행한다”고 보도해 화제가 됐다. 두 리더는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해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티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747경제’로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7% 경제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 강국을 나타내는 ‘747’이 사실은 주가지수를 말한 것 아니었느냐’ ‘칠(7) 만한 사(4)기는 다 친(7)다’라는 냉소적인 농담이 오갔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이 대통령이 가락시장 상인에게 선물한 ‘목도리’가 내년에 모든 국민을 감싸주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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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누구?’=금융위기 이후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자 외국인 세력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란 외국계 금융회사나 이를 통해 거래하는 내외국인 투자자를 말한다. 이들은 11월 말까지 40조원 이상의 주식을 순매도하며 연일 ‘셀 코리아’를 외쳤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보유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유동성이 좋은 한국시장은 외국자본의 타깃이 됐다. 미국 헤지펀드 관계자들은 드러내 놓고 한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다. 외신은 한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해 한국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10월 6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라앉는 느낌’이라는 기사에서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10월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국, 멕시코, 브라질, 동유럽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단기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의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공식 반박한 것에 대해 한 외국 헤지펀드 매니저는 외신 대응보다 정부 관계자가 입 조심을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충고했다.
11월 25일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미국 현지에서는 “월가가 ‘론스타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며 “외국인의 한국 투자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롤러코스터 장세=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주요 경제 지표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유가다. 7월에 배럴당 147달러(WIT 기준)까지 올라간 유가는 5개월 사이 100달러 이상 하락해 30달러대로 떨어졌다. 하락 원인은 세계 경제 침체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유소 휘발유 값도 7월 L당 2222원에서 12월 현재 1200원대까지 떨어졌다. 철, 구리, 플라스틱, 폐지 등 원자재 가격도 연초에 고공행진을 하다 최근 급락하며 관련 업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환율은 1년 동안 최고가와 최저가가 600원 가까이 차이를 보이며 불안감을 키웠으며, 코스피 지수는 날마다 급등락을 반복해 ‘사이드카’가 거래소에서 26번, 코스닥에서 19번이나 발동했다.
사이드카는 선물가격이 전물 종가 대비 5%(코스닥 6%) 이상 오르거나 내리는 현상이 1분 이상 지속하면 일시적으로 프로그램 매매를 정지시켜 시장을 안정시키는 제도로 많이 발동할수록 그만큼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올해 여의도에서 제일 잘 팔린 자동차가 사이드카라는 유머가 나돌기도 했다.
◇원금보장이 뭐기에=펀드 투자자라면 ‘원·금·보·장’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납입한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원금보장 기능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떨쳐주는 안전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원금보장 기능을 애매모호하게 설명해 투자자가 큰 손실을 입은 경우도 많았다.
펀드 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하는 ‘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논란이 생기자 올해 상반기부터 펀드 분쟁이 급증했다. 11월 금융감독원이 우리CS자산운용의 ‘우리파워인컴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에 50% 손실배상 결정을 내리자 펀드 판매 시 투자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거나 이익을 과장하는 ‘펀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소송이 본격화됐다.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건수는 하루 평균 90건에 이른다. 지난해 투자자들이 ‘미래에셋 주세요’라고 할 만큼 신드롬을 일으킨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 펀드’도 소송에 휘말렸다. 투자자들은 펀드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인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두문불출하고 있어 더욱 ‘뿔 난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땡처리 세일’의 부활=쪼그라든 가계에 주부들이 다시 가계부를 펼치기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자는 ‘페니 전략’도 유행처럼 번진다. 대표적인 저가 알뜰매장인 ‘다이소’는 지난해 말 380개였던 매장이 450개로 늘었다. 국수전문점 프랜차이즈인 ‘명동할머니국수’는 신규 오픈 매장에서 50년 전 가격인 100원에 국수를 팔아 화제가 됐다.
이뿐 아니라 전국에서 3000원짜리 대구탕, 1000원짜리 자장면, 900원짜리 드라이클리닝, 100원짜리 소주 등 ‘알뜰 메뉴’가 직장인들의 발길을 끌었다. 반면 백화점 매출은 줄었다. 신세계 유통연구소는 소비자들이 필요한 것만 소량으로 구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동네 수퍼나 편의점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불황을 타고 ‘땡처리’도 인기다. 서울 명동에는 ‘땡처리 세일’이라는 간판이 걸렸고, 얼마 전 부도난 신사복 브랜드 ‘트래드클럽’은 종각역 근처 본사 매장에서 제품을 정상가의 20~30%에 판매했다. 쌓인 미분양 아파트도 땡처리 대상이다. 땡처리는 미분양 주택을 분양가보다 20% 이상 깎아 파는 것을 말하는데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된다. 하지만 할인폭이 50%까지 확대되자 신성건설, 대우건설, 코오롱건설 등 건설업체가 공개적으로 할인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공포의 단어=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투자자들에게 공포를 안겨줬다. 리세션(Recession·경기 침체)은 ‘R의 공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뒤를 이어 ‘D의 공포’가 찾아왔다.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은 1929년 대공황 때 일어난 현상으로 물가가 하락해 기업의 매출이 줄면 실업률이 증가하고 소비 시장이 위축돼 기업이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의 위험이 있다.
이 외에도 인플레이션, 농산물 가격이 올라 일반 물가도 덩달아 오르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물가 상승),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수백 퍼센트의 물가 상승) 등이 올 한 해 악명을 떨쳤다.
2008년을 장식한 키워드
반 토막: 펀드 수익률, 아파트 값, 주가 등 자산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 것을 일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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