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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쯤이야 열정으로 녹인다

불황쯤이야 열정으로 녹인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다. 2008년 오랜 산고(産苦) 끝에 직장인이 된 신입사원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이들의 열정이 경기침체도 사그라지게 할 수 있을까. 불황으로 고통 받는 선배들에게는 초심을 되돌려줄 자극제가, 앞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나침반이 되어 줄 신입사원들의 2009년 ‘희망 선언’을 들어봤다.



1. STX 정미리씨

27/포항공대 기술경영대학원
“안정된 자리보다 도전적 기회가 매력”



STX 하반기 공채에 합격한 정미리씨는 고려대학교 전파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공과대학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미국 벤처회사, 삼성전자 체코 법인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는 등 화려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는 대학원 수업에서 인수합병 모범 사례로 STX를 접해 인연을 맺게 됐다. 정씨는 완전히 갖춰진 대기업보다 인수합병 후 꾸준히 성장 중인 STX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큰 기업, 작은 기업 골고루 일해보니 벤처회사 직원들이 ‘멀티 플레이어’로서 회사 전반적인 경영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어요. 정해진 내 업무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지요.”

전체 업무를 아우르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는 20년이 지나 조직의 리더가 되는 것이 목표다.

“경기가 어렵다고 많이들 걱정하지만 작고 성장 중인 회사일수록 위기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업이 경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긴 하지만 이제 바닥을 쳤으니 저와 함께 성장할 일만 남았지요.”

정씨는 회사가 남미에 진출했을 때 도움이 되고자 스페인어 공부에 주력하고 있다. STX가 ‘중소기업 상생 펀드’를 조성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연구소 간의 ‘상생’에 관심이 많다.

“대학원생 때 유능한 연구진이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주 봤어요. 큰 기업이 연구소를 지원해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당당한 합격자지만 그도 서류심사에서 고배를 마시는 쓴 경험을 여러 번 맛봤다. 그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너 자신을 먼저 알라”고 당부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내 목표가 무엇인지,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나서 나와 맞는 회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려는 회사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2. 외환은행 송주영씨

29/미국 워싱턴 주립대 정보학과
“고객 맘 헤아리는 따뜻한 은행원 되겠다”



다들 편하게 대해 주셔서 더 큰 점포로 간 동기들보다 업무를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12월 23일 외환은행 성남 기업금융지점에 처음 출근한 송주영씨의 ‘소감’이다. 송씨는 열일곱 살에 미국에 유학 갔다 취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는 유학생 신분으로 금융권에 도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벅차다는 게 그의 얘기다.

“처음부터 은행에 지원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전공 외에 회계학을 공부하면서 은행이 저와 잘 맞는 것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송씨가 은행 중에서도 외환은행을 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앞으로 외환 관련 업무를 하고 싶기 때문이고, 둘째는 ‘열린 채용’을 하는 개방된 문화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 사진을 정장이 아닌 니트를 입고 찍었어요. 미국에서 온 터라 뭘 잘 몰랐죠. 그것 때문에 서류심사에서 불합격한 곳도 꽤 많은데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분위기 덕에 최종 합격할 수 있었어요.”

금융위기로 모든 경제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은행에서 근무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은행원은 전문화된 직종이기 때문에 위기가 와도 불안하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단순한 듯 보이는 업무지만 복합적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을 통해 위기를 충분히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송씨는 어떤 은행원을 꿈꾸고 있을까.

“요즘 은행이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듣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도 알아줬으면 해요. 셔터 내리고 나서도 남은 일이 많더라고요. 또 대출이 원활하지 않은데 은행과 고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대출 제도가 나오면 좋겠어요. 물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겠지요.” 또 ‘열정적인’ 은행원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은행원=안정적’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은행원도 도전정신이 강하거든요.”

그는 중동 지방 점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4년 전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근무한 경험 때문이다.

“병원에서 일하며 환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돈과 관련해 냉정해야 하는 은행이지만 고객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싶어요. 서민들이 있기에 큰 은행도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송씨는 취업 준비생에게 “자신만의 전문화된 특성을 살리라”고 조언했다. 금융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도 현재 미국공인회계사(AICP)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3. 한화석유화학 송상미씨

25/한양대 중어중문학과
“힘들 때 배울 게 더 많지 않나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 몸에 지닌 물건, 그러니까 시계, 헤어밴드, 옷 같은 것 중에서 80% 정도가 석유화학 제품으로 만들어진 거래요.”

한화석유화학 폴리염화비닐(PVC) 영업팀에서 2008년 9월부터 일한 새내기 송상미씨는 석유화학이 생각보다 생활과 친밀한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PVC 내수 영업팀의 첫 여성 사원이다. 석유화학, 그중에서도 영업이다. 여성이라서 편견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송씨는 여자라서 불이익을 당한 적도, 유리한 점도 없다고 한다.

“다른 회사도 영업 업무 위주로 지원했어요. 제 성격과도 잘 맞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고 송씨의 성격이 마냥 발랄하고 활달한 것만은 아니다.

“몸으로 뛰는 것만 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관계를 구축하는 거라 오히려 섬세하고 차분한 면이 필요해요. 열정만 있다면 내성적인 성격은 문제가 안 되죠.”

송씨는 원래 전공에 맞춰 무역업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캠퍼스 리크루팅에서 만난 직원의 설명을 듣고 회사의 ‘조직 문화’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에 이 회사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적성도 중요하지만 조직 문화도 잘 맞아야 해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가족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은 내수 영업에 푹 빠져 있지만 해외 영업 쪽도 도전하려고 영어,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또 영업사원으로서 필수 경쟁력인 ‘체력’을 키우려고 스노보드 동아리에 들었다.

“불황이라서 불안하지 않으냐고요? 힘들 때 들어오면 오히려 배울 게 더 많지 않나요? 이번 경험도 제 경쟁력의 하나가 될 겁니다.”

성실은 기본이고 ‘일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는 송씨는 석유화학 분야의 여성 최초 CEO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송씨도 서류심사에서 불합격할 때마다 ‘자괴감’과 ‘실망’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취업 스터디를 하면서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조금씩 개선해 나갔다는 그는 단점을 고칠 때마다 자신감이 붙었다고 소개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개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뭐가 좋다고 하면 우르르 쫓아가잖아요. 여러 토끼를 잡으려 하지 말고 소신 있게 원하는 분야를 향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이뤄집니다.”



4. 신세계백화점 이은우씨 26/서강대 경영학과


“부서 잘 돌게 하는 ‘윤활유’ 되렵니다”



올해 2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는 이은우씨는 신세계백화점에서 작년 7월부터 인턴을 하다 하반기 공채에 정식 합격했다.

“예전에는 인턴 직원 대부분을 정직원으로 채용했는데 올해는 70~80% 정도만 뽑았다고 해요. 경기가 안 좋은 탓이라고 원망도 했지만 그 가운데 살아남은 저에게 자신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씨가 대학에 다닐 때 ‘한 우물’만 판 것은 유통이 고객을 최접점에서 만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성격이 활달하고 남이 만족하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끼는 성향이라 고민 없이 유통을 선택했어요. 또 의류나 식품 등 여러 협력업체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 윤리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산업이지요.”

그는 자신의 경쟁력을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꼽았다. 그의 경쟁력은 신입사원으로서 갖는 포부와도 통한다.

“당장 업무 면에서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저 같은 신입사원 덕에 불경기라 압박을 받는 회사 분위기가 밝아지지 않을까요. 부서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업무에 관한 고민도 깊다.

“고객 지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기가 어려워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고수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손님을 끌어 소비를 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적인 공간을 개발해 장기적인 단골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요즘 백화점에서 문화 행사를 많이 하잖아요. 문화 콘텐트를 제공하면서 훈훈함을 전달하면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다시 경기가 살아났을 때 소비자들이 그 따뜻함을 떠올려 백화점을 다시 찾게 될 겁니다.”

그는 남들처럼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대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무대 설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정이 비정기적이고 워낙 빡빡해 이제 웬만한 힘든 일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단련됐어요. 팀워크도 배웠고요. 연어가 고통을 겪으면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잖아요. 외부 고통을 감내하면서 저도 목표를 이룰 계획입니다.”



5. 삼성증권 이상훈씨

26/성균관대 경영학과
“인격 갖춘 PB가 되고 싶습니다”



어차피 금융을 할 거면 은행이 더 안정적이지 않으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적인 은행 영업보다 동적인 증권사 업무가 젊은 저에게 더 맞지 않나요?”

이상훈씨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증권사에 가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올인’했다고 한다.

“금융 분야에서 일하시는 교수님 수업을 듣고 마음을 정했어요. 현업에서 생기는 일이 흥미롭고 제 적성과도 맞을 것 같았거든요. 일하고 싶은 분야, 더 구체적으로는 일하고 싶은 회사를 정해서 그곳에 열정을 쏟는 게 중요해요.”

그는 모의투자대회에 여러 차례 참가하는 등 증권사 입사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증권사가 이번 금융위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어 속상하겠다는 말에 그는 “작년에 입사했더라면 그랬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한창 좋을 때 들어가서 한 해 내내 실망하고 힘든 것보다 안 좋을 때 들어가서 다시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낫잖아요. 평생 일할 직장인데 당장 몇 년 힘들다고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증권업의 이직이 잦다고 하는데 저는 최대한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요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는 그에게 증권업 전망을 물었다.

“2월에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은행, 보험, 증권 가운데 증권사가 수혜를 볼 것 같아요. 은행의 고유 영역이던 분야도 시도할 수 있고요. 지금 당장은 위기지만 저처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고무적인 일이죠.”

지난해 유독 투자시장이 시끄러웠다. PB영업직에서 일할 그가 다른 사람 돈을 관리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돈을 관리하는 일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 쉽지요. 실전에서 버틸 힘을 기르려고 투자의 기본부터 익히고 있습니다.”
그는 2월 근무를 앞두고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 같은 투자 대가의 책을 독파하는 중이다.

“높은 영업실적뿐 아니라 인격을 갖춘 PB(프라이빗뱅커)가 되고 싶습니다. 시장이 안 좋을 때 동료, 후배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요.”
Q/A
Q. 불황이 계속된다는데 출발부터 불안하지 않나?
A. 오히려 많은 경험 쌓고 배울 기회라고 생각

Q. 불황기 취업에 성공하는 전략은?
A. 한 마리 토끼만 잡겠다는 신념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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